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적 겨울철에 산에서 땔나무를 하던 시절, 싸리는 언제나 인기 좋은 나무였다. 싸리는 광주리나 다래끼, 바소쿠리, 비 등을 만드는 재료가 되기도 하지만, 불에 잘 타면서도 마디고 연기가 거의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조무래기들의 설날 윷놀이에 사용할 윷을 만들 때도 싸리를 사용했다. 조선시대에 백성들이 요역으로 바친 것 중 가끔 뉴목杻木이 나오는데, 이는 대개 싸리나무를 말한다고 한다. 싸리는 땔감 이외에도 관청에서도 쓰임새가 많았다. 삼태뉴목三太杻木은 삼태기를 만드는 싸리나무라는 뜻이고, 뉴거杻炬는 싸리나무로 만든 횃불을 뜻하고 화살대도 싸리를 사용했다.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여, <한한대자전>에서 뉴杻를 찾아보면 ‘(한) 싸리축’, 즉 우리나라에서는 이 글자의 훈을 싸리나무로 설명하고 있다. 이 글자는 시경에도 나오는 글자인데, 중국에서는 싸리를 뜻하지 않았다. 반부준의 <시경식물도감>에서는 뉴杻를 중국명 요단遼椴, 혹은 강단糠椴, 즉 찰피나무(Tilia mandshurica Rupr.)로 보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싸리(Lespedeza bicolor Turcz.)의 중국명은 호지자胡枝子이다.
참싸리, 2020.9.29 남한산성
정약용은 <아억각비>에서 잘못 쓰이고 있는 글자의 하나로 이 싸리 나무를 들고 있다. 해당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뉴杻는 억檍이다. 형荊은 초楚이다. 우리나라에서 속칭 형荊을 뉴杻로 보고, 형사荊笥를 뉴롱杻籠이라고 하고, 형승荊繩을 뉴승杻繩이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종루鍾樓는 뉴목杻木으로 기둥을 만들었는데, 대개 뉴杻도 큰 것이 있다”라고 말했는데, 이수광 공이 대개 형荊을 뉴杻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당풍唐風에 ‘습지에 뉴杻가 있네’라고 나오고, 육기陸璣의 소疏에 의하면, “뉴杻는 억檍이다. 껍질은 붉은 색이다. 굽은 곳이 많고 곧은 곳은 적다. 형荊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껍질이 비록 붉지만 곧기가 화살과 같다”라고 했으니, 어떻게 굽은 곳이 많고 곧은 곳이 적다고 할 수 있겠는가? 형荊은 모형牡荊이다. ‘모형牡荊은 청靑과 적赤 두 종류가 있다. 청색이 형荊이고 적색이 고楛이다. 어린 가지로 광주리나 둥구미를 만들 수 있다. 오래도록 땔나무로 베어지지 않으면 나무 크기가 작은 주발만해진다’라고 본초강목에서 말했다. 내가 고달산高達山에서 서까래만큼 큰 것을 봤다. 다시 한 배 더 커지면 어찌 집의 도리를 만들 만하지 않겠는가? 지봉芝峯이 가리킨 것은 바로 형荊임이 분명하다.”*
사실 정약용의 이 글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정약용 선생이 뉴杻를 싸리로 이해했는지,찰피나무로 이해했는지는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형荊에 대해서는 직접 모형牡荊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목형류 나무로 이해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형荊은 중국의 <초사식물도감>에서 목형牡荊(Vitex negundo L.)류로 보고 있고, 일본의 <식물의 한자어원사전>에서도 목형(Vitex negundo var. cannabifolia)으로 설명하고 있다. 초楚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중국과 일본에서는 목형을 가리킨다. 앞의 인용문에서 뉴롱杻籠, 즉 뉴杻로 만든 고리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정양용은 뉴杻를 싸리로 이해하고, 우리나라에서 속칭 형荊을 싸리라고 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겨울 싸리, 2020.3.14 천마산 실제로 조선 후기의 일부 학자들은 형荊을 싸리나무로 이해한 것이 분명하다. 이학규李學逵(1770~1835)의 <동사일지東事日知>에는 윷놀이(柶木戱)를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요즈음 세속에서 새해 아침에 어린 아이들이 ‘형조荊條(속명 살이 俗名煞伊)’를 잘라 쪼개어 네 개로 만들고, 이를 번갈아 가며 서로 던진다. 네 매枚가 모두 엎어지는 것이 최상의 패이고 모두 위로 향하는 것이 그 다음이고, 세 매가 위로 향하는 것이 그 다음이고, 두 매가 위로 향하는 것과 한 매만 위로 향하는 것이 실패한 패이다.” ** 이 글에서 형荊 가지條를 우리 말로 ‘살이煞伊’라고 했는데, 이 살이는 싸리를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 나는 산골에서 자랄 때 적당한 크기의 싸리나무로 윷을 만들어 놀았다. 잘 자란 적당한 크기의 싸리나무를 두 토막 잘라서 반으로 쪼개어 만들었는데, 싸리나무는 아주 반듯하게 잘 쪼개어지고 껍질 색과 쪼개진 단면의 색이 잘 대조되었다. 또한, <광재물보>를 보면 ‘형비荊扉’가 나오는데 이를 “시문柴門, 사리문”으로 설명한다. ‘사리문’은 ‘사립문’, 혹은 “싸리문”을 뜻할 것인데, 사립문은 흔히 싸리로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아억각비>에서 정약용은 ‘목형’인 형荊을 일부 학자들이 ‘싸리’로 보는 것을 비판했던 것이라고 하겠다.
