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초通草, 목통木通, 임하부인林下夫人/婦人, 말응末應(멍), 야목과野木瓜
벌써 여러 해가 순식간에 흘렀지만, 2018년 11월 열두달숲의 제주도 여행에 참여하여 청수곶자왈과 화순곶자왈을 걸으며 감상했던 남국의 식물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제주도 관광은 여러 번 했지만, 식물을 감상하기 위한 여행은 그 때가 처음이었는데, 제주도의 식물상은 중부지방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예와 덕을 갖춘 듯한 예덕나무, 도깨비 방망이를 연상시키는 왕초피나무, 가시가 무시무시한 산유자나무, 충영을 매달고 있는 조록나무, 자그마한 밤 알이 맛있다는 구실잣밤나무, ‘이 나무가 먼 나무야’라고 문답하는 이나무와 먼나무, 무화과와 비슷한 천선과나무, 육박나무, 생달나무, 새덕이, 말오줌때 등 모두 신기하고 멋진 나무들이었다.
그 때 처음 만난 식물 중에 으름덩굴 비슷한 멀꿀도 있었다. 한 달 후인 그 해 12월에는 진도 첨찰산 여행에서 다시 멀꿀을 만났다. 진도에서는 빨갛게 익어가는 열매도 볼 수 있었다. 이 멀꿀 열매가 상당히 맛있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 문헌을 살펴보다가 김정金淨(1486~1521)의 <충암집冲庵集>에 실려있는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에서 흥미 있는 구절을 발견했다.
“산의 과실로 말응末應(멍)이 있는데, 열매는 크기가 모과(木瓜)**와 같다. 껍질은 검붉은 색이며, 쪼개보면 씨앗이 임하부인林下夫人 같지만 좀 더 크고 맛이 더 진한 것이 다른 점이다. 대개 임하부인 종류지만 더 큰 것이다. 해남 등지의 해변에 간혹 있다고 들었으나, 믿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 글에서 ‘임하부인’은 으름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1500년대 초반 제주도에서 ‘멍’이라고 불리기도 한 말응末應이라는 산과가 있는데 으름과 비슷하다는 기록이다. 김정이 ‘말응’으로 채록한 이 과일은 현재 우리가 멀꿀로 부르는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으름덩굴과 식물로는 으름(Akebia quinata [Thunb.] Decne.)과 멀꿀(Stauntonia hexaphylla [Thunb.] Decne.) 둘 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정이 반신반의하면서 기록한 “해남 등지의 해변에 간혹 있다고 들었다”는 전언도 나도 직접 목격한 틀림없는 사실 임에랴. 아마도 이 ‘제주풍토록’이 우리나라에서 멀꿀을 기록한 최초의 문헌일 것이다. 뛰어난 사림파 학자였던 김정金淨은 조광조와 더불어 개혁 정치를 이끌다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귀양가서 사약을 받았으니, 이 제주풍토록에 멀꿀이 기록된 데에는 기구한 배경이 있는 셈이다.
김정이 말응末應으로 표기했던 제주도에 자생하는 멀꿀은 중국 본토에는 자생하지 않는 듯 한데, <중약대사전>에는 칠저매등七姐妹藤(Stauntonia hexaphylla Decne.)의 줄기와 뿌리를 야목과野木瓜로 소개하고 있다. <중국식물지>에는 야목과野木瓜를 Stauntonia chinensis DC.로 정리했는데, 아마 멀꿀과 유사한 식물로 보인다.
하여간 멀꿀 때문에 찾은 김정의 글 덕분에 나는 우리 조상들이 으름을 임하부인林下夫人, 즉 ‘숲 속의 부인’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으름덩굴은 <본초강목> 등에 통초通草나 목통木通이라는 이름으로 실려있는데, 이 약재는 <중약대사전>에 의하면 현대 중국명 목통木通(Akebia quinata (Thunb.) Decne)이나 백목통白木通(Akebia trifoliate (Thunb.) Koidz. Var. australis (Diels) Rehd) 등의 줄기를 말한다.
그런데 중국 본초학 문헌에는 임하부인이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즉, 우리나라 문헌에만 임하부인林下夫人, 즉 ‘숲 속의 부인’을 으름의 이명으로 사용한 듯하다. 이는 변강쇠타령에서 “만첩산중 으름인지 제가 절로 벌어졌다”로 표현했듯이 으름 열매가 익어 벌어진 모습이 여성의 그곳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로 우리 조상들의 익살과 해학을 볼 수 있는 이름인데, 조선 중기의 문신 서포西浦 곽열郭說(1548~1630)의 시, ‘장난삼아 임하부인(으름)을 읊다 (戱詠林下夫人)’를 읽어 본다.
絶代佳人在谷中 절대 가인이 산골짜기에 있으니
梳風沐露淡丰容 바람이 빗질하고 이슬로 씻어 맑고 고운 모습이라!
新粧不借朱鉛力 연지와 분 힘 빌지 않고 새로 단장하여
眞態還兼色味濃 색과 맛 함께 농익은 참모습으로 돌아오네.
置驛端宜貢妃子 역참 두어 양귀비에게 바침이 마땅한데
齊眉聊且進梁鴻 일단 눈썹까지 들어올려 양홍梁鴻에게 나아갈까
夫人不减謝家女 부인은 사가謝家의 딸보다 못하지 않으리니***
尙有泠泠林下風 아직도 숲 속엔 바람이 차디차다!
