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柞
나는 2018년 11월, 제주도의 화순곶자왈을 걷다가 산유자나무(Xylosma congesta Merr.)의 무시무시한 가시를 보고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나무 몸통에서 뻗어 나온 가시는 단순한 바늘형 가시가 아니라, 가시 줄기에 가시가 나오는 가시 나무 모양이었다. 천적이 무엇이길래 산유자나무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가시를 달고 있을까? <한국의 나무>를 보면, 산유자나무는 우리나라의 제주도 및 전남의 바다 근처에 자생하는 상록 소교목으로, 수피에 날카로운 가시가 발달하며 잎은 어긋나고 거치가 있고, 8~9월에 꽃잎이 없는 황백색의 꽃이 핀다. 어린 나무는 잎자루의 기부에 긴 가시가 있다.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혁명을 통해 1392년 탄생한 조선은 개국 초기부터 불교를 대신하여 유교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태종실록>에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바로 역병을 구제하기 위해 태종 6년에 개화령改火令을 내리는 부분인데, 여기에서 유교 경전 <주례周禮>의 하관夏官 사훤司烜(혹은 사관司爟)에 나오는 개화改火에 대한 정현의 주석을 인용하고 있다.
“선유先儒께서는 불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으면 불꽃이 이글거리고 매우 뜨거워져 양기陽氣가 지나치게 높아지므로 모진 병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므로 때에 맞게 불을 다시 변하게 하는데, 불을 변하게 하는 방법은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켜서 바꾸는 것이다. 비술나무(楡)와 버드나무(柳)는 푸르기 때문에 봄에 불을 취하고, 살구나무(杏)와 대추나무(棗)는 붉기 때문에 여름에 취하고, 늦여름에 이르러 땅의 기운이 왕성할 때에는 뽕나무(桑)와 꾸지뽕나무(柘)의 황색 나무에서 불을 취하고, 작유(柞楢)는 희고 회화나무(槐)와 단(檀)은 검기 때문에 가을과 겨울에 각각 그 계절의 방위 색에 따라 불을 취하는 것이다. 대개 불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더욱이 늘 쓰는 것이므로 그 성질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이른바 오행설에 입각하여, 때가 바뀔 때마다 불을 바꾸어주어야 나라에 역질이 생기지 않는다는 이론을 설명한 것으로, 불을 바꿀 때 사용하는 나무를 계절의 방위 색으로 나열한 것이다.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황당무계한 이론이지만 옛날에는 진지하게 다루어져서 태종이 개화령을 내렸을 것이다. 소위 가을에 불을 취하는 흰 색 나무인 작유柞楢의 작柞이 화순곶자왈에서 본 무시무시한 가시를 가진 산유자나무라고 한다. 우선 2가지 흰색 나무 중 유楢는 <식물의 한자어원사전>에 의하면, 졸참나무(Quercus serrata Murray)나 느릅나무(Ulmus davidiana var. Japonica)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느릅나무와 같은 속의 비술나무가 봄에 사용되는 청색 나무로 분류되었으므로, 유楢가 졸참나무일 가능성이 더 클 것이라는 사실만 짧게 언급하면서, 작柞이 무슨 나무인지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본초강목>의 작목柞木을 살펴보자. “작목柞木, 착자목鑿子木이다. … 이 나무는 굳세고 질겨 끌의 자루를 만들 수 있으므로 속칭 착자목이라고 한다. … 작柞은 곧 상수리나무(橡櫟)의 이름이지, 이 나무가 아니다. … 이 나무는 산 속 곳곳에 있는데, 크기는 한 길 정도이다. 잎은 작고 가는 톱니가 있으며, 빛나고 매끄럽고 질기다. 그 나무 및 잎자루에 침 같은 가시가 있다. 겨우내 시들지 않는다. 5월에 자잘한 흰 꽃이 피고 열매는 맺지 않는다. 그 나무의 목재와 결은 다 흰색이다.**” 이것을 보면 <본초강목>에서 작목柞木을 흰색 나무로 이해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시경식물도감>이나 <중국식물지>에서도 작柞은 산유자나무(Xylosma congesta Merr.)로 설명하고 있으므로, <주례>에서 가을에 불을 취하는 나무 작柞을 산유자나무로 볼 수 있다.**** <본초강목>에서 "열매는 맺지 않는다"고 했지만, 산유자나무는 암수 딴그루이고, 암그루에는 자그마한 열매가 달린다.
하지만 우리 문헌을 조사해보면, <훈몽자회>에서 “작柞, 가랍나모작 속칭 벌라수橃欏樹, 관중關中에서는 작柞을 상수리나무(櫟)로 부른다”라고 설명했다. 그 후, <자전석요>는 “상수리나무(櫟)이다. 가랑나무작”, <신옥편>에서는 “가락나무작, 상수리나무(櫟)이다. 총생하며 가시가 있다”, <한한대자전>에서는 “떡갈나무작”으로 기술했다. 가랍나무는 참나무 류를 일컫는 고어이므로 대개 우리나라에서는 작柞을 산유자나무보다는 상수리나무(Quercus acutissima) 쪽으로 이해했음을 알 수 있다. 앞의 본초강목 인용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에서도 작柞을 상수리나무로 쓰기도 했으므로 이 영향일 것이다. 하지만 ‘가시가 있다’라는 표현은 상수리나무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유희는 <물명고>에서 “작柞은 종류가 심히 많아서 자세히 분류하여 말하기 어렵다”고 했고, <식물의 한자어원사전>에서는 작柞을 상수리나무나 산유자나무라고 했다.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 정태현은 산유자나무(Xylosma Apatis Koidzumi)의 한자명을 작목柞木과 동청冬靑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 고전에서 작柞을 만나면, 이런 사정을 감안하여 문맥에 따라 상수리나무와 산유자나무 중에서 잘 선택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혼의 즐거움을 노래한 <시경> 소아小雅 보전지습甫田之什의 시 한 수를 읽는다. 이 시에서는 땔나무를 사용하는 잎이 무성한 나무를 묘사했는데, 이 때에는 아무래도 가시가 무시무시한 산유자나무보다는 상수리나무가 어울린다.
