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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Jul 30. 2021

정원수로 사랑 받으며 향으로 쓰인 향나무

회檜, 원백圓柏, 노송老松, 만송蔓松

향나무(Juniperous chinensis L.)는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고 푸르러, 옛날부터 관상용으로 정원에 심어 가꾸어왔고, 현재에도 대표적인 정원수로 사랑 받고 있다. 어린 시절 나는 가끔 종조부님 제사에 참례했는데, 종조부님께서는 향합에서 잘게 쪼개놓은 향나무를 꺼내어 향을 피우셨던 기억이 난다. 제사 때 향으로 쓰는 나무라서 진작부터 알던 나무이고,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향나무가 많다. 몇 해 전 식물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부터 그냥 지나치지 않고 구화수毬花穗며 구과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따사로운 봄날, 인편으로 연결된 잎 끝에 달리는 구화수도 관찰하고, 콩알만한 구과(毬果 cone)가 영글어가는 모습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향나무 (좌) 암그루 열매, (우) 수그루 수구화수, 2020.1.18 남한산성


이 향나무를 글자 그대로 한문으로 옮기면 향목香木이 된다. 1937년에 출간된 <조선식물향명집>을 보면 향나무(Juniperus chinensis L.)의 한자漢字 명名으로 ‘향목香木’을 기재하고 있으므로, 식물 종으로의 향나무를 가리키기도 한다. 하지만 고전에서 향목은 침향목沈香木이나 단향목檀香木, 초계椒桂 등 향기가 좋은 나무를 가리키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고전에서 향나무는 어떻게 표기되었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도감이라고 할 수 있는, 1943년판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에는 Juniperous chinensis L.의 조선명으로 ‘향나무’와 ‘노송나무’, 그리고 한자명으로 향목香木 뿐 아니라 백전栢槇, 원백圓柏, 원송圓松, 회檜, 회백檜柏, 관음백수觀音柏樹 등 16가지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해방 후 1957년 간행된 <한국식물도감>에도 향나무의 이명으로, 노송나무, 백전栢槇, 향목香木, 원백圓柏, 회檜 등 18가지를 적어두었다. 한자명이 너무 많아서 이 명칭의 전거를 모두 살펴보기는 어렵다. 이 중 회檜는 정약용이 <아언각비>에서 당시 ‘젓나무’로 잘못 쓰이는 글자라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만송蔓松, 노송老松과 함께 등장한다.


“회檜나무는 지금의 이른바 만송蔓松이다. 속칭 노송老松이다. 서리고 얽혀 취병翠屛(생울타리)이나 취개翠蓋가 되는 것이 이것이다. 지금 민간에서 삼목杉木을 회檜(한글원주: 젓나무)로 잘못 알고 있다. 시인들은 매번 곧은 줄기가 하늘로 뻗은 나무를 보고 회檜라고 읊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이 병은 이미 고질이 되어 한마디 말로는 근절시킬 수가 없다. … ‘본초’에서 이르기를 백柏(측백나무)은 그 나무가 우뚝하고 곧으며, 줄기는 곧게 자라는 경우가 많으나 가지는 덩굴과 비슷하다. 껍질은 얇고 목질은 매끄럽다. 꽃은 자잘하고 열매는 작은 방울 같은 구형이다. 서리가 내린 후 네 쪽으로 갈라지고 안에 밀 낱알 크기의 씨앗 몇 개가 들어있고, 향내를 아낄 만 하다. 측백나무 잎에 소나무 줄기가 회檜이다. …’ 이렇게 여러 글을 살펴보면, 회檜가 지금 말하는 만송蔓松임을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이 여러 층을 이루며 똑바로 위로 자라는 나무(한글원주: 젓나무)와 서로 가까운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했다.


전나무 고목, 2021.4.10 오대산


즉, 정약용은 회檜가 젓나무가 아니라 만송蔓松 혹은 노송老松이라고 했다. 정약용과 동시대를 산 이충익李忠翊(1744~1816)의 <초원유고椒園遺藁>에 “만송蔓松을 두루 심어 담장을 두르고 (遍揷蔓松繞屋垣)”라는 시구가 나온다. 이충익은 이 만송에 대해 “민간에서 원백圓柏 가운데 덩굴진 것을 만송蔓松이라고 한다”**라는 주석을 달고 있다. 원백圓柏은 향나무를 가리키므로 정약용 선생도 회檜를 당시 민간에서 노송老松이라고 부르던 향나무로 봤을 것이다.


반부준의 <시경식물도감>에도 회檜는 중국명이 원백圓柏인, 향나무(Juniperous chinensis L.)로 설명하고 있다. <식물의 한자어원사전>은 회檜를 중국에서는 원백圓柏, 즉 향나무로, 일본에서는 편백(Chamaecyparis obtuse, 히노끼)을 가리킨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향나무를 ‘이부키’, 한자로는 ‘회백檜柏’이라고 한다.


전나무 숲, 2021.5.8 영월
전나무 (좌) 수피, 2019.7.6 정선, (우) 바늘잎, 2020.10.2 인제


정약용이 아언각비에서 잘못이라고 지적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회檜를 전나무로 쓴 듯하다. 아마 <훈몽자회>에서 “檜 젓나모 회, 중국 민간에서 회송檜松 또는 원백圓柏이라고 한다”로 표기한 데서 유래했을 수도 있다. 이후, <물명고>에는 “회檜, 원백圓柏”, “원백圓柏은 “노숑”이다”라고 나온다.  <자전석요>에는 “檜 괄 백엽송신(柏葉松身) 로송나무괄”, 대정2년간 <신옥편>에는 “檜 로송나무 회”, 일제시대 <한일선신옥편>에는 “檜 전나무 회”, 현대의 민중서림 <한한대자전>을 보면 “노송나무 회”로 나온다. 이로 보면, 조선시대에 향나무를 노송나무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노송老松을 말 그대로 “늙은 소나무”를 가리킬 수도 있으므로, 문맥을 잘 살펴야 한다. 초선 초기의 저작인 강희안姜希顔(1417~1464)의 <양화소록> 첫머리에도 노송老松이 나오는 데 이 노송은 문맥으로 보아 늙은 소나무를 뜻한다고 한다.


