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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수나 Aug 21. 2023

에코리더

6

   길지 않았던 딸의 삶을 되짚어 볼수록 점점 물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연못은 거대한 무덤 같았다. 나도 몰래 난간 아래로 허리를 숙였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내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어느 틈에 산에서 내려왔는지, 영인이었다. 그녀는 고갯짓으로 연못 근처에 있는 한옥을 가리켰다. 비에 씻겨 한층 말쑥해진 기와 담장 위로 한 남자의 머리통이 쑥 올라와 있었다. 멀리서 봐도 백발에 하얀 눈썹이 두드러진 노인이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슬며시 사라졌다.

   “저 노인요, 우리가 물에 빠져 죽기라도 할까 봐, 감시하는 거예요.”

   영인이 옆에 바짝 다가서더니 내 쪽으로 머리를 기울이며 속삭였다. 처음 만난 사람치곤 은근하고 친밀한 행동이었다. 

   “사실은 얼마 전에 여기 연못에서 어떤 남자가 빠져 죽었거든요.” 

   “나도 알아요. 그 사람.”

   “죽은 남자요?”

   “아니, 저 노인요.”

   노인이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걸 보면, 그녀도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이곳에 왔던 게 틀림없었다. 

   노인은 비가 오는 날이면 담에서 멀리 떨어지지 못하고 연신 연못 쪽을 내다보았다. 어떨 땐 아예 집 밖으로 나와 연못가를 순찰이라도 하듯 거닐었다. 노인은 쉽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사람의 감정을 헤아려 보려는 듯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연못 주변만 서성거렸다.

   그의 집은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한옥이었다. 날아갈 듯 양 날개를 펼친 기와지붕 아래 ‘無心材(무심재)’라는 현판이 보였다. 무심재. 무, 심, 재. 나는 멀찍이 서서 그 집 현판을 골똘히 바라보며 글자 하나하나를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보았다. 마음이 없는 곳이라는 뜻일까, 생각에서 벗어난 집이라는 뜻일까. 읽기는 쉬워도 뜻은 쉽게 알 수 없었다. 설사 뜻을 안다 해도 과연 무심할 수 있을까. 당장 집주인만 봐도 무심하기는커녕 유심하기 짝이 없었다. 

   영인과 나는 그날 같이 연못을 돌아 나왔다. 우산을 각자 쓴 채 나란히 길을 걸었다. 그때까지 비는 그치다 말다를 계속했고, 어둑어둑해진 숲속은 처음 오를 때보다 더 축축했다. 낯선 사람과 단둘이 산을 내려가는 일이 불편했던지, 그녀는 말이 많았다. 왜 이런 날 혼자 산에 올랐는지, 그리고 어디 사는지,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영인은 내가 사는 아파트 인근에 있는 주택에 살고 있었다. 

   첫인상과 사뭇 다른 그녀의 태도에 난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야기 중에 밑도 끝도 없이 “아하하하아”하고 길게 뽑아 대는 웃음소리는 거듭 나를 놀라게 했다. 게다가 그녀는 상대방이 듣거나 말거나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다가 상대가 말을 시작하면 급작스럽게 조용해지거나 딴전을 피워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번 시작되면 끝없이 파생되는 연못 위의 동심원처럼 끝도 없이 이어지는 그녀의 이야기를 난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녀가 주책없이 웃어대는 웃음소리에 마음이 쓰였다. 언뜻 그녀의 웃음이 소탈해 보여,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따라 웃었다. 그녀는 내 웃음소리를 듣자, 갑자기 전원이 꺼진 것처럼 웃기를 뚝 그쳤다. 덩달아 나도 웃음을 멈췄는데, 갑자기 에너지가 차단된 것 같은 소강상태가 되어 둘 다 한동안 조용해지고 말았다. 메아리치는 그녀의 웃음소리는 더 이상 소탈하지 않았다. 언젠가 하늘가를 울리던 까마귀 울음소리처럼 공허하게 보였다.  

   산 아래로 내려왔을 때 비는 이미 그쳐 있었다. 

   “가끔 같이 산행할래요?” 

   영인이 물었다. 그녀는 나와 같은 마음으로 연못을 바라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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