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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Sep 03. 2022

오봉도 (작가 미상)

리더가 바르지 않으면 명령을 해도 따르지 않는다

오봉도(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노나라의 대부 계강자가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정치는 바른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당신이 바르게 처신하는데 앞장선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습니까?” 

(안연편 季康子問政於孔子 孔子對曰 政者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 계강자문정어공자 공자대왈 정자정야 자솔이정 숙감부정)


 노나라는 공자의 고향이고, 대부는 한 나라를 책임지는 제후 다음으로 높은 관직입니다. 대부는 제후가 나누고 할당한 영토를 다스리거나 중앙에서 제후를 도와 정치를 맡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귀족으로 대를 이어 세습되는 전문적인 정치인입니다.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를 잘하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이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정말 간단했습니다. 리더가 모범을 보이고 처신을 잘하면 다른 사람들도 본받을 테니 무엇이 걱정이냐고 되물었습니다.


 공자 리더십의 기본 원칙은 단순합니다.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고 말은 가급적 삼갑니다. 《논어》에는 위와 비슷한 맥락으로 아래와 같은 구절도 있습니다. “리더가 바르면 명령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행동하며, 리더가 바르지 않으면 명령을 해도 따르지 않는다.”(자로편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 기신정 불령이행 기신부정 수령부종) “자신이 바르지 못하다면 어찌 다른 사람들을 바르게 만들 수 있겠는가?”(자로편 不能正其身 如正人何 불능정기신 여정인하)


 이러한 리더십은 조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적용이 가능합니다. 가장 가까운 곳이 직장과 가정입니다. 사원으로 시작한 사회생활은 승진을 할수록 점점 더 다양한 능력이 추가되어야 합니다. 뛰어난 개인적 역량 외에도 거래처와 협상하고, 자신의 팀을 관리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등의 추가적인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어려운 것이 리더십입니다. 좋은 리더십은 팀원들이 각자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신뢰로 일을 맡기며, 리더가 열정적이고 바른 모습을 꾸준히 보여 주는 것입니다. 리더가 직원을 믿지 못하면, 직원도 리더를 진심으로 따르지 않습니다. 


 이것을 가정에 도입하면 이해가 더 쉬워집니다. 늘 집에서 핸드폰으로 게임만 하거나, 자주 술을 마시고 취한 모습을 보이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와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거나, 꾸준히 책을 보는 습관을 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같은 정서를 가질 수 있을까요?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바르게 성장할 가능성이 적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에 가정폭력 가해자를 조사한 연구결과 따르면, 가해자의 약 53%가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으며, 약 37%는 학대 등의 피해를 당했다고 합니다. 두 수치를 합하면 거의 90%가 됩니다. 대부분의 가정폭력이나 학대는 대물림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리더십의 가장 작은 단위는 가정에서 출발하고, 자녀들은 사회성을 부모로부터 배웁니다. 효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에게만 강요하면 안 됩니다.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자연스레 전달됩니다. 부모가 보여주지 않고 자식에게 그래야 한다고 가르친다면 그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리더가 모범을 보이고 그를 닮아가려는 자세가 확장되는 것이 바른 사회가 만들어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이러한 바탕에서 바로 ‘왕은 왕다워야 하며,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가르침이 나온 것입니다.




 〈오봉도(五峯圖)〉는 다섯 개의 봉우리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는데, 통상 해와 달이 함께 있어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라고도 했으며, 봉우리 대신 산이라는 뜻으로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라고도 했습니다. 병풍으로 자주 쓰였기에 조선 시대에는 〈오봉병〉으로도 불렸습니다. 〈오봉도〉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조선에서만 쓰였던 그림입니다. 〈오봉도〉에는 폭포와 소나무 그리고 출렁이는 물결도 언제나 함께 등장합니다. 좌우가 완벽한 대칭을 이룹니다. 


 〈오봉도〉는 왕이 앉아 있는 곳 뒤에 놓을 목적으로 제작된 그림입니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궁궐에 가보면 왕이 앉는 어좌 뒤에는 어김없이 〈오봉도〉가 놓여있습니다. 조선의 대표 궁궐인 경복궁을 예로 들자면, 대외적인 큰 행사를 위해 지어진 근정전과 일상적인 정사를 위해 쓰였던 사정전에서 모두 〈오봉도〉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일반적인 정치의 영역이었던 궁궐 이외의 실외 행사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왕이 참여한 행사를 기록한 그림을 보면 병풍으로 〈오봉도〉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 원권 지폐를 보면 세종대왕 뒤편에도 〈오봉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재 조선 시대에 사용했던 〈오봉도〉가 많이 남아 있음에도 연원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는 점은 아쉽습니다.


 이 그림에서 달과 해는 음양(陰陽)으로, 오봉은 오행(五行)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음양과 오행은 고대부터 내려오던 동양의 사상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음양은 음지와 양지라는 뜻으로 만물을 만드는 기운을 말합니다. 오행은 만물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원소로 나무(木 목), 불(火 화) 흙(土 토) 쇠(金 금) 물(水 수)를 뜻합니다. 음양은 흑백처럼 상반되는 기준이 아니라 서로 의존하고 순환하면서 균형을 맞추는 존재이고, 오행은 각기 요소가 서로 돕는 상생(相生)과 서로 충돌하는 상극(相剋)으로 엮여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음양과 오행은 모두 순환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양을 상징하는 낮이 지나면 음을 상징하는 밤이 오고, 밤이 지나면 다시 낮이 되는 원리와 같습니다. 오행에서는 나무가 많아지면 불이 나기 쉽고, 불이 나서 다 타버리면 흙이 되고, 흙이 단단히 뭉치면 쇠를 만들고, 쇠가 차가워지면 물을 만들고, 물이 있어야 나무가 자라게 된다는 원리가 상생입니다. 이처럼 동양의 사상은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하기에 하루, 한 달, 사계절, 일 년처럼 상호 영양을 미치는 순환의 원리를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인 셈입니다. 


경복궁 근정전의 오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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