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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Nov 05. 2021

무늬가 아름다운 최고의 목재 느티나무

거欅와 황유黃楡

2018년 12월 말에 경주를 방문했을 때 유서 깊은 계림鷄林을 홀로 거닌 적이 있다. 경주 김씨 시조의 탄생 설화가 서려 있고, 신라시대부터 있던 숲으로 천 년이 훨씬 넘은 숲인데, 수령 1300여년을 추정하는 회화나무가 아직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고, 왕버들과 느티나무(Zelkova serrata [Thunb.] Makino) 고목들이 고색창연하게 한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회화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므로, 신라인이 심었을 터이다. 1300년이나 되었다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왕버들과 느티나무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므로 원래 계림을 구성하는 나무였을 가능성이 큰데, 이 숲이 지나온 오랜 세월을 가늠해보면서 느티나무 숲을 감상했다. 계림의 대표적 수종인 느티나무는 전국적으로 마을의 당나무로 가장 많이 보호되는, 우리 민족의 삶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나무이다. 임경빈의 <천연기념물-식물편>을 보면, 1993년 당시까지 13건의 느티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은행나무 19건, 소나무 17건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이번에는 느티나무가 우리나라 고전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는 지 살펴본다.


계림의 느티나무 숲, 2018.12.26 경주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에서 느티나무로 번역된 글자를 찾아 보면 괴槐, 괴수槐樹, 유楡, 거櫸 등이다. 괴槐나 괴수槐樹는 (회화나무를 다룬 글에서 밝혔듯이) 비록 일부에서 느티나무로 사용한 용례가 있다 하더라도 회화나무로 봐야 하고, 유楡도 느릅나무과의 비술나무이다. 오리무중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현대 식물 분류 연구가 처음 이루어진 일제강점기의 느티나무의 한자명 표기를 살펴보았다. 우선 조선어학회에서 1936년에 초판을 발행한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보면 ‘느티나무’는 규목槻木이라고 했다. 조선박물연구회가 1937년에 발간한 <조선식물향명집>에서는 느티나무를 거櫸로 기록했다. 그 후에 발간된 <조선삼림식물도설>을 보면, 느티나무의 한자명으로 괴목槐木, 규목槻木, 거㯫, 계유鷄油, 궤목樻木 등을 들고 있다. 궤목樻木은 궤樻를 만드는 나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느티나무가 가구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는 사실에서 유래된 듯하다.


느티나무  수형, 2020.3.28 성남 중앙공원


조선시대 사전류 문헌에도 느티나무가 나오는데, <훈몽자회>에서는 “황유수黃楡樹 누튀나모”로 나온다. <고어사전>을 보면, 1690년 간 역어유해譯語類解를 인용하여 횡괴수黃槐樹를 ‘느틔나모’라고 했다. 유희柳僖(1773~1837)는 <물명고>에서 “괴槐의 음이 회懷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인데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이유 없이 ‘느티괴’라고 해서 훗날 민간에서 잘못 알게 되었음은 어찌된 일인가?”*라고 하면서 괴槐를 ‘회화나모’라고 밝히고, 대신 황유黃楡를 ‘느틔’라고 했다. <훈몽자회>와 <물명고>를 따르면, 조선시대에 느티나무를 황유黃楡로 표기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식물지>에서는 느티나무를 거수欅樹로 적고, 이명으로 광엽거光葉櫸, 계유수鷄油樹, 광광유光光楡 등을 나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거櫸와 음이 근사한 거㯫, 계유鷄油 등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자라지 않지만, 느티나무와 같은 속의 나무로 중국명 대엽거수大葉欅樹(Zelkova schneideriana Hand.-Mazz. Symb)가 있다. 이 나무의 이명이 황치유黄梔榆인데, 조선시대 문헌에서 황유黄榆라고 한 것과 인연이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도 느티나무를 게야키(けやき)라고 하고, 한자로 거櫸를 쓴다. 이로 보면 우리나라 고전에서 느티나무는 거櫸, 황유黄榆 등으로 표현했고, 일부에서 잘못 혼동하여 괴목槐木으로 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대부분 황유黄榆를 ‘누런 느릅나무’로 번역하는데, 이는 문맥을 검토하여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이제 내용으로 보아 느티나무가 분명한 ‘황유黃楡’라는 제목의 시를 읽어본다. 이학규李學逵(1770~1835)의 낙하생집洛下生集에 나온다.


官閣東頭煙霧深             관청 누각의 동쪽 머리 연무煙霧 깊은 곳

鶯啼鳩咽曉沈沈             꾀꼬리 울고 비둘기 흐느끼는 새벽은 침침한데

南來木植渾奇大             남쪽에서 가져와 심은 나무가 아주 크게 자랐구나

一樹黃楡五畞陰             느티나무 한 그루 그늘이 다섯 이랑에 드리우네.


