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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Jul 09. 2021

봉황이 깃드는 벽오동과 팔공산 동화사

오梧, 오동梧桐, 동桐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2년 3/4월)

<천자문>에 오동조조梧桐早凋, 즉 “오동나무는 일찍 시든다”라는 구절이 있다. 덕분에 오동梧桐은 옛날부터 학동들이 일찍 배우는 나무 이름 중 하나인데, 나도 초등학교 시절 선친으로부터 “오동오(梧), 오동동(桐), 일찍조(早), 시들조(凋)”로 배웠다. 그리고 이 오동梧桐을 산골 동네에서 볼 수 있던, 잎이 큰 오동나무로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천자문>의 오동梧桐이 과연 ‘오동나무’일까? 오동에는 오동나무도 있지만 봉황이 깃든다는 벽오동도 있고 개오동, 꽃개오동도 있으므로, 한번 쯤 의문을 가져볼 만 하다.


오동나무, 2018.4.29 성남


아무튼, 고전 번역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글자가 오동梧桐일 것이다. 내가 식물애호가로서 고전에서 한자로 표기된 식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도 바로 이 글자에 있다. 조선시대에도 우리 조상들은 봉황이 깃드는 나무를 벽오동이라고 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무명씨의 시조가 인구에 회자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잣더니

    내가 심는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오고

    무심한 일편명월이 빈 가지에 걸렸어라.


 그러므로 고전에서 오梧나 동桐을 만나면 이 글자가 벽오동인지 그냥 오동나무(참오동)인지 문맥을 보아 잘 구분해야 할 텐데. 한학자들이 그냥 오동나무로 번역하고 있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벽오동, 2021.7.8 논산


아마도 2016년 정도로 기억되는데, 어느 날 식물애호가 모임에서 대화 자락이 팔공산 동화사桐華寺의 동桐이 벽오동인지 오동나무인지에 이르렀다. 나는 어줍잖게, “화華는 꽃을 뜻하고, 나무에 꽃이 핀 모양을 나타내는데, 오동나무가 잎이 나기 전에 꽃이 화려하게 피는데 반해 벽오동은 잎이 난 후에 꽃이 피므로 동화사의 동桐은 오동나무를 말할 지도 모르지요”라고 말했다. 그 날 이후, 나는 고전에 나오는 식물을 나타내는 한자들이 현대 식물분류학에서 밝힌 종으로 가급적 정확히 번역하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고전에서 오梧나 동桐을 만났을 때 대강 오동나무로 이해하는 것은, 아마도 이 두 나무의 관계가 형제가 아니라 사돈의 팔촌 정도로 먼 나무라는 사실을 고전을 읽거나 해석하는 사람들이 간과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동나무(Paulownia tomentosa [Thunb.] Steudel)는 현삼과에 속하고, 중국 중북부 원산으로 우리나라 전역에 야생화하여 자란다. 잎이 나기 전 4-5월에 원추상꽃차례에 보라색 꽃이 핀다. 3~4.5cm 크기의 삭과蒴果 열매가 꽃이 열렸던 자리에 주렁주렁 매달린다. 벽오동(Firmiana simplex [L.] W. Wight)은 벽오동과에 속하고 중국과 일본 원산으로 공원이나 정원에 식재한다. 벽오동은 손모양 잎이 난 후 6~7월에 원추꽃차례에 자그마한 황록색 꽃이 매달린다. 골돌과蓇葖果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데 씨앗이 익기 전에 꼬투리가 벌어진다. 씨앗의 크기는 5~7mm이고 표면에 주름이 진다. 화투의 똥(桐)이 벽오동의 잎과 열매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이 정도의 배경 지식을 가지고 벽오동이 나오는 고전을 살펴보자.


<장자莊子> 추수秋水 편에, 장자가 양梁나라 재상직에 있는 혜자惠子를 방문하여, “남방에 새가 있는데 그 이름이 원추(鵷鶵 봉황)라네. 그대는 아는가? 원추鵷鶵가 남해를 출발하여 북해로 날아갈 때 오동梧桐이 아니면 앉지 않고, 연실練實(대나무 열매)이 아니면 먹지 않고, 예천醴泉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네”*라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 육기陸璣(261~303)의 <모시초목조수충어소毛詩草木鳥獸蟲魚疏>에도 “봉황은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皇, 그 새끼를 악작鸑鷟 혹은 봉황鳳皇이라고 한다. 일명 언鶠이다. 오동梧桐이 아니면 깃들지 않고, 죽실竹實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가 나온다. 아마도 봉황은 벽오동나무에 깃든다는 이야기는 여기에서 전파되었을 것이고, 앞 문장에서 ‘오동梧桐’은 분명히 벽오동을 뜻하지만, 상당수 번역에서 ‘오동나무’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좌) 오동나무 꽃, 2020.5.22 이천, (우) 오동나무 열매, 2019.6.23 성남 - <광재물보>의 동桐


