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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Aug 20. 2021

청산에서 자유로운 삶을 상징하는 다래

장초萇楚, 미후도獼猴桃

살어리 살어리랏다 쳥산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쳥산애 살어리랏다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한 나도 자고니러 우니노라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이링공 뎌링공 하야 나즈란 디내와손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또 엇디 호리라

..


다래, 2016.7.10 양평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일부인데, 1977년 대학가요제에서 발표된 노래 ‘가시리’에 가사로 쓰이면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노래다. 나는 어린 시절을 사방이 청산靑山으로 둘러싸인 산골마을에서 머루와 다래를 따 먹으면서 자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다래 뿐 아니라, 개다래, 쥐다래, 섬다래 등의 다양한 다래나무과 나무가 있는지는 몰랐다. 섬다래(Actinidia rufa [Siebold & Zucc.] Planch. ex. Miq.)는 재작년 11월 제주도의 청수 곶자왈에서 처음 보았고, 개다래((Actinidia polygama [Siebold & Zucc.] Planch. ex. Maxim.)와 쥐다래(Actinidia kolomikta [Maxim. & Rupr.] Maxim.)를 자세히 본 것도 작년 7월 가리왕산에서였다. 개화기가 지난 한여름에 마술처럼 잎을 분홍색으로 바꾸는 쥐다래도 신기했고, 잎에 흰 색 무늬가 생기고 뒤로 조금 젖혀진 꽃받침을 우산으로 쓴 열매를 달고 있는 개다래도 예쁘기만 했다. 지난 겨울에는 개다래와 다래의 겨울눈 모습을 관찰해보기도 했다. 이 외에도 <한국의나무>를 보면, 우리나라에는 키위라고도 불리우는 양다래 재배종(Actinidia deliciosa [A. Chev.] C.F.Liang & A.R.Ferguson)도 있는데, 이 키위는 중국다래를 뉴질랜드에서 개량한 과실수 품종이라고 한다. 


개다래 (좌) 꽃, (중) 열매, 2019.7.6 가리왕산 (우) 겨울눈, 2020.3.14 천마산

 

<시경詩經> 회풍檜風 편에 ‘습지에는 장초가 있네 (隰有萇楚)’라는 시가 있다. 이 시는 장초萇楚를 보고 세상 모르고 사는 네가 부럽기만 해라 (樂子之無知)’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옛 선비들은 이 구절 때문에,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부러워할 때나 전원의 삶을 노래할 때 이 시를 인용하곤 했다. 하지만 정확히 이 식물이 무엇인지는 몰랐던 듯하다. 예를 들면 정학유(丁學游 1786~1855)도 <시명다식詩名多識>에서 장초萇楚를 연구한 후,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미후도獼猴桃는 아닐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동의보감> 탕액편과 <제중신편> 약성가藥性歌를 보면, 미후도獼猴桃에 ‘다래’라는 한글 훈을 달고 있으므로, 이는 장초萇楚는 ‘다래’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 듯, 장초萇楚를 음 그대로 장초, 장초나무로 번역하거나, 양도나무, 보리수, 보리수나무, 너삼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심지어 그냥 초목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섬다래, 2018.11.10 제주도


이런 혼동을 해결하기 위해, 문헌을 통해 장초萇楚에 대한 정학유의 해석이 옳은지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시명다식>에서 정학유가 장초萇楚에 대해 쓴 글을 읽어보자. 


주자가 말하였다. 장초萇楚는 요익銚弋이니, 지금의 양도羊桃이다. 씨는 밀과 같고 복숭아와 비슷하다. 육기陸璣(261~303)가 말하였다. 장초는 잎이 복숭아와 같은데, 윤이 나고 뾰족하며 길고 좁다. 꽃은 자줏빛과 붉은빛이 난다. 그 가지와 줄기는 약하여 한 자가 넘으면 풀 위로 덩굴져 늘어진다. 다른 이름으로 업초業楚이고, 평지의 못 가에 나고, 열매가 가늘어서 대추 씨와 같으며, 싹은 약해서 나무가 될 수 없다. 지금 사람들은 물을 길어 대는데 쓰는데 무거워서 물에 잘 가라앉으니 수양버들(楊柳)만 못하다. 아래 뿌리 가까이 껍질을 칼로 잘라서 뜨거운 재 속에 넣어 벗기면, 붓을 넣어두는 대롱으로 쓸 수 있다. 본초本草에 말하였다. 장초는 다른 이름으로 괴도鬼桃, 양장羊腸, 세자細子이다. 그 줄기는 크기가 손가락 만하고, 나무 비슷하지만 덩굴처럼 약하다. 봄에 자란 어린 가지는 부드럽고 연하다. 잎 크기는 손바닥 만한데 위는 초록색이고 아래는 희며, 털이 있고 모양은 모시풀(苧麻) 비슷하게 둥글다. 그 가지에 물을 담그면 끈끈하고 미끄러운 즙액이 있다. 학상學祥은 이렇게 생각한다. 도홍경陶弘景(456~536)이, ‘집 복숭아와 비슷하고, 산복사는 아니다. 꽃은 매우 붉고, 씨앗은 작고 가는데 써서 먹을만하지 않다’고 하였으니, 요즈음 사람들이 말하는 미후도獼猴桃는 아닐 것이다.” * 

