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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Sep 04. 2022

복숭아꽃 (강세황)

균형이 맞고 조화로워야 군자라 할 수 있다

복숭아꽃 - 강세황(출처 : 공유마당 CC BY)



본질이 외양보다 지나치면 거칠어지고, 외양이 본질보다 지나치면 번지르르할 뿐이다. 본질과 외양이 균형에 맞고 조화로워야 군자라 할 수 있다. 

(옹야편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 문질빈빈 연후군자)


 아무리 정직한 사람이라도 표현에서는 융통성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느낌을 그대로 상대방에게 전달한다면 어색하고 투박한 소통이 됩니다. 화려함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내면의 멋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없는 꾸밈은 향기 없는 꽃과 같습니다. 위 구절은 내면의 소양과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공자는 언제나 한결같이 균형과 조화를 강조했습니다. 균형과 조화는 입체적으로 따져봐야 합니다. 가상의 직선에서 적절한 위치를 찾기보다는 좌우와 위아래를 골고루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높은 차원으로 발전합니다. 다양한 차원에서 살펴보아야 다른 존재들도 나만큼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함께 살아가는 자연의 법칙입니다.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으며 치우침이 없는 중용(中庸)을 찾고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필요로 합니다. 어쩌면 중용을 찾기 위한 끝없는 도전 정신이 바로 군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홍도의 스승으로 알려진 강세황은 대대로 고위 관료직을 역임한 전형적인 명문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3남 6녀 중에 막내로 태어났는데, 그때 아버지의 나이가 64세였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강세황의 집안은 대대로 장수하였는데, 할아버지 강백년(姜柏年)이 79세, 아버지 강현(姜鋧)은 84세에 운명하였습니다. 이 유전자를 물려받은 그도 79세까지 살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10대 초반부터 서예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서 이때부터 작품을 얻어간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고 똑똑했던 강세황은 젊은 시절에 과거 시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오해로 역모 사건에 연루된 큰 형이 유배형을 받은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출세를 포기하는 삶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랬던 강세황이 처음 벼슬에 오른 나이가 61세였습니다. 그것도 왕의 배려에 의한 특채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그는 벼슬을 얻기 전까지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강세황은 30여 년 동안 처가에 의존하며 살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강세황이 처가살이를 오래 했기 때문에 예술가로서의 삶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가 젊은 시절에 출세하여 대를 이어 고위 관료로 살았다면 현존하는 작품의 수는 현저하게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자도 늘 정치인이 되어 세상을 바꾸는 일에 몸담으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등용에 실패하였습니다. 결국 그 실패로 인해 공자는 삶의 방향을 틀어 학문과 제자 양성에 전념하였습니다. 만약 그가 잘 나가는 정치인이 되었다면, 지금 우리 곁에는 《논어》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강세황의 예술 세계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강세황은 다양한 소재를 그림으로 다루고, 서양화의 기법을 연구하고, 기교보다는 정신적 표현을 강조하는 문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발전시켰습니다. 시와 붓글씨와 그림에 능하여 사람들에게 삼절(三絶)로 인정받았습니다. 예술에 대한 탐구 정신이 높았던 강세황은 탁월하고 솔직한 안목을 자랑하는 전문적인 평론가로도 활동했습니다. 그는 조선과 중국의 많은 작품들을 솔직하게 평가했는데, 이것은 예술에 대한 이해와 깊이가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복숭아꽃〉은 강세황이 남긴 《담채화훼첩(淡彩花卉帖)》에 담긴 그림 중 하나입니다. 담채란 엷게 채색된 그림을 말하고, 화훼란 꽃과 풀이라는 뜻인데 식물을 상징합니다. 봄의 기운을 머금은 꽃이 화사합니다. 화려함 속에 순박하고 맑은 정기가 담겨 있습니다. 복숭아는 화려한 꽃과 달콤한 과일 때문에 고대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굳은 절개를 자랑하는 사군자와 상반되는 대상으로도 분류하였습니다. 봄에 잠시 화려함을 뽐내다가 사라지는 복숭아꽃은 아첨을 일삼는 간신이나 소인배로 비유하였습니다. 그러나 강세황의 복숭아꽃에서는 자연의 생명력을 머금은 순수한 향기만 전해지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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