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나
- 내 안의 나
한낮의 노곤한 피로가 몰려온다. 책상 앞에 편한 자세로 앉아 턱을 괴 본다.
손바닥에 얼굴의 피부가 와닿는다. 힘주어 얼굴 근육을 눌러보면 안쪽으로 단단한 뼈가 느껴진다.
뼈?
이것이 내 안에 갇힌 물체로구나.
한동안 내 의지대로 나와 같이 존재하다가 언젠가는 나와 동떨어진 물체가 되는 것.
이것이 때가 되면 누구나처럼 껍질을 벗고 그 흉한 몰골을 드러내는 바로 나 자신이구나. 그때에는 이미 내가 나 자신이 아니겠지만.
보고 싶다. 허울 벗은 자신의 모습을. 아니, 알맹이가 담기지 않은 허울뿐의 자신을.
내가 나의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내 육신은 나의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내 것도 아닌 이 육신이 왜 '나'라는 것일까?
내 것도 아닌 이 육신에, 나는 왜 집착하게 될까?
내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이고 가능성이니, 이것은 내 것이 맞는 것도 같은데, 나는 이 육신을 맘대로 조종하지도 못하고, 뜻한 바대로 살게 하지도 못한다.
내 상상은 구름 위를 날고, 생각은 원대한 꿈을 꾸고 있는데, 이 육신은 날지도 못하고, 피곤하여 늘 눕고만 싶다.
언제쯤 인간은 자신의 생각대로 육신을 조종하며 살 수 있을까? 성장하고 나이 들면 가능한 일일까?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나이가 많다고 하여, 사람들이 늘 자신의 생각대로만 살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신은 이 불완전한 생물들을 대체 왜 만든 것일까?
그렇다고 신이 인간들보다 완전한 것 같지도 않다.
신이란 것에는 존재가치가 없다. 존재가치로 따지자면 인간이 그 가치가 훨씬 더 높다.
그렇구나.
존재가치 없는 이 우주의 뜻이, 존재가치 높은 인간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고 싶은 거구나.
인간은 신이 원하는 뜻을 이루기 위한, 가장 성능 좋은 생체로봇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뜻에 부합하기 위해, 좀 더 부지런해지고, 좀 더 성실해져야 하나보다.
성실한 로봇이라도 되어보자.
어차피 내가 내 것이 아니라면, 이 우주의 뜻을 잘 이루어내는 성능 좋고 효율 좋은 생체로봇이라도 되어야 한다.
나는 이 한낮 오후의 피로감을 물리치고, 내 할 일을 잘 해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