이제 정약용이 인용한 이수광李睟光(1563~1629)의 <지봉유설> 권19 궁실부에 나오는 다음 문장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세상에 전해지길, 평시에 종루鐘樓 기둥은 뉴목杻木이라고 한다. 대개 뉴杻도 큰 것이 있다. 옛날 주周나라 때에 쑥(蒿)으로 궁궐 기둥을 만들고 이를 호궁蒿宮이라고 했는데, 곧 이런 종류일 것이다.” 만약 이수광 선생이 뉴杻를 찰피나무 종류로 이해했다면 구태여 ‘뉴杻도 큰 것이 있다’거나 주나라에서 쑥으로 궁궐 기둥을 만든 고사를 인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찰피나무는 교목으로 크게 자라는 나무여서 충분히 종루의 기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보면, 이수광도 뉴杻를 싸리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정약용은 이수광이 종루의 기둥을 싸리로 만들었다고 한 것을 비판하면서, 싸리가 아니라 목형(牡荊)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고달산高達山에서 서까래만큼 큰 것을 봤다.라고 한 것이다. 고달산은 현재 고래산으로 불리는 양평군 지평면과 여주군 북내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한국의 나무>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목형류에 좀목형(Vitex negundo L. var. heterophylla)이 있고, 이 좀목형은 경기도와 경북, 경남, 충북의 숲 가장자리에 자란다고 한다. 싸리든 좀목형이든 모두 낙엽 관목으로 종루의 기둥으로 쓸 만큼 자란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참싸리 꽃, 2020.7.26 남한산성 이제 우리나라 고전에서 뉴杻와 형荊을 어떤 나무로 이해했는지 좀 더 살펴보자. <아언각비>에서 인용된 “뉴杻는 억檍이다”라는 말은 <이아爾雅>에 나온다. 아쉽게도 <훈몽자회>에는 뉴杻가 ‘수갑추’로만 나오고 억檍은 나오지 않는다. <전운옥편>을 보면 “뉴杻, 억檍이다. 일명 우근(牛筋 쇠심줄)이다. 활(弓)을 만들 수 있다.”로 나온다. 그 후, <자전석요>에서 뉴杻는 ‘박달나무뉴’, 억檍은 ‘참죽나무 억, 박달나무억’으로 설명했다. 일제 강점기에 출간된 <한선문신옥편>과 <한일선신옥편>도 ‘박달나무’로 훈을 달았다. 이러한 옥편류 문헌에서 뉴杻를 관목인 싸리 나무로 볼 근거는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쇠심줄’은 껍질을 벗겨 새끼로 꼬아 질긴 끈으로 만들 수 있는 피나무 종류를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삼태뉴목三太杻木이나 뉴거杻炬, 뉴롱杻籠 등의 표현이나, <한한대자전>에서 뉴杻를 ‘(한) 싸리축’이라고 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이 글자로 싸리를 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참고로,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 정태현은 복자기(나도박달) 나무의 한자명으로 뉴杻를 쓰기도 했다.
한편, 형荊은 <훈몽자회>에서 “가새 형. 다른 이름은 자형紫荊. 그리고 형조荊條, 댓싸리”로 나온다. 자형紫荊은 박태기나무(Cercis chinensis Bunge), 형조荊條는 좀목형의 중국명이고, 댓싸리는 댑싸리의 고어이다. <한일선신옥편>은 “荊, 가시형”, 현대의 <한한대자전>에서는 “荊, (1)모형형, 마편초과에 속하는 낙엽관목, (2)가시나무 형”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한다면, 중국 고전의 뉴杻는 ‘찰피나무’류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지만, 우리나라 고전에서는 ‘찰피나무’와 ‘싸리’ 중에서 문맥에 따라 잘 해석해야 할 것이다. 형荊도 대부분 목형류 나무를 뜻하지만 일부 우리 고전에서는 정약용 선생이 비판했듯이, ‘싸리’를 뜻하기도 했다. 또한 문맥상 형제간의 동기연지同氣連枝를 의미하는 단어로 형지荊枝를 쓰고 있으면, 이것은 <속제해기續齊諧記>의 자형紫荊, 즉 박태기나무이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흔히 가시나무로 치부해버리는 <세설신어>의 부형청최負荊請罪(형荊으로 만든 매를 지고 죄를 청함)나, 소박하고 가난한 부녀자를 비유하는 형차포군荊釵布裙(형荊으로 만든 비녀와 베로 만든 치마), 형극荊棘의 형荊은 모두, <성어식물도감>에 의하면 목형(Vitex negundo L.)이라고 한다.