느티나무 단풍, 공세리 성당, 2021.11.6
수령 380년 가량의 공세리 성당 느티나무, 2011.11.6


고전에 가끔 ‘황유새黃楡塞’, 혹은 ‘백초황유白草黃楡’라는 글귀가 나오기도 한다. 이것은 황유黄榆라는 나무가 중국 동북·화북 지방 등 변경에 많이 자라는 데서 기인한 표현인데, 느티나무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일부 한의학 문헌은 황유黄榆를 무이蕪荑(Ulmus macrocarpa Hance, 왕느릅나무)의 이명으로 보는 곳도 있다. 한편 조선시대 문헌에 거류櫸柳도 나오는데, 이 나무는 현재 중국굴피나무(Pterocarya stenoptera C. DC.)로 중국명 풍양楓楊이라고 한다. <한국의 나무>에 의하면 중국굴피나무는 중국 원산으로 우리나라에는 정원수로 식재되고 있어서, 조선시대에 많이 심어졌을 것 같지는 않다. <광재물보>를 보면, 거欅와 거류欅柳를 같은 나무로 보고, “우리나라의 ‘오리나무’가 아닐까 생각된다”고 했다. <물명고>는 <본초강목>을 인용하여, “거류欅柳는 버들(柳)이라고 하지만 버들이 아니고, 회화나무(槐)라고 하지만 회화나무가 아니다. 가장 큰 것은 크기가 대여섯 장丈이다. 어린 껍질은 고리짝을 두르는데 쓴다. 목재는 홍자색으로 상자나 책상을 만들고, 잎을 따서 달콤한 차를 만든다. 이에 의거해보면 느티나무(黃楡)에 가까운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거류櫸柳는 중국문헌에 바탕을 둔 글이 분명할 경우에는 ‘중국굴피나무’일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느티나무’ 혹은 ‘느티나무와 버드나무’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안동의 느티나무 고목들 - (좌) 하회마을 삼신당, 2018.5.26, (우) 도산면 온계종택, 2019.7.22


내가 안동에서 만난 느티나무로는 하회마을 삼신당의 600여년 된 고목과 도산면 온혜리 온계종택 뒤의 울퉁불퉁한 느티나무가 기억에 남는다. 하회마을의 느티나무는 풍산류씨 입향조인 류종혜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2년전 겨울, 양평에서 상록공방을 운영하는 친구의 목재 창고를 방문했을 때에도, 안동에서 구해 왔다는 태풍에 무너진 느티나무 고목 가지를 잘라 온 목재를 감상했다. 수백 년 세월을 담고 있는 나뭇결 무늬가 환상적이었다. 이 느티나무 목재는 워낙 귀한 것이라서, 작품으로 출품할 가구의 앞 면에 그 결을 살려서 사용할 거라고 한다. 과연 <큰사전>의 느티나무 설명처럼, “재목은 누르스름하고, 단단하고, 나무 결이 아름다워서, 가구나 건축 재료로 많이 쓰”인다.


느티나무 목재 무늬, 2018.12.14 양평


형암炯庵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나오는 글 하나를 소개한다. 황유黃楡로 만든 책상에 대한 명銘인데, 내가 보기에는 느티나무가 분명하다.


느티나무 책상 명 (黃楡丌銘)


余家有古丌 可支大卷 우리 집에 옛날 책상이 있는데 큰 책을 지탱할 만하다.


劉黃楡             느티나무를 베어

具四脚             네 다리를 갖추었네

質又澤             바탕도 윤택하고

其廣踰尺          너비도 한 자가 넘네

究其用             그 쓰임을 알아보면

書丌也             책상이지

非棋局             바둑판은 아니네


<끝 2020.5.1>


* 槐, 懷者仝 葉如苦參 樹極大而皮黑 花黃結角 회화나모 槐音懷 擧世知之 而徐四佳無端以爲느티괴 遂誤後俗 何也 – 물명고

** 欅柳, 謂柳非柳 謂槐非槐 最大者 高五六丈 取嫩皮緣栲栳 木肌紅紫作箱案 采葉爲甜茶 据此 如黃楡近似 = 鬼柳 – 물명고

*** (2024.4.3 추가) 1916년에 간행된<신자전>에는 “朝鮮俗字部”가 말미에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속자의 하나로 “[귀] 卽木 一名黃楡 늣티나무 見官簿”가 나온다.

+표지사진 : 아산 공세리 성당 느티나무, 20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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