 

쥐다래 (좌) 잎, (중) 열매, 2019.7.6 가리왕산, (우) 수꽃, 2020.6.13 화악산


<본초강목>의 양도羊桃 편에 정학유가 기록한 내용이 거의 다 나오는데, 이 글을 읽어보면, 장초의 이명이 양도羊桃이며, 습지에 자라는 덩굴성 나무로 복숭아 비슷한 열매가 달린다고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잎 위가 초록이고 아래가 희다는 것은 흡사 개다래 잎을 설명한 것 같기도 하다. <중국식물지>를 보면 미후도獼猴桃의 이명으로 양도羊桃, 양도桃, 양도등羊桃藤, 등리藤梨 등이 나온다. 그러므로, 정학유의 추정과 달리 장초萇楚는 미후도, 즉 다래의 일종일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본초강목>에는 초7(草·七)권에 양도羊桃가, 과일5(果·五)권에 미후도獼猴桃가 따로 기재되어 있어서, 이 둘이 한 종의 식물인지는 확실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러나 <시경식물도감>과 <식물의한자어원사전>은 한결같이 장초萇楚를 미후도獼猴桃(Actinidia chinensis Planch.)로 해석하고 있으므로, 장초萇楚를 미후도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미후도獼猴桃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양다래 혹은 중국다래라고 부르므로, 장초는 다래의 일종이 분명하다. 이제 앞에서 언급한 <시경詩經> 회풍檜風 편의 ‘습지에는 장초가 있네 (隰有萇楚)’ 전부를 다래를 떠올리면서 읽어본다.**

 

隰有萇楚 진펄에 다래가 있네 

猗儺其枝 그 가지 아름다워라. 

夭之沃沃 싱그런 가지 부드럽게 흔들려 

樂子之無知 세상 모르고 사는 네가 부럽기만 해라. 

 

隰有萇楚 진펄에 다래가 있네

猗儺其華 그 꽃이 아름다워라. 

夭之沃沃 싱그런 꽃잎 부드럽게 날려 

樂子之無家 집도 없이 사는 네가 부럽기만 해라 

 

隰有萇楚 진펄에 다래가 있네 

猗儺其實 그 열매 아름다워라. 

夭之沃沃 싱그런 열매 부드럽게 흔들려 

樂子之無室 처자도 없이 사는 네가 부럽기만 해라. 

 

<끝, 2020년> 

朱子曰 萇楚 銚弋 今羊桃也 子如小麥 亦似桃. 陸氏曰 萇楚 葉如桃 而光尖 長而狹 花紫赤色 其枝莖弱 過一尺 引蔓于草上 一名業楚 生平澤中 子細如棗核 苗弱不能今人以爲汲灌 重而善沒 不如楊柳也 近下根 刀切其皮 著熱灰中 可韜筆管, 本草曰 萇楚 一名鬼桃 一名羊腸 一名細子 其莖大如指 似樹而弱如蔓 春長嫩條柔軟 葉大如掌 上綠下白 有毛狀似苧麻而團 其條浸水有涎滑. 學祥按 陶隱居曰 甚似家桃 又非山桃 花甚赤 子小細而苦 不堪食. 今人謂獼猴桃非矣. – 시명다식

** 이가원 번역에서 나무 이름을 수정했다. 원 번역에서는 장초萇楚를 ‘양도나무’로 번역했지만 양다래이다. 여기에서는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그냥 다래로 번역해둔다. 

+표지사진: 개다래 열매, 2020.9.29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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