이제부터 각종 문헌에서 동桐과 오동梧桐의 용례를 살펴본다. <훈몽자회>에서는 “桐 머귀 동”, “梧 머귀 요”이다. <자전석요>에는 “桐 오동 동”, “梧 오동 오라고 했는데, 머귀는 오동의 고어이다. 1800년대에 편찬된 어휘집 <광재물보>에는 동과 오동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우선 동桐에 대해서는, “동桐, 먹위나무, 잎은 크기가 한 척尺이다. 아주 잘 자라고, 껍질 색은 거친 흰색이다. 그 나무는 가볍고 비어있으며, 벌레와 좀이 슬지 않는다. 견우화牽牛花(나팔꽃) 같은 흰 꽃이 핀다. 열매를 맺으면 크기가 대추만 하며 껍질 안에 씨앗 조각이 있다. 가벼워서 껍질이 깨어져 열리면 바람을 따라 날아간다. 백동白桐, 황동黃桐, 포동泡桐, 의동椅桐, 영동榮桐이라고 부른다”***고 하여, 바로 ‘오동나무’의 특성을 기술하고 있다.


오동梧桐에 대해서는, “벽오동, 오동나무와 비슷하지만 껍질이 푸르고 꺼칠꺼칠한 주름이 없다. 곧게 자라고 나뭇결이 세밀하며 단단하다. 꽃은 꽃술이 가늘고 아래로 떨어지면 골마지 같다. 꼬투리는 세 치 정도인데 다섯 조각이 합쳐져 있다. 익으면 삼태기처럼 쪼개져 열린다. 씨앗은 크기가 호초胡椒 같다. 친櫬, 청동靑桐이라고 하며 열매 껍질 이름은 탁악橐鄂이다”****라고 하여 ‘벽오동’이라고 하면서 벽오동 꽃 모양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광재물보>의 설명은 <본초강목>의 동桐과 오동梧桐 항목 설명과 일치한다. 즉, <본초강목>과 <광재물보>는 동桐은 오동나무로, 오동梧桐은 벽오동으로 보고 해당 나무의 특성을 잘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벽오동 꽃, 2021.7.8 논산
벽오동 (좌) 수형, (우) 열매, 2021.9.19 안동 하회마을

유희柳僖(1773~1837)의 <물명고>에서는 동桐에 대해, “네 종류가 있다. 한 글자로 쓰인 동桐은 많은 경우 이 백동白桐을 가리킨다.”고 했다. 백동白桐은 포동泡桐(Paulownia fortune [Seem.] Hemsl.)을 말하고, 우리가 오동나무로 부르는 중국명 모포동毛泡桐(Paulownia tomentosa [Thunb.] Steud.)과 같은 속의 유사한 나무이다. 또한, <시경식물도감>을 보면 중국에서 동桐을 현재의 포동泡桐(Paulownia fortunei [Seem.] Hemsl.)이라고 했다. 오동梧桐에 대해서는, 현재 청동靑桐 혹은 오동梧桐, 즉 벽오동(Firmiana simplex [L.] W. Wight)으로 밝혀 놓았다. <식물의 한자어원사전>도 마찬가지로 동桐을 포동泡桐(Paulownia fortune), 일본에서는 오동나무(Paulownia  tomentosa)로, 오梧는 벽오동(Firmiana simplex)으로 설명한다.


이제 결론을 내려보자면, 고전에서 오梧나 오동梧桐은 벽오동이 확실하다. <천자문>의 오동조조梧桐早凋도 벽오동이다.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으로 시작하는, 주희朱熹(1130~1200)가 지은 것으로 잘못 알려진 시 ‘우성偶成’ 중 "섬돌 앞의 오엽梧葉은 이미 가을 소리를 (階前梧葉已秋聲)"의 오엽梧葉은 벽오동 잎일 것이다. 다음에서 소개하는 <시경>의 시, ‘굽이진 언덕 (卷阿)’에서 오동梧桐도 봉황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벽오동이다.


