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梧, 오동梧桐, 동桐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2년 3/4월)
<천자문>에 오동조조梧桐早凋, 즉 “오동나무는 일찍 시든다”라는 구절이 있다. 덕분에 오동梧桐은 옛날부터 학동들이 일찍 배우는 나무 이름 중 하나인데, 나도 초등학교 시절 선친으로부터 “오동오(梧), 오동동(桐), 일찍조(早), 시들조(凋)”로 배웠다. 그리고 이 오동梧桐을 산골 동네에서 볼 수 있던, 잎이 큰 오동나무로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천자문>의 오동梧桐이 과연 ‘오동나무’일까? 오동에는 오동나무도 있지만 봉황이 깃든다는 벽오동도 있고 개오동, 꽃개오동도 있으므로, 한번 쯤 의문을 가져볼 만 하다.
아무튼, 고전 번역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글자가 오동梧桐일 것이다. 내가 식물애호가로서 고전에서 한자로 표기된 식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도 바로 이 글자에 있다. 조선시대에도 우리 조상들은 봉황이 깃드는 나무를 벽오동이라고 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무명씨의 시조가 인구에 회자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잣더니
내가 심는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오고
무심한 일편명월이 빈 가지에 걸렸어라.
그러므로 고전에서 오梧나 동桐을 만나면 이 글자가 벽오동인지 그냥 오동나무(참오동)인지 문맥을 보아 잘 구분해야 할 텐데. 한학자들이 그냥 오동나무로 번역하고 있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아마도 2016년 정도로 기억되는데, 어느 날 식물애호가 모임에서 대화 자락이 팔공산 동화사桐華寺의 동桐이 벽오동인지 오동나무인지에 이르렀다. 나는 어줍잖게, “화華는 꽃을 뜻하고, 나무에 꽃이 핀 모양을 나타내는데, 오동나무가 잎이 나기 전에 꽃이 화려하게 피는데 반해 벽오동은 잎이 난 후에 꽃이 피므로 동화사의 동桐은 오동나무를 말할 지도 모르지요”라고 말했다. 그 날 이후, 나는 고전에 나오는 식물을 나타내는 한자들이 현대 식물분류학에서 밝힌 종으로 가급적 정확히 번역하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고전에서 오梧나 동桐을 만났을 때 대강 오동나무로 이해하는 것은, 아마도 이 두 나무의 관계가 형제가 아니라 사돈의 팔촌 정도로 먼 나무라는 사실을 고전을 읽거나 해석하는 사람들이 간과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동나무(Paulownia tomentosa [Thunb.] Steudel)는 현삼과에 속하고, 중국 중북부 원산으로 우리나라 전역에 야생화하여 자란다. 잎이 나기 전 4-5월에 원추상꽃차례에 보라색 꽃이 핀다. 3~4.5cm 크기의 삭과蒴果 열매가 꽃이 열렸던 자리에 주렁주렁 매달린다. 벽오동(Firmiana simplex [L.] W. Wight)은 벽오동과에 속하고 중국과 일본 원산으로 공원이나 정원에 식재한다. 벽오동은 손모양 잎이 난 후 6~7월에 원추꽃차례에 자그마한 황록색 꽃이 매달린다. 골돌과蓇葖果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데 씨앗이 익기 전에 꼬투리가 벌어진다. 씨앗의 크기는 5~7mm이고 표면에 주름이 진다. 화투의 똥(桐)이 벽오동의 잎과 열매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이 정도의 배경 지식을 가지고 벽오동이 나오는 고전을 살펴보자.
