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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Sep 13. 2022

난초와 국화 (김정희)

나는 감추지 않는단다. 이게 바로 나 공자다

난초와 국화 - 김정희(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예를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당당하게 설 수 없단다.

(계씨편 不學禮 無以立 불학예 무이립)


 위 구절이 나오는 이야기의 전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진항이라는 제자가 공자의 아들 공리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그대는 스승님으로부터 특별한 가르침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공리가 답했습니다. “아직까지 그런 적이 없습니다. 다만 아버님이 홀로 계실 때 마당을 지나가는데 시를 다 배웠냐고 물으셨던 적이 있습니다. 아직 배우지 못했다고 말씀드리니 ‘시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말을 잘하지 못한단다.’(不學詩 無以言 불학시 무이언)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를 충실히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날에 마당을 지나가는데 아버님이 예를 다 배웠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아직 배우지 못했다고 말씀드리니 ‘예를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당당하게 설 수 없단다.’라고 하셔서 예를 부지런히 배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진항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한 가지를 물었는데 세 가지를 얻었구나. 시를 배워야 하는 이유와 예가 필요한 이유 그리고 군자는 자신의 아들을 특별하게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구나.”(問一得三 聞詩 聞禮 又聞君子之遠其子也 문일득삼 문시 문례 우문군자지원기자야)


 호기심이 많은 제자와 공자의 아들이 나누는 대화가 생생한 구절입니다. 제자는 스승이 아들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전해주지 않는지 슬쩍 물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다른 제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무언가를 배울 때 지름길은 없습니다.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되면 착실하고 꾸준히 배워야 고수가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단기간에 고수가 되려 합니다. 고수의 숨겨진 노력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부러워합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짧은 기간의 노력으로 수십 년 동안 내공을 쌓아 올린 고수들처럼 될 수 없습니다.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독한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는 진짜 고수가 적고 사기꾼들이 많습니다. 사기꾼들은 입으로만 고수 흉내를 냅니다. 그래서 공자는 말만 앞서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공자는 솔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가까이 가기 어려운 성인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실천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몇몇 제자들은 스승이 혼자만 알고 있는 특별한 공부 비법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을 했습니다. 공자가 차곡차곡 만들어가는 학문적 성과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누군가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을 때, 그것을 가장 게으르게 평가하는 방법은 업적을 이룬 사람을 천재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의 의심을 느낀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내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으냐? 나는 감추지 않는단다. 내가 너희들과 함께 지내면서 보여주지 않는 것은 전혀 없단다. 이게 바로 나 공자다.(술이편 二三子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是丘也 이삼자이아위은호 오무은호이 오무행이불여이삼자자 시구야) 공자는 제자들에게 섭섭한 마음이 있으면 바로바로 얘기를 하고, 자신의 떳떳함을 드러냈습니다. 위의 상황에서 공자가 자신의 이름까지 들먹이는 걸로 보아 정말 답답했던 모양입니다.




 〈난초와 국화〉는 활짝  국화  송이와 난초가 함께 자라는 림입니다. 사군자는 하나의 소재로 그릴 때도 있고  가지 이상의 식물을 함께 그리기도 합니다. 얼핏 보면 특별할  없어 보이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가운데에  난의 잎을 중점적으로 보면 뭔가 어색한 합니다. 난이 중력을 거스르는 각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마치 고개를 비틀면서 들어 올려 하늘을 바라보는 동물 같습니다. 난은 처음에 위를 향해 똑바로 자라다가 잎이 길어지면 잎끝이 아래로 향합니다.  익어서 고개를 숙이는 벼이삭과 같이 중력에 끌리는 형태를 보입니다. 잎의 너비가 좁으면 좁을수록 스스로  있는 힘이 모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곳에서 뻗어 나온 국화는 중력을 거스르는 난초가 당당하게   있도록 응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얼핏 보면 국화와 난초가 하나의 식물 같기도 합니다.


 그림의 긴 난 잎이 가진 또 다른 특징은 너비의 표현입니다. 아래에서부터 중간까지 가는 선으로 일관된 형태를 보입니다. 마치 철사처럼 보입니다. 일반적인 난 그림에서 이와 같이 가는 선은 잎의 측면을 표현할 때 쓰입니다. 주로 잎이 휘거나 꺾이는 부분에 짧게 사용하는데 이 그림에서는 꽤 길게 표현하였습니다. 아래에서 중간까지는 잎의 측면이고, 중간에서 윗부분은 앞면이나 뒷면이 되는 셈입니다. 아래 부분에 이제 막 자라나는 길지 않은 잎들과 비교해보면 금세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림 하단에 그릇처럼 보이기도 하는 돌 안에는 화가의 호(號)가 새겨진 낙관이 찍혀 있습니다. 낙관의 글씨는 우리에게 익숙한 추사(秋史)입니다. 호는 이름 대신에 편하게 부르기 위해서 쓰는 호칭입니다. 보통 자신이 사는 지역명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물의 이름을 따서 붙이거나 작가의 정신세계를 반영한 개념들로 만듭니다. 김정희는 아주 많은 호를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선비들은 일반적으로 호는  2 ~ 3개 정도를 사용하고 많아도 대게 10개 이내입니다. 그런데 한 논문에 따르면 김정희의 호는 무려 300여 개였다고 합니다.(「秋史 金正喜 의 號에 대한 硏究」, 원광대학교 대학원, 1998) 이것은 그의 인생이 다양한 호기심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김정희 초상화 - 이한철 (출처 : 공유마당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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