좀목형, 2020.10.10 유명산 입구
마지막으로 이덕무李德懋의 <청장관전서>에 나오는 ‘세시잡영’과 <동문선>에 실려있는 김극기金克己의 ‘길 가다가 본 것을 읊다 (途中卽事)’에서 뉴杻와 형荊이 나오는 시를 읽어본다. 문맥으로 판단해 보면 각각 싸리와 목형을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시잡영(歲時雜詠) 중에서
…
漢陽八萬廚 서울이라 팔만 호 부엌에는
間間燈燈白 집집마다 등불이 밝구나!
喜花驗此宵 불꽃 점**** 치면서 이 밤을 즐기는데,
繁燼知誰宅 잿더미 많은 집은 누구네 집인가?
二女輕如鳧 두 딸은 오리처럼 재바르게
低仰白板頭 널 끝에 서서 오르락 내리락
裊裊繁鳴佩 치마자락 나부끼고 패옥 소리 울리는데
箇箇高出樓 한 명씩 번갈아 누각 위로 오르네
小兒剖赤杻 어린 아이들 붉은 싸리 쪼개어서
擬作骰子投 주사위 놀이 하듯이 던지며 노네
四仰四俯歡 모나 윷이면 기뻐하고
一白三紅愁 도가 나오면 실망하네
…
길 가다가 본 것을 읊다 (途中卽事)
一逕靑苔濕馬蹄 오솔길 푸른 이끼에 말 발굽은 젖는데
蟬聲斷續路高低 매미소리 끊어질 듯 이어지고, 길은 오르락 내리락 하네
窮村婦女猶多思 산골 마을 색시는 님 생각에 빠진 듯,
笑整荊釵照柳溪 웃으면서 목형 비녀 매만지고 시냇물에 비쳐보네.
70년대만 해도 내가 자란 산골 마을에서는 동네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이 모두 비녀를 꼽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가난했던 시절이지만 이 당시에도 나무 비녀는 본적이 없고 대부분 은비녀 등 금속으로 만든 비녀를 꼽고 있었던 것 같다. 금비녀나 옥비녀는 구경한 기억이 없다. 이제 비녀 찌른 모습은 사극에서나 볼 수 있으니, 요즈음은 무엇으로 부인네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을까? 아마도 피부 미용 정도와 가방 브랜드가 아닐까 싶다.
(2018년 9월 26일, 2021년 보완)
* 杻者檍也 荊者楚也 東俗以荊爲杻 荊笥曰杻籠 荊繩曰杻繩 非矣 芝峰類說云 “鍾樓以杻木爲棟 蓋杻亦有大者” 李公蓋以荊爲杻也 然唐風 “隰有杻” 陸璣疏云 “杻檍也 皮正赤 多曲少直 若荊則其皮雖赤 其直如矢” 豈得云多曲少直乎 荊者牡荊也 牡荊有靑赤二種 靑者爲荊 赤者爲楛 嫩條皆可爲筥� 年久不樵者 其樹大如盌也 … 大如椽者 余於高達山亦見之矣 更大一倍 豈不得爲屋檁哉 芝峯所指 明是荊也. – 아언각비
** 柶木戱, 今俗歲朝 小兒截荊條 俗名煞伊 剖爲四枚 遆相拋擲 四枚俱覆爲上采 俱仰爲次 三仰又其次 二仰至于一仰 爲失采矣 – 낙하생집, 동사일지
***世傳平時 鐘樓棟爲杻木云 蓋杻亦有大者 昔周時以蒿爲宮柱 謂之蒿宮 卽此類也--- 지봉유설 궁전
**** 희화喜花는 등불이 환하게 밝아 기쁜 일이 있을 조짐을 뜻하는 듯 하다. <서경잡기西京雜記>에서 육가陸賈가 “대저 눈이 깜박거려지면 술과 음식을 얻게 되고, 등불이 환해지면 돈이나 재물을 얻게 된다 (夫目瞤得酒食 燈花華得錢財)”라고 한 고사가 있다.
*****(2024.4.3 추가) 1916년에 간행된<신자전>에는 “朝鮮俗字部”가 말미에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속자의 하나로 “紐[축]檍也荊也싸리見各司官簿”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紐는 싸리를 뜻하는 글자로 쓰인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