鳳凰鳴矣 봉황새가 우네

于彼高岡 저 높은 산등성이에서

梧桐生矣 벽오동이 자라네

于彼朝陽 저 동쪽 기슭에서

菶菶萋萋 벽오동 우거져서

雝雝喈喈 봉황새 소리 어우러지네.


한편, 동桐은 <물명고>의 설명처럼 한 글자로 쓰이면 대부분 오동나무를 뜻한다.++ 하지만 벽오동으로 쓰일 경우도 가끔 있을 것이므로 문맥을 잘 살펴야 한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의 시 ‘초여름 (初夏)’의 첫 구절이 “동화桐華가 수 없이 어지럽게 지는데 (桐華無數落紛紛)’인데, 이 때 동桐은 꽃 피는 시기로 보아 벽오동일 가능성이 크다.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1517~1563)의 시 ‘곽대용이 부쳐준 시에 차운하다 (次郭大容見寄)’에도 동화桐華가 나온다. 이 시는 “자그마한 뜰에 봄은 깊어 배꽃이 지고 (小庭春老落梨花)”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봄 풍경을 읊었으므로, 오동나무 꽃일 것이다.


鳥啼花落春應老   새 울고 꽃 지며 봄은 깊어가도

氷亂霜寒鬢未消   얼음 같이 희어진 귀밑머리는 녹지 않으리

最晩桐華行欲謝   마지막 오동나무 꽃도 지려 하는데

思君才步意無聊   그대 생각하며 걸음 옮기지만 마음은 무료하네.


오동나무 열매와 꽃눈, 2021.1.1 인천 - 오동나무 황금빛 꽃눈이 봄빛을 기다리고 있다.


다시 대구 팔공산 동화사桐華寺의 동桐이 오동나무인지 벽오동인지 살펴보자. 동화桐華라는 표현은 <본초강목>에 보인다. 즉, “동화桐華은 통筒을 이룬다. 그래서 그 나무를 동桐이라고 한다. … 먼저 꽃이 피고 나중에 잎이 나오므로 이아爾雅에서는 영동榮桐이라고 했다.”*****라고 했다. 이때 동화桐華는 오동나무 꽃을 말한다. 그리고,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동화사를 찾아 보면, “493년에 극달極達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하였다. 그 뒤 832년(흥덕왕 7)에 왕사 심지心地가 중창하였는데, 그 때가 겨울철인데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하였으므로 동화사로 고쳐불렀다고 한다.”라는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오동나무가 벽오동보다 꽃이 두어달 먼저 피므로, 채 봄이 오기 전에 동화사의 동桐 꽃이 피었다면, 벽오동 보다는 ‘오동나무’일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추정해볼 따름이다.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2년 3/4월호, pp. 90~97. --- 2018. 6. 24 쓴 글을 2021년 6월 보완함)


*南方有鳥 其名鵷鶵 子知之乎 夫鵷鶵發於南海 而飛於北海 非梧桐不止 非練實不食 非醴泉不飲 – 장자

** 鳳 雄曰鳳 雌曰皇 其雛為鸑鷟 或曰鳳皇 一名鶠 非梧桐不棲 非竹實不食 - 모시초목조수충어소毛詩草木鳥獸蟲魚疏

*** 桐, 葉大徑尺 最易生長 皮色粗白 其木輕虛 不生蟲蛀 開白花如牽牛花 結實大如棗 殼内有子片 輕虛 殼裂則随風揚去 = 白桐 黃桐 泡桐 椅桐 榮桐 – 광재물보

**** 梧桐, 似桐而皮靑不皵 其木無節 直生理細而性緊 其花細蕊 墜下如醭 其莢長三寸許 五片合成 老則裂開如箕 子大如胡椒 = 櫬 靑桐 實殼名 橐鄂 – 광재물보

***** 桐華成筒 故謂之桐 其材輕虛 色白而有綺文 故俗謂之白桐泡桐 古謂之椅桐也 先花後葉 故爾雅謂之榮桐 – 본초강목

+ 표지사진 - 꽃이 반발한 벽오동, 2021.7.8 논산

++ 박세당朴世堂의 색경穡經의 전가월령田家月令을 보면, 三月은 “季春桐始華虹始見”으로 시작한다. “동桐이 비로소 꽃이 핀다”는 음력 3월이 대개 양력 5월에 해당하므로, 이때 동桐은 오동나무이며, 꽃피는 것을 화華로 표현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 이 전가월령은 중국 농서를 인용한 것이라고 하므로, 중국에서도 桐은 오동나무를 뜻한다는 한 사례가 될 것이다. (2022.5.14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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