이 시의 제목 임하부인에는 ‘속칭 목통木通의 열매이다’라는 원주가 붙어 있다. 앞에서 밝혔듯이 목통은 바로 으름덩굴이니, 임하부인은 으름덩굴의 열매, 즉 으름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역참을 두어 양귀비에게 바친 것은 리치(여지荔枝, Litchi chinensis Sonn.)인데, 으름을 리치에 비유한 것을 보면 조선시대에도 으름은 맛있는 산과로 알려져 있었던 듯하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6년(1500) 8월 20일 기사에, “으름(木通) 열매를 승정원에 내리면서 이르기를, ‘승지들은 이것은 함께 맛보고 이것으로써 희롱하는 시를 지어 바쳐라’”****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 때에도 으름 열매가 익어 벌어진 모양을 보고 희롱했던 듯하다. 하여간, <동의보감> 탕액편에는 통초通草의 한글 이름 ‘으흐름너출’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 자란다고 했으며, 이명으로 목통木通, 통초의 씨앗(子)을 연복자鷰覆子라고 기록했다. <제중신편>에도 ‘어흐름너출’, <향약집성방>에는 ‘어름덩굴’이 향명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통초通草, 즉 목통木通이 으름덩굴임을 말해준다. 이를 반영하여 <조선식물향명집>에서 Akevia quinata에 으름덩굴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괄호로 ‘목통’을 부기했다. 일본에서는 으름덩굴을 ‘아케비(あけび)’, 한자로는 목통木通과 통초通草를 쓰는데, 여기에서 으름덩굴의 속명인 ‘Akevia’가 유래했다고 한다. 즉, 동양 삼국에서 모두 목통木通은 ‘으름덩굴’로 사용했고, 우리나라에서도 혼동은 없었다.
으름덩굴은 우리나라 황해도 이남의 전국의 산야에서 흔히 자라고 있어서 쉽사리 만날 수 있다. 봄이 한창인 4, 5월에 한 덩굴에 크기가 다른 암꽃과 수꽃이 연한 보라색으로 피어 주렁주렁 달리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대개 5개로 이루어진 손 모양 복엽도 사랑스럽다. 나는 으름을 속칭 임하부인이라고 한다는 사실은 안 후부터, 직접 숲 속의 부인 모습이 궁금했다. 으름이 익어갈 무렵이 되면 으름덩굴을 만날 때 마다 덩굴을 헤쳐보며 눈 여겨 살펴보았으나 성숙한 열매는 볼 수가 없었다. 봄에는 꽃이 그렇게나 많이 보이고, 여름에 결실된 열매도 꽤 보였는데, 임하부인은 결국 못 만났던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9월 중순에 누군가 신구대식물원에서 찍은 으름 사진을 페이스북에서 보고, 꼭 가 봐야지 벼르다가 26일 오후 늦게야 방문할 수 있었다. 으름덩굴이 식재된 위치를 몰라서, 식물원 입구부터 서둘러 주변을 살피면서 올라갔다. 곧 문을 닫는 시간이라 헛걸음할 수도 있어서 조바심치다가 식물원 안쪽 구석진 곳에서 겨우 발견했다. 으름덩굴로 터널을 만들어 놓은 곳이었는데, 그 깊숙한 터널 속에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으름부터 완전히 벌어진 으름까지 임하부인들 천지였다. 그야말로 임하부인들이 “연지와 분 힘 빌지 않고 새로 단장하여, 색과 맛 함께 농익은 참모습"을 뽐내며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숲 속의 자생지에서 만나지 못한 아쉬움도 잊은 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한참 동안 으름을 감상했다. 으름이 맛있다는 소리는 오래전에 들었지만 아직 먹어보지는 못했다. 앞으로 부지런히 숲을 다니며 식물을 감상하다 보면 언젠가는 잘 익은 야생 으름을 만나 살짝 맛 볼 날도 있으리라.
<끝>
* 有山果末應멍 實大如木瓜 皮丹黑 剖之子如林下夫人而異 子差大 味差濃 蓋林下夫人之種而大者耳 聞海南等邊海處或有之 未知信否 - 金淨(1486~1521), 濟州風土錄
** 목과木瓜는 옛 중국에서 모과보다는 명자나무 열매를 뜻하였는데, 내가 본 멀꿀 열매의 크기는 모과보다 훨씬 적은, 명자나무 열매 크기 정도였다. 김정이 멀꿀 “열매는 크기가 모과와 같다”고 했던 목과木瓜는 명자나무 열매일지도 모른다.
*** 사가謝家의 딸은 진晉 태부太傅 사안謝安의 질녀인 사도온謝道韞(349~409)을 말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사안이 자질子姪을 데리고 시문을 논하다가 마침 눈이 쏟아지자 형용해 보라고 하였는데, 조카인 사랑謝朗이 “공중에 소금을 뿌려 놓은 것 같다 (撒鹽空中差可擬)”고 하자, 사도온이 “버들개지(버드나무 씨앗의 솜털)가 바람에 날리는 것 같다고 하는 것이 낫겠다 (未若柳絮因風起)”고 하였으므로, 사안이 좋아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下木通實于承政院曰 承旨等共嘗之 以此製戲詩以進 –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6년 8월 20일
+표지사진 - 으름, 2021.9.26 신구대식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