<장자莊子> 추수秋水 편에, 장자가 양梁나라 재상직에 있는 혜자惠子를 방문하여, “남방에 새가 있는데 그 이름이 원추(鵷鶵 봉황)라네. 그대는 아는가? 원추鵷鶵가 남해를 출발하여 북해로 날아갈 때 오동梧桐이 아니면 앉지 않고, 연실練實(대나무 열매)이 아니면 먹지 않고, 예천醴泉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네”*라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 육기陸璣(261~303)의 <모시초목조수충어소毛詩草木鳥獸蟲魚疏>에도 “봉황은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皇, 그 새끼를 악작鸑鷟 혹은 봉황鳳皇이라고 한다. 일명 언鶠이다. 오동梧桐이 아니면 깃들지 않고, 죽실竹實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가 나온다. 아마도 봉황은 벽오동나무에 깃든다는 이야기는 여기에서 전파되었을 것이고, 앞 문장에서 ‘오동梧桐’은 분명히 벽오동을 뜻하지만, 상당수 번역에서 ‘오동나무’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이제부터 각종 문헌에서 동桐과 오동梧桐의 용례를 살펴본다. <훈몽자회>에서는 “桐 머귀 동”, “梧 머귀 요”이다. <자전석요>에는 “桐 오동 동”, “梧 오동 오라고 했는데, 머귀는 오동의 고어이다. 1800년대에 편찬된 어휘집 <광재물보>에는 동과 오동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우선 동桐에 대해서는, “동桐, 먹위나무, 잎은 크기가 한 척尺이다. 아주 잘 자라고, 껍질 색은 거친 흰색이다. 그 나무는 가볍고 비어있으며, 벌레와 좀이 슬지 않는다. 견우화牽牛花(나팔꽃) 같은 흰 꽃이 핀다. 열매를 맺으면 크기가 대추만 하며 껍질 안에 씨앗 조각이 있다. 가벼워서 껍질이 깨어져 열리면 바람을 따라 날아간다. 백동白桐, 황동黃桐, 포동泡桐, 의동椅桐, 영동榮桐이라고 부른다”***고 하여, 바로 ‘오동나무’의 특성을 기술하고 있다.
오동梧桐에 대해서는, “벽오동, 오동나무와 비슷하지만 껍질이 푸르고 꺼칠꺼칠한 주름이 없다. 곧게 자라고 나뭇결이 세밀하며 단단하다. 꽃은 꽃술이 가늘고 아래로 떨어지면 골마지 같다. 꼬투리는 세 치 정도인데 다섯 조각이 합쳐져 있다. 익으면 삼태기처럼 쪼개져 열린다. 씨앗은 크기가 호초胡椒 같다. 친櫬, 청동靑桐이라고 하며 열매 껍질 이름은 탁악橐鄂이다”****라고 하여 ‘벽오동’이라고 하면서 벽오동 꽃 모양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광재물보>의 설명은 <본초강목>의 동桐과 오동梧桐 항목 설명과 일치한다. 즉, <본초강목>과 <광재물보>는 동桐은 오동나무로, 오동梧桐은 벽오동으로 보고 해당 나무의 특성을 잘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희柳僖(1773~1837)의 <물명고>에서는 동桐에 대해, “네 종류가 있다. 한 글자로 쓰인 동桐은 많은 경우 이 백동白桐을 가리킨다.”고 했다. 백동白桐은 포동泡桐(Paulownia fortune [Seem.] Hemsl.)을 말하고, 우리가 오동나무로 부르는 중국명 모포동毛泡桐(Paulownia tomentosa [Thunb.] Steud.)과 같은 속의 유사한 나무이다. 또한, <시경식물도감>을 보면 중국에서 동桐을 현재의 포동泡桐(Paulownia fortunei [Seem.] Hemsl.)이라고 했다. 오동梧桐에 대해서는, 현재 청동靑桐 혹은 오동梧桐, 즉 벽오동(Firmiana simplex [L.] W. Wight)으로 밝혀 놓았다. <식물의 한자어원사전>도 마찬가지로 동桐을 포동泡桐(Paulownia fortune), 일본에서는 오동나무(Paulownia tomentosa)로, 오梧는 벽오동(Firmiana simplex)으로 설명한다.
이제 결론을 내려보자면, 고전에서 오梧나 오동梧桐은 벽오동이 확실하다. <천자문>의 오동조조梧桐早凋도 벽오동이다.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으로 시작하는, 주희朱熹(1130~1200)가 지은 것으로 잘못 알려진 시 ‘우성偶成’ 중 "섬돌 앞의 오엽梧葉은 이미 가을 소리를 (階前梧葉已秋聲)"의 오엽梧葉은 벽오동 잎일 것이다. 다음에서 소개하는 <시경>의 시, ‘굽이진 언덕 (卷阿)’에서 오동梧桐도 봉황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벽오동이다.
鳳凰鳴矣 봉황새가 우네
于彼高岡 저 높은 산등성이에서
梧桐生矣 벽오동이 자라네
于彼朝陽 저 동쪽 기슭에서
菶菶萋萋 벽오동 우거져서
雝雝喈喈 봉황새 소리 어우러지네.