<일성록>의 정조 10년 병자(1786) 부분에, 월송만호越松萬戶 김창윤金昌胤이 울릉도鬱陵島를 조사한 내용을 보고하고 있는데, 여기에 울릉도의 나무를 열거하고 있다. 즉, “대풍소待風所에서 바라보니, 수목으로는 동백나무(冬栢), 측백나무(側栢), 향목香木, 단풍나무(楓木), 회목檜木, 음나무(欕木), 오동나무(梧桐), 뽕나무(桑), 느릅나무(楡), 단목檀木이 있었으며”가 나온다. 당시 울릉도는 숲이 울창했을 것인데, 공교롭게도 향목香木과 회목檜木이 모두 등장하고 있다. 울릉도에 향나무가 자생하고 있고 천연기념물 48호로 지정된 향나무 숲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향목은 향나무일 것이고, 회목檜木은 전나무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울릉도에는 전나무가 자생하지 않으므로, 울릉도 식생을 고려할 때 회목檜木은 ‘솔송나무’일 가능성이 크고, 아마도 솔송나무 거목을 전나무로 오해했을 것이다.


향나무 암그루, 2019.4.28 안동

이렇듯, 우리나라 고전의 회檜는 전나무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최세진이 <훈몽자회>에서 ‘젓나무’라고 한 회檜가 1527년 당시 전나무(Abies holophylla Maxim.) 인지, 아니면 원백圓柏, 즉 향나무인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하지만 <시경>등 중국 고전의 회檜는 향나무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시경> 위풍의 시, ‘낚싯대 (竹竿)’을 읽어본다.


籊籊竹竿 가늘고 긴 낚싯대 들고

以釣于淇 기수에 앉아 낚시질 하네.

豈不爾思 어찌 그대를 생각 않으랴만

遠莫致之 너무 멀어서 만날 수가 없네.

淇水滺滺 기수 강물은 아득히 흐르는데

檜楫松舟 향나무 노 저으며 소나무 배를 탔네.

駕言出遊 이 배나 타고 나가 노닐며

以寫我憂 나의 이 시름 달래 볼꺼나.


향나무 고목, 2018.11.3 창경궁


한편 원백圓柏은 항상 ‘향나무’를 가리켰던 듯하다. 김창업金昌業(1658~1721)의 <노가재집老稼齋集>에는 회檜와 원백圓栢을 읊은 시가 나란히 나온다. 연못 가운데 푸를 돌 옆에 심었다고 하므로 회檜는 낮게 자라는 향나무 종류로 보이고, 원백은 곧게 자라는 향나무로 보인다. “자단紫檀 대신 향 피울 때 사용한다”고 하니, 어린 시절 종조부님 댁에서 본 향합 속의 향나무가 떠오른다. 김창업의 이 향나무 시를 감상하면서 글을 마친다.


회檜


移檜植池中       연못 가운데로 향나무를 옮겨 심었네

深蟠蒼石在       깊숙이 박힌 푸른 돌도 있구나

正如管幼安       진정 관유안管幼安**** 처럼

皁帽隱北海       검은 모자 쓰고 북해에 숨어 살리라.


원백圓栢


圓栢亦類檜       원백圓栢도 향나무 종류이지만

惟直爲少別       곧게 자라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네

世人取其心       세상 사람들이 그 심재心材를 취해서

充作紫檀爇       자단紫檀 대신 향 피울 때 사용한다네.
 
 

(2018.6.16 쓰고, 2021년 6월 보완)


*檜者 今之所謂蔓松也 [俗所云老松] 蟠結爲翠屛翠蓋者是也 今俗誤以杉木爲檜 [젓나무] 詩人每見直幹干霄之木 詠之爲檜 大非也 此病已錮 非片言可折 … 本草云(檜)其樹聳直 [其幹多直上 其枝似蔓] 其皮薄 其肌膩 其花細瑣 其實成毬 狀如小鈴 霜後四裂 中有數子 大如麥粒 芬香可愛 柏葉松身者檜 … 按此諸文 檜之爲今所云蔓松審矣 其有與層累直上之木[젓나무] 一毫相近者乎 - 아언각비. (참고: 본초 인용 부분은 <본초강목> 柏에 나오는데, 本草云檜는 마땅히 本草云柏이어야 한다. 아마도 <여유당전서> 간행시 교정실수인 듯 하다.)

** 遍揷蔓松繞屋垣. 俗以圓柏之蔓者爲蔓松 - 초원유고椒園遺藁

*** 自待風所 望見樹木 則冬栢側栢香木楓木檜木欕木梧桐桑楡檀木 – 일성록 (정조 10년 6월 4일)

**** 관유안管幼安 : 유안幼安은 관영管寧(162~245)의 자. 관영은 중국 삼국시대 위魏 나라의 학자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 공손도公孫度의 풍도를 듣고 요동遼東으로 옮겨 살면서 시서詩書를 강론하고 예의禮儀를 강명하여 그곳의 민풍民風을 크게 진작시켰다. 요동에 은거하면서 여러 차례 조정의 부름을 받고도 나아가지 않았으며, 항상 검은 사모紗帽를 쓰고 목탑木榻에 앉아 고결한 모습을 보였으므로 세상에서 현자로 칭송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표지사진 : 향나무 암그루, 2018.5.27 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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