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극영(1903~1988)의 동요, 반달의 한 구절이다. 이 노래를 웅얼거리던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이 계수나무가 보고 싶었다. 꽤 오래 전인데,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 어리던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대공원에 갔다가 드디어 계수나무(Cercidiphyllum japonicum Siebold & Zucc.) 팻말을 달고 있는 나무를 만났다. 하늘을 향해 곧고 크게 자란 나무였고, 하트 모양의 아담한 잎은 노란 색으로 물 들어 있었다. 계수나무라 왠지 시적으로 느껴졌다. 계수나무는 중국남부와 일본 원산으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사이의 공터에도 몇 그루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자주 감상하는 활엽수이다.
계수나무 겨울 모습, 2020.12.27 성남
계수나무 (좌) 꽃차례, 2020.3.28 성남, (우) 잎, 2021.4.24 오산
하지만 이 계수나무는 달나라 설화 속의 계수나무가 아니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 나무는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들여와서 조경수로 심어졌는데, 일본명 ‘桂(가쯔라)’를 계수나무로 번역하면서 나무 이름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연향수連香樹라고 하여 계桂와는 인연이 멀다. 또 잎을 요리에 향료로 사용한다는 월계수(月桂樹 Laurus nobilis L.)도 찾아 보았다. 영어로 laurel이라고 부르는 이 나무는 일본이 서양문명을 도입할 때 '월계수月桂樹'로 명명하면서 우리나라도 월계수로 부르게 된 나무이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어 남부 지방에서 재배하는 상록수이고, 고대 그리스에서 월계관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나무이지만 지중해 원산이라서 달나라 설화 속 계수나무로 보기는 어려웠다. 그렇다면 달나라에 있다는 계수나무는 무슨 나무란 말인가?
월계수, 2022.3.6 물향기수목원 온실
동요 ‘반달’의 배경이 되었을, 달나라 계수나무 설화는 명확한 출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아마 <회남자淮南子> 남명훈覽冥訓 편에 나오는 “예羿가 서왕모西王母로부터 불사약을 구했는데, 항아姮娥가 훔쳐서 달나라로 도망갔다”*라는 구절과, 당나라 때 편집된 <유양잡조酉陽雜俎>의 “옛 말에 달나라에 계桂와 두꺼비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책에서 달나라 계桂는 키가 오백 장丈인데 그 아래에 한 사람이 항상 도끼로 자르고 있다가 나무와 하나가 되었다. 그 사람 성명은 오강吳剛으로 서하西河 사람이다. 신선을 배우다가 잘못하여 귀양가서 나무를 베는 벌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아마도 이것이 각색되어 전해진 것으로 짐작한다. 달에 두꺼비와 토끼가 있다는 내용은 <고금합벽사류비요古今合璧事類備要> 등에 보인다. 이제 이 달나라 계수나무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목서, 2019.10.6 선암사
흔히 계수나무로 불리는 계桂는 중국의 고대 북방 문학의 대표인 <시경>에서는 찾을 수 없다. 대신 남방 문학을 대표하는 <초사楚辭>에는 다음 구절을 포함하여 여러 곳에 나온다.
桂棟兮蘭橑 계桂 대들보여! 등골나물을 서까래에 얹고
辛夷楣兮葯房 자목련 처마여! 구릿대로 침실을 꾸미네.
- 구가九歌 상부인湘夫人 (1)
嘉南州之炎德兮 남쪽 고을이 따뜻하여 기쁘고,
麗桂樹之冬榮 계수桂樹가 겨울에도 꽃다워 아름답네.
- 원유遠遊 (2)
桂樹叢生兮山之幽 그윽한 산 속에 뭉쳐 자라는 계수桂樹여!
偃蹇連蜷兮枝相繚 가지는 엉켜있고 웅크린 모습 높아라!.
- 초은사招隱士 (3)
즉, 계桂는 대들보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큰 나무로, 남방에서 겨울에도 늘 푸르며, 숲을 이루어 자라기도 하는 나무인 것이다. 반부준의 <초사식물도감>을 보면 이 계桂가 상록교목으로 크게 자라는 나무일 경우는 현대 중국명 육계肉桂(Cinnamomum cassia Presl.)이고, 소교목일 경우 중국명 계화桂花(Osmanthus fragrans Lour.)라고 했다. 그리고 계수桂樹로 표기되었을 경우에도 계화라고 설명한다. <식물의 한자어원사전>에서도 계桂는 Osmanthus fragrans 혹은 Cinnamomum cassia를 가리킨다고 했다. 우리는 Cinnamomum cassia Presl.을 육계나무(계피나무)로, Osmanthus fragrans Lour.는 목서로 부르고 있다. 이로 보면 중국 고전의 계桂는 육계나무와 목서를 나타낸다고 하겠다.
