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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아빠 Sep 14. 2022

왕죽도 (김정희)

군자는 곤궁함에 익숙하여 흔들리지 않는다

왕죽도(王竹圖) - 김정희(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공자와 제자들이 진나라에 머물 때 식량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병에 걸려 일어서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이 상황에 화가 난 제자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군자도 이렇게 곤궁에 빠질 수 있습니까?” 공자가 답했다. “군자는 곤궁함에 익숙하여 흔들리지 않지만, 소인은 곤궁해지면 함부로 행동하며 소란을 떤단다.”

(위령공편 在陳絶糧 從者病 莫能興 子路慍見曰 君子亦有窮乎 子曰 君子固窮小人窮斯濫矣 재진절양 종자병 막능흥 자로온견왈 군자역유궁호 자왈 군자고궁 소인궁사람의)


 공자는 55세에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제자들과 모험을 떠났습니다. 자신을 정치가로 기용해줄 제후를 찾아서 여러 나라를 떠돌았습니다. 나이를 감안하면 요즘에도 결코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과연 55세에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며 안정된 환경을 버리고 꿈을 찾아서 떠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지금처럼 교통과 숙박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과 중국이라는 넓은 지역적 특성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큰 용기가 필요한 도전입니다. 이 여행은 무려 13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공자는 68세가 되어서야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굳건했는지 알 수 있는 기간입니다.


 제후들은 공자를 기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자리를 잡은 신하들이 견제했고, 제후들은 귀찮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신하들은 안정적인 자신의 입지와 뒤바뀔지 모르는 서열을 걱정했습니다. 제후들은 인과 예와 의를 앞세우는 공자의 의견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범을 강요하거나 잘못을 지적당하는 게 못마땅했습니다.


 긴 여행기간 동안 공자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수시로 위협받고, 갇히고, 포위되었습니다. 일행은 살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까지 감당해야 했습니다. 사람이 겪는 고통 중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견디기 힘든 두 가지가 배고픔과 질병입니다. 위 구절의 상황이 상당히 처참했는지 자로는 공자에게 화를 내며 따지고 들었습니다.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논어》에는 나오지 않지만 《공자세가》에는 위의 상황에서도 공자는 책을 읽고 강의를 하며,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자는 진짜로 초연한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제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모범을 보이고자 애를 쓰며 겨우겨우 버틴 것일까요? 그 무엇이든 굶주림을 참아내는 노년의 공자가 눈물겹습니다.




 굵은 대나무는 보통 왕대라고 부릅니다. 그림으로 그릴 때는 왕죽, 대죽, 통죽 등의 명칭을 사용합니다. 문인화에서 대나무를 그릴 때는 붓의 앞쪽 부분만을 주로 사용하지만, 왕죽은 붓의 측면을 모두 이용합니다. 두꺼운 대나무는 큰 붓이 아니라 기교로 만듭니다. 잔뜩 먹물을 묻힌 붓을 가로로 눕히듯이 옆면을 종이에 밀착시켜 그대로 위 방향으로 치고 올라 나갑니다. 먹과 물이 섞인 농담으로 입체감이 표현됩니다. 먹이 많은 붓의 아랫부분이 닿은 부분은 진하고, 윗부분은 흐려집니다. 먹물을 듬뿍 묻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종이가 찢어질 수도 있습니다. 왕죽은 일반적인 대나무에 비해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왕죽도(王竹圖)〉는 굵은 꼿꼿함을 내세우는 그림이 일반적입니다. 보통 굵기에 비해 두꺼운 왕죽은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과 단단함이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굵기가 분위기를 압도합니다. 허나 김정희의 〈왕죽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김정희의 그림은 평범함을 거부하는 표현이 많습니다. 그의 〈왕죽도〉줄기가 곧지도 않고 형태도 온전하지 못합니다. 꺾였는지, 부러졌는지 모를 대나무의 본체가 위태로울 지경입니다. 반면 마디마디에서는 새로운 가지와 잎들이 왕성한 생명력을 꿈틀거리며 돋아나고 있습니다. 끊어질지언정 죽지는 않겠다는 고집스러운 집념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대나무 잎들의 생명력이 마치 춤사위 같습니다.



김규진 차군도(此君圖) 1883 - 김규진 (출처 : 공유마당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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