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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Jul 16. 2021

아버지의 장수를 축원하는 참죽나무

춘椿


지금은 베어져 없어졌지만, 어릴 때 자랐던 시골 집 뒤 텃밭 가에 아름드리 참죽나무(Toona sinensis Roem.)가 있었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겨울이 되면 바닥에 빼곡히 송이 채 떨어진 참죽나무 열매를 밟으면 바삭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는 점이다. 땅콩 만한 각 진 열매를 감싸며 다섯 갈래로 벌어진 열매 깍지가 바싹 말라 있어서 밟히는 소리가 컸을 것이다. 이 나무를 동네 조무래기들은 ‘가동나무’라고 불렀다. 10여년 전 겨울 어느 날, 사당역에서 관악산을 오르다가 관음사 담장 바깥에 떨어져 있는 ‘가동나무’ 열매를 보고 너무 반가워서 열매 다발 몇 개를 배낭에 넣어 집으로 가져온 적이 있다. 그 때까지 나는 이 나무의 정확한 이름을 몰랐다. 그 열매를 참고하여 도감을 샅샅이 뒤진 후에야, 어릴 적 ‘가동나무’라고 부르던 나무가 참죽나무임을 겨우 알게 되었다. 아마도 내가 나무 이름을 알아낸 후 기뻐하기로는 이 참죽나무가 제일일 것이다.


(좌) 참죽나무 겨울 모습, 2017.11.26 서울 - 어린시절 동네에 있던 참죽나무 고목도 겨울철에 열매송이를 매달고 있었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편에, “아주 옛날에 큰 춘椿은 8천년을 살아도 봄 한 철, 가을 한 철 지낸 것에 불과했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렇게 <장자>에서 춘椿을 장수하는 나무로 비유한 이래, 춘정椿庭이나 춘부장椿府丈이 남의 아버지를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반부준의 <성어식물도감>을 보면, 중국에서 춘椿을 향춘香椿, 즉 참죽나무(Toona sinensis Roem.)로 기술하고 있다. 한편, <식물의한자어원사전>을 살펴보면 춘椿이 중국과 일본에서 의미가 다르다고 하면서, 중국에서는 참죽나무(Toona sinensis), 일본에서는 ‘쯔바키’, 즉 동백나무(Camellia japonica)를 뜻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춘椿을 어떤 나무로 이해해 왔는지 문헌을 살펴보자. <훈몽자회>에서는 “椿 튱나무 츈, 속칭 춘수(椿樹)”, <광재물보>에는 “椿, 참쥭나무”로, <자전석요>에는 “椿 오래사는 나무 대춘춘, 참죽나무춘”, 대정2년간 <신옥편>에도 “椿 대츈(츈), 참죽나무(츈)”이다. 상대적으로 일관되게 참죽나무라고 설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일제시대가 지속되면서 사정이 복잡해진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본에서는 춘椿을 ‘쯔바키’라고 불렀는데, 이 ‘쯔바키’가 Camellia japonica L., 즉 동백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35년 경에 발간된 <한일선신옥편>에서는, “椿(츈) 츈나무(츈), 잎은 상록이며 겨울에도 푸르다. 꽃이 크고 매우 아름답다. 열매로 기름을 짜서 머리칼에 바른다. 쯔바키 … “라고 하여, 동백나무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민중서림 <한한대자전>을 보면 다시 “참죽나무 춘”으로 나온다.


(좌) 참죽나무 떨어진 열매송이, 2012.3.10 성남, (우) 가죽나물로 불리는 참죽나무 새순, 2020.4.26 안동 고향마을


1937년 발간된 <조선식물향명집>에서는 Toona sinensis Roemer에 ‘참중나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한자명 춘椿을 달아놓았다. 일본에서 춘椿을 ‘동백나무’로 보고 있음에도, 식민지시대 향명집 저자들은 조선시대에 이해했던 대로 ‘참중나무’라는 이름을 부여한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 후,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감>에도 참중나무를 한자명으로 진승목(眞僧木), 향춘수(香椿樹)라고 했는데, 아마 ‘참중나무’는 ‘진짜 스님’나무라는 뜻일 터이다.


우리나라에는 참죽나무가 자생하지 않지만, 일찍이 중국에서 전래된 참죽나무를 신라시대부터 인가 근처에 심었다고 하며, 봄에 새순을 ‘가죽나물’이라고 하여 식용하고 있다. 또한 참죽나무 목재는 무늬가 아름다와 예로부터 소목장이 아끼는 고급 가구재이다. 이렇듯,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이므로, 상대적으로 나무 이름에 대한 혼란은 없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 춘椿을 동백나무라고 하고, 특히 뒤마의 소설 동백꽃여인(La Dame aux camélias)을 각색한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를 <춘희(椿姬)>로 소개하면서 혼란이 발생하여, 가끔 이 글자를 동백나무로 보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전의 춘椿은 동백나무가 아니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춘椿을 ‘대춘(大椿)’, ‘영춘(靈椿)’, ‘춘나무’, ‘대춘나무’, ‘영춘나무’ 등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정확히 참죽나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참죽나무 꽃차례, 2018.6.13 고양 서오릉


이제 춘椿이 시어로 사용된,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 동정東亭 염흥방(廉興邦 ?~1388)의 생일을 축하하는 시 한편을 읽어본다.


一樹靈椿照海天     바다와 하늘을 비추는 신령스러운 참죽나무,

祥風瑞露幾千年     상서로운 바람과 이슬을 몇 천년이나 적시었나?

東亭獨坐於其下     그 나무 아래 동정東亭께서 홀로 앉아 계시니

壽算端知也並傳     나무와 나란히 장수하실 줄 알겠네.


이 생일 축하연 시에서 참죽나무(椿)는 장수를 축원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영춘靈椿은 아버지를 신령스러운 참죽나무에 비유하여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1538~1593)은 ‘경원慶源의 객사客舍에서 묵은 해를 보내다’라는 시에서 팔순이 넘는 아버지, 청계靑溪 김진金璡(1500~1580)의 장수를 축원하는 내용이 있다.


今年此夜盡        올해 이 밤이 지나면

親齡逾八袠        아버님 연세가 팔순을 넘네

遊子客萬里        만리 타향의 나그네로 떠도는 신세

寸心空愛日        마음은 부질없이 날을 아끼네

我願一日永       내 소원은 하루 해가 길어져

可當千甲乙       천갑자와 맞먹게 되는 거라네

靈椿八萬春       영춘靈椿께서는 팔만 년을 봄으로 삼아

天地無終畢       천지와 더불어 끝이 없으리!


참죽나무 열매, 2018.8.8 창경궁


요즈음이야 백세시대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칠십만 해도 드물게 보는 장수長壽라고 하여 고희古稀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여든을 넘긴 김진金璡은 당시에 장수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부모님 연세가 아무리 높아도 더 오래 사시길 바라는 것은 모든 자식들의 바람일 터이다. 영춘靈椿에 얽힌 이야기를 쓰고 있자니, 환갑을 갓 넘기신 후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신 아버지가 더욱 그립다. 산골 마을에서 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이며 <명심보감> 등을 배우던 어린 시절이 아련하기만 하다.


(2018.6.17 쓰고, 2021년 5월 보완)


*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爲春 八千歲爲秋 -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표지사진 - 참죽나무, 2018.6.13 고양 서오릉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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