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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Aug 13. 2021

민족의 오랜 먹거리이자 사랑의 매개자, 마

서薯, 서여薯蕷, 산약山藥

안동 지방에서 많이 재배하는 특산물 중에 흔히 산약山藥으로 부르는 마가 있다. 외사촌 형님 중 한 분이 산약을 재배하고 있고, 이 마가 위장에 좋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한 때 나는 고구마와 닮은 마의 뿌리, 즉 산약을 주문하여 꽤 많이 먹었다. 이 마는 전국의 산야에서 자란다. 우리나라에는 마(Dioscorea batatas Decne.)* 뿐 아니라 참마(Dioscorea japonica Thunb.), 부채마(Dioscorea nipponica Makino), 단풍마(Dioscorea quinqueloba Thunb.) 등 마속(Dioscorea)의 식물이  종 자생하고 있다. 주로 잎 모양과 열매 모양으로 구분하는데, 마와 참마, 부채마와 단풍마는 잎 모양이 비슷하여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참마와 단풍마는 제주도 및 남부지방 일부에서만 자란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둘 사이를 식별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단풍마, 2018.11.10 제주도


이 마는 우리 고전에 나오는 유서 깊은 먹거리 작물인데, 바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려 있는 향가鄕歌, 서동요薯童謠가 그것이다.


善化公主主隱                 선화공주님은,

他密只嫁良置古              남 몰래 시집가고,

薯童房乙                            서동 서방을,

夜矣卵乙抱遣去如           밤이면 안고 가다.


백제百濟 무왕武王은 어린 시절 마를 캐어 팔아서 생계를 꾸려나갔으므로 동네에서 서동薯童으로 불렀다고 한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善花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서동은 서라벌로 가서 이 노래지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다. 이 노래가 퍼지자, 신라 왕실에서는 선화공주의 행실을 의심하여 귀양 보냈다. 이 때 서동이 귀양가는 선화공주를 꾀어 결혼하게 된다는 설화가 이 서동요에 얽힌 이야기인데, 누구나 한 번 즈음은 들어봤을 것이다.


부채마, 2019.11.2 양평


이 글이 삼국유사에 실려 있으므로,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서薯라는 글자로 마(Dioscorea polystachya Turcz.)를 지칭한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중국에서는 이 서薯를 어떤 식물로 이해하고 있을까? <본초강목>에서 서여薯蕷를 찾아보면 우선 이명으로 저여藷藇, 산약山藥, 옥연玉延 등을 들고 있다. 또한 “서여薯蕷는 당唐 대종代宗의 이름이 예預였으므로 피휘避諱하여 서약薯藥으로 바뀌었다. 또, 송宋 영종英宗의 휘諱가 서署여서 산약山藥으로 바뀌었다. 당시의 본래 이름을 모두 잃어버렸다.”**라고 하여, 산약으로 불리게 된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남북 지방에 걸쳐 여러 종의 서여가 있다고 술하면서, 이시진李時珍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서여薯蕷는 약에 넣는 것은 야생이 좋고, 먹거리로 올리는 것은 재배한 것이 좋다. 4월에 싹이 나서 덩굴을 뻗으며, 자주 빛 줄기에 녹색 잎이다. 잎은 삼각형으로 나팔꽃(白牽牛) 잎 같은데 광택이 있다. 오뉴월에 꽃이 피어 이삭을 이루며 담홍색이다. 무리 지어 꼬투리를 맺는다, 꼬투리는 세 모서리가 합성된 모양이며 단단하고 (열매 속의) 씨(仁)는 없다. 그 씨앗(子)은 따로 한쪽 곁에서 열리는데 모양은 뇌환雷丸과 비슷하고 크기는 고르지 않으며, 껍질 색은 누런 흙빛이고 육질은 흰색이다. 삶아서 먹으면 달고 미끌미끌한데 뿌리도 마찬가지이다.”***


마 열매, 2019.12.21 남한산성

마의 주아 모양을 묘사한 뇌환雷丸은 한약재의 일종으로 병든 대나무 뿌리 등에 기생하는 버섯(Laccocephalum mylittae)의 균핵인데, 지름이 0.8~2.5cm 정도인 불규칙한 덩어리 모양이라고 한다. 서여薯蕷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바로 마의 잎과 3개의 날개가 있는 열매, 주아와 뿌리덩이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현대 <중국식물지>도 서여薯蕷를 마(Dioscorea batatas Decne.)로 보고 있어서, 중국 문헌의 서여薯蕷는 ‘마’라고 할 수 있다.


마 주아, 2020.10.17 남한산성


우리나라에서도 <훈몽자회>에서 “薯, 마 셔”, “蕷, 마 여, 서여薯蕷는 속칭 산약山藥이다”로 설명한 후, <동의보감>, <물명고>, <광재물보>, <자전석요> 등 거의 모든 문헌에서 한결같이 서여薯蕷와 산약山藥을 마로 설명하고 있다. <조선식물향명집>에서는 마를 서여薯蕷, 참마를 산약山藥으로 보고 이 둘을 구분했지만, 전통시대의 먹거리나 약재로써의 효용으로 봤을 때 이 구분에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하여간 <한국식품사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원시농경 시대부터 “서여薯蕷[마]를 재배하여 식용에 썼다”고 했으므로, 우리가 마를 먹어온 역사는 깊다. 이 점을 인식했는지 옛 시인들도 마를 읊었는데, 그 중 대표적으로 옥담玉潭 이응희(李應禧 1579~1651)의 “마(山藥)”를 읽어본다.


참마, 2018.11.10 제주도


薯蕷生山谷     산골짜기에 마가 자라니

長根異且奇     긴 뿌리가 기이하구나

掘地抽金柱     땅을 파서 금빛 줄기 뽑아내어

登盤削玉肌     옥 같은 살을 깎아 쟁반에 올리네

融烝充老腹     삶아서 늙은이 배를 채우고

乾粥補虛羸     죽을 끓여 허약한 기운 돕는다

久服身輕健     오래 먹으면 몸이 가볍고 건강하리니

癯仙豈我欺     신선이 어찌 나를 속이랴.


<끝 2020.6.30, 2021.8.14일 학명 보완>


*<한국의 들꽃>을 보면 마에 대한 학명으로 Dioscorea oppositifolia L.과 Dioscorea batatas Decne.의 2개가 표기되어 있다. Kew 식물원의 식물 분포지역을 살펴보면, Dioscorea batatas Decne.은 Dioscorea polystachya Turcz의 이명으로, 중국과 한국에 분포하는데 반해, Dioscorea oppositifolia L.은 인디아, 미얀마,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에 분포하고 우리나라에는 분포하지 않는, 서로 다른 종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마’에 대한 <대한식물도감> 및 <한국식물도감>의 학명, Dioscorea batatas Decne 를 따랐다. (전문가의 질정을 기다립니다)

**薯蕷 因唐代宗名預 避諱改爲薯藥 又因宋英宗諱署 改爲山藥 盡失當日本名. 본초강목

***薯蕷入藥 野生者爲勝 若供饌 則家種者爲良 四月生苗延蔓 紫莖綠葉 葉有三尖 似白牽牛葉而更光潤五六月開花成穗 淡紅色 結莢成簇 莢凡三棱合成 堅而無仁 其子別結於一旁 狀似雷丸 大小不一 皮色土黃而肉白 煮食甘滑 與其根同. 본초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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