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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Sep 02. 2022

시직사자도 (작자 미상)

아직 삶도 잘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시직사자도(時直使者圖) - 작자 미상(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제자 자로가 신을 섬기는 일에 대해 묻자 공자가 답했다. “아직 사람을 섬기는 일에도 능숙하지 못한데 어찌 신을 섬기는 일에 능숙하겠는가?” 자로가 다시 죽음에 대해 묻자 공자가 답했다. “아직 삶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신진편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焉能事鬼 曰 敢問死 曰 未知生焉知死 자로문사귀신 자왈 미능사인언능사귀 왈 감문사 왈 미지생언지사)


 위에서 신으로 해석한 한자의 원문은 귀신(鬼神)입니다. 귀신은 귀(鬼)와 신(神)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본래 귀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말하는데 우리가 공포영화에서 보았던 악령이나 귀신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신은 신비한 능력을 지닌 초월적인 존재로 하늘에서 만물을 다스리거나 전지전능한 힘을 가졌거나 신령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언급된 귀신은 과학적으로 정의가 불가능한 모든 초자연적 존재를 가리킵니다. 신과 귀신을 함께 아우르는 단어로 귀신이 쓰인 셈입니다. 다만, 한글 해석에 귀신이라고만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고, 뒤에 나오는 ‘섬긴다’는 동사에 더 어울리는 단어가 신이어서, 쉬운 이해를 위해 신으로 해석하였습니다.


 현대인들은 우주를 탐험하는 첨단 과학의 시대에 살면서도 초자연적인 것들에 대한 믿음을 완벽하게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징크스부터 별자리 운세, 혈액형별 성격, 타로, 사주, 궁합 등등이 이에 속합니다. 인간의 운명이 이름과 같은 다른 요소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대부분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도 이렇게 다양한 초자연적 믿음이 살아있는데 과연 2,500년 전은 어땠을까요? 아마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미신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미신의 세상에 살던 공자는 상식과 합리성을 내세웠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나 절대 알 수 없는 영역에 신경 쓰지 말고 현재 삶과 관계에 충실하자고 강조했습니다. 공자는 불가사의하거나 미지의 영역에 관한 믿음을 일체 거부하였습니다.


 종교란 일반적으로 신이나 초월적인 절대자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유교는 종교일까요? 아닐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위해서는 먼저 종교가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종교란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라고 나옵니다. 그 예로 다신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이 나옵니다. 여기에 유교는 없습니다. 즉, 종교는 초월적인 존재를 믿고 받드는 신앙에서부터 비롯됩니다. 따라서 유교는 종교가 될 수 없습니다. 공자를 신과 같은 초월자나 절대자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공자를 그저 스승으로 모실 뿐입니다.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여 제사를 지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추모 행사일 뿐입니다.


 만약 종교(宗敎)라는 한자를 분석하여, ‘근본, 으뜸’이라는 의미를 살린  ‘마루 종(宗)’자와 ‘가르치다, 본받다’라는 뜻의 ‘가르칠 교(敎)’의 결합으로 해석하여, 유교를 '근본적인 가르침' 혹은 '으뜸이 되는 가르침'으로 보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유교는 지극히 상식적인 지식을 추구하고 합리적인 인간관계를 도모하는 인문학적 배움을 가장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유교보다 학문이라는 의미를 담은 유학(儒學)이라는 단어가 공자와 더 어울리는 듯합니다. 공자는 스승을 자처했지만, 성인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공자의 유학은 솔직하고 탄력적이고 유연한 가르침일 뿐입니다.




 〈시직사자도(時直使者圖)〉는 저승사자를 그린 그림입니다. 저승사자는 인간이 죽으면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간다고 알려진 존재입니다. 시직사자는 사직사자(四直使者)로 불리는 저승사자 중의 한 명입니다. 사직사자는 사주(四柱)처럼 연(年), 월(月), 일 (日), 시(時)를 따서 4 명으로 나뉘고 각각 연직사자, 월직사자, 일직사자, 시직사자로 불립니다. 위 그림은 그중에서 시직사자를 그린 그림입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까지 사람들은 TV의 영향으로 저승사자는 갓을 쓰고 검은색 한복을 입은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다양한 매체에서 화려한 현대식 의상을 입고 나오는 바람에 정형화된 모습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저승사자들은 죽은 자의 영혼을 염라대왕에게 데려가 심판을 받게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직사자 말고도 환경이나 풍습에 따라 다양한 호칭과 존재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도교와 불교 그리고 민간 신앙이 뒤섞여서 탄생되었습니다. 실제로 우리에게는 상을 당하면 마당이나 문밖에 저승사자를 대접하는 사잣밥을 놓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사잣밥에는 밥 이외에도 술, 명태, 짚신 그리고 동전 등을 놓았습니다.


 이 그림은 가로가 56.6cm 세로가 85.4cm이며 마(麻) 위에 그려졌습니다. 사찰에서 의식을 거행할 때 외부에 장식용으로 걸어 놓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생각했던 저승사자는 아주 화려합니다. 신발과 장신구들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말에 장착된 장신구도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치렁치렁합니다. 화려한 장식으로 말을 꾸며 사람과 조화를 맞췄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염라대왕(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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