한편, 동桐은 <물명고>의 설명처럼 한 글자로 쓰이면 대부분 오동나무를 뜻한다.++ 하지만 벽오동으로 쓰일 경우도 가끔 있을 것이므로 문맥을 잘 살펴야 한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의 시 ‘초여름 (初夏)’의 첫 구절이 “동화桐華가 수 없이 어지럽게 지는데 (桐華無數落紛紛)’인데, 이 때 동桐은 꽃 피는 시기로 보아 벽오동일 가능성이 크다.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1517~1563)의 시 ‘곽대용이 부쳐준 시에 차운하다 (次郭大容見寄)’에도 동화桐華가 나온다. 이 시는 “자그마한 뜰에 봄은 깊어 배꽃이 지고 (小庭春老落梨花)”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봄 풍경을 읊었으므로, 오동나무 꽃일 것이다.
鳥啼花落春應老 새 울고 꽃 지며 봄은 깊어가도
氷亂霜寒鬢未消 얼음 같이 희어진 귀밑머리는 녹지 않으리
最晩桐華行欲謝 마지막 오동나무 꽃도 지려 하는데
思君才步意無聊 그대 생각하며 걸음 옮기지만 마음은 무료하네.
다시 대구 팔공산 동화사桐華寺의 동桐이 오동나무인지 벽오동인지 살펴보자. 동화桐華라는 표현은 <본초강목>에 보인다. 즉, “동화桐華은 통筒을 이룬다. 그래서 그 나무를 동桐이라고 한다. … 먼저 꽃이 피고 나중에 잎이 나오므로 이아爾雅에서는 영동榮桐이라고 했다.”*****라고 했다. 이때 동화桐華는 오동나무 꽃을 말한다. 그리고,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동화사를 찾아 보면, “493년에 극달極達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하였다. 그 뒤 832년(흥덕왕 7)에 왕사 심지心地가 중창하였는데, 그 때가 겨울철인데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하였으므로 동화사로 고쳐불렀다고 한다.”라는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오동나무가 벽오동보다 꽃이 두어달 먼저 피므로, 채 봄이 오기 전에 동화사의 동桐 꽃이 피었다면, 벽오동 보다는 ‘오동나무’일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추정해볼 따름이다.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2년 3/4월호, pp. 90~97. --- 2018. 6. 24 쓴 글을 2021년 6월 보완함)
*南方有鳥 其名鵷鶵 子知之乎 夫鵷鶵發於南海 而飛於北海 非梧桐不止 非練實不食 非醴泉不飲 – 장자
** 鳳 雄曰鳳 雌曰皇 其雛為鸑鷟 或曰鳳皇 一名鶠 非梧桐不棲 非竹實不食 - 모시초목조수충어소毛詩草木鳥獸蟲魚疏
*** 桐, 葉大徑尺 最易生長 皮色粗白 其木輕虛 不生蟲蛀 開白花如牽牛花 結實大如棗 殼内有子片 輕虛 殼裂則随風揚去 = 白桐 黃桐 泡桐 椅桐 榮桐 – 광재물보
**** 梧桐, 似桐而皮靑不皵 其木無節 直生理細而性緊 其花細蕊 墜下如醭 其莢長三寸許 五片合成 老則裂開如箕 子大如胡椒 = 櫬 靑桐 實殼名 橐鄂 – 광재물보
***** 桐華成筒 故謂之桐 其材輕虛 色白而有綺文 故俗謂之白桐泡桐 古謂之椅桐也 先花後葉 故爾雅謂之榮桐 – 본초강목
+ 표지사진 - 꽃이 반발한 벽오동, 2021.7.8 논산
++ 박세당朴世堂의 색경穡經의 전가월령田家月令을 보면, 三月은 “季春桐始華虹始見”으로 시작한다. “동桐이 비로소 꽃이 핀다”는 음력 3월이 대개 양력 5월에 해당하므로, 이때 동桐은 오동나무이며, 꽃피는 것을 화華로 표현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 이 전가월령은 중국 농서를 인용한 것이라고 하므로, 중국에서도 桐은 오동나무를 뜻한다는 한 사례가 될 것이다. (2022.5.14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