수레 굴대빗장 (車舝)
閒關車之舝兮 수레 굴대빗장 빙빙 돌면서
思孌季女逝兮 예쁜 막내딸 시집을 가네.
匪飢匪渴 굶주린 것처럼 목마른 것처럼
德音來括 님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라
雖無好友 비록 좋은 벗이 없더라도
式燕且喜 즐기고 기뻐하리라
依彼平林 저 울창한 평지 숲에
有集維鷮 꿩들이 모여 있네
辰彼碩女 키 큰 저 아가씨 훌륭하게도
令德來教 아름다운 덕을 배웠네
式燕且譽 안락하게 즐기며
好爾無射 싫증내지 않고 그대를 좋아하리라
…
陟彼高岡 저 높은 산등성이에 올라
析其柞薪 상수리나무 찍어 땔나무를 만들었네
析其柞薪 상수리나무 찍어 땔나무로 만드노라니
其葉湑兮 그 잎새가 무성하기도 해라
鮮我覯爾 그대와 만나고 보니
我心寫兮 내 마음 후련해지네
특기할 사항은, <세종지리지> 제주목濟州牧 토공土貢에 산유자山柚子가 나오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제주목 토산土産 부분에도 산유자山柚子가 나오는데, 이는 산유자나무가 아니라 조록나무(Distylium racemosum Siebold&Zucc.)를 말하는 듯하다.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 조록나무의 한자명으로 문모수蚊母樹와 함께 산유자山柚子가 기록되어 있고, 기구器具, 악기, 빗 재료로 쓰인다고 용도를 밝히고 있다. 반면, 산유자나무에 대해서는 한자명으로 작목柞木이라고 하고, 용도는 관상용이라고 했다. 제주도에서 공물로 진상 받은 산유자는 궁중에서 쓰임새가 많았을 터인데, 그 용도를 살펴보니 <조선왕조실록>에는 호패號牌, <승정원일기>에는 다종茶鍾과 사발(木鉢),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에서는 궤樻의 횡목橫木, <진연의궤進宴儀軌>에서는 박拍을 제조할 때,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景慕宮樂器造成廳儀軌>에서는 현금玄琴, 가야금伽倻琴, 향비파鄕琵琶, 아쟁牙筝, 해금奚琴, 박拍, 태평소太平簫 등 악기를 만들 때 쓴다고 되어 있다. 이는 정확히 정태현이 기록한 조록나무의 쓰임새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조록나무의 중국명이 문모수蚊母樹이며, 일본의 <식물명감>에서도 이 나무가 건축재와 기구 제작에 쓰인다고 했다. 박상진의 <우리나무의 세계 2>에는 제주기념물로 지정된 400여년된 조록나무 고목이 소개되고 있는데, 조록나무는 제주도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조롱박 같은 충영이 있어서 쉽게 식별할 수 있는데, 조금 붉은 색이 감도는 회색 수피를 가진 줄기는 대단히 단단해 보여서 충분히 건축재와 각종 기구를 만들 수 있을 듯 했다.
<2019.4.20. 이가원의 시경 번역 참고, 2021.1월 보완>
*先儒以爲 火久而不變 則炎赫而暴熇 陽過乎亢 以生厲疾 故隨時而更變之 其變之之法 鑽燧而改 楡柳靑故春取之 杏棗赤故夏取之 至季夏而土旺 故取桑柘黃色之木 柞楢白 槐檀黑 故秋冬各隨其時之方色而取之 蓋火之爲物 在人尤爲常用 不可不順其性故也 (태종실록)
**柞木, 鑿子木. 此木堅韌 可為鑿柄 故俗名鑿子木 … 柞乃橡櫟之名 非此木也 … 此木處處山中有之 高者丈餘 葉小而有細齒 光滑而韌 其木及葉丫皆有針刺 經冬不凋 五月開碎白花 不結子 其木心理皆白色 (본초강목)
***柞 種類甚多 不可細分言之 (물명고)
**** 작유(柞楢)의 작을 상수리나무로 봐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이 글에서는 본초강목에서 작목柞木을 산유자나무로 보고 “그 나무의 목재와 결은 다 흰색이다.”라고 한데 착안하여 흰색을 상징한 가을철 개화에 사용하는 나무 작柞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작유(柞楢)의 柞이 상수리나무일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楢를 졸참나무로 볼때, 졸참나무의 수피는 대개 흰 빛이 나는 회백색이므로 흰색나무로 보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상수리나무의 수피는 대개 회갈색으로 흰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고전 문헌 해석에서 상수리나무를 흰색 나무로 본 문헌이 있으면 제고해볼 만한 의견이다. (2021.9.28)
+표지사진: 산유자나무 수피와 가시, 2020.11.15 화순곶자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