금목서, 2019.10.6 선암사
<본초강목>을 살펴보면, 향목류에 계桂, 균계箘桂, 천축계天竺桂 등이 설명되어 있다. 우선 계桂에 대해서는 모계牡桂, 즉 <이아>의 침梫으로 보고, 별명으로 육계肉桂라고 하면서 현재의 육계나무를 설명하고 있다.
균계箘桂에 대해서는, “이 계桂는 어린 잎을 대통처럼 쉽게 말 수 있어서 옛날에는 통계筒桂를 썼다. … 균계箘桂 잎은 감나무 잎과 비슷하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 요즘 사람들이 재배하는 암계巖桂도 이 균계箘桂 종류로 조금 다른 것인데, 그 잎은 감나무 잎 같지 않다. 또한 비파나무 잎처럼 톱니가 있고 꺼칠꺼칠한 것도 있고, 치자나무 잎 같이 톱니가 없고 광택이 나고 매끈한 것도 있다. 바위 고개 사이에 모여 나는 것을 암계巖桂라고 한다. 속칭 목서木犀인데 그 꽃이 흰 것을 은계銀桂, 노란 것을 금계金桂, 붉은 것을 단계丹桂라고 한다. 꽃이 가을에 피는 것, 봄에 피는 것, 사계절 피는 것, 달마다 피는 것이 있다. 그 껍질은 얇고 맵지 않은데 감히 약에 넣을 수 없는데 그 꽃은 거두어 쓸 만하다.”***라고 했다.
<중약대사전>에서, 균계箘桂와 통계筒桂는 육계나무로 보고 있지만, 뒤의 암계巖桂 설명 부분은 목서에 대한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 천축계天竺桂로 부르는 나무는 생달나무(Cinnamomum japonicum Siebold)인데, 본초강목의 천축계도 이 나무이다. 생달나무 껍질도 계피桂皮로 쓴다. 이 중 생달나무는 우리나라 남부 섬 지방에 자생하지만, 육계나무와 목서는 우리나라에는 자생하지 않는다.
생달나무, 2018.4.15 여수 금오도
생달나무 (좌) 수피, 2020.11.15, 서귀포, (우) 잎, 2020.11.14 서귀포 - 천축계이다. 이 생달나무 껍질도 계피로 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계桂를 어떤 나무로 이해했는지 살펴보자. <훈몽자회>에는 “桂 계피 계”, 즉 육계나무로 이해했다. <전운옥편>에는 “桂계, 나무 이름, 백가지 약 중에 제일 (木名百藥之長)”으로 소개된다. 육계나무에 가깝게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광재물보>에는 “桂계, 달에 있는 나무”로 소개하고, 또 “桂계, 남쪽 지방의 산마루에 자라며, 겨울과 여름에 항상 푸르다. 이 나무 종류는 저절로 숲을 이루는데 다른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잎 크기는 비파나무 잎 같은데 단단하고 털과 톱니가 있다. 꽃은 황백黃白 2가지 색이다. 침梫, 모계牡桂이다”****라고 자세히 나무의 형태를 설명했는데, 이는 본초강목에서 인용한 것으로 육계나무를 말한다.
정약용은 <아언각비>에서, “계桂는 남쪽 지방의 나무이다. 또한 균계菌桂와 모계牡桂가 있다. 모두 약으로 쓸 수 있다. 중국에서도 오직 양자강 남쪽에 있고, 우리 동방에는 자라는 곳이 없다”*****라고 했다. 그리고, 조선의 문인들이 시어로 쓴 계桂는 실제로 보고 쓴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정약용도 주로 육계나무 류를 설명했다고 볼 수 있다.
<자전석요>에는 “桂계, 백약 가운데 제일 (百藥之長), 계수 계”, <한선문신옥편>에도, “桂계수나무(계), 나무 이름, 백약 가운데 제일 (木名百藥之長)”로 기재되어 있다. 즉 <자전석요>와 <한선문신옥편>은 <전운옥편> 내용을 가져오면서 훈몽자회의 ‘계피’ 대신 ‘계수나무’로 훈을 달았다. <한일선신옥편>에서는 ““桂궤, 계수, 약목이며 껍질이 두텁고 향기가 많다(藥木 皮厚香多), 가쯔라”로 일본명을 도입했다. 물론 ‘가쯔라’는 우리 식물 분류의 계수나무(Cercidiphyllum japonicum Siebold & Zucc.)이지만 약으로 쓴다는 기록은 찾기 어렵다. 현대의 민중서림 <한한대자전>에서는 “桂 계수나무계, 녹나무과의 상록교목”으로 설명하고 있다. 소항목 “계수桂樹”를 “녹나무과에 속하는 열대지방에 나는 상록교목. 근간根幹의 두꺼운 껍질은 육계肉桂라 하여 약재로 씀”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대체로 우리나라 문헌들에서는 계桂를 육계나무로 이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가쯔라(계수나무)가 조경용으로 도입되고 이 나무에 식물학자들이 ‘계수나무’라는 이름을 부여하면서 혼란스럽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좌) 은목서, 2019.10.6 순천 선암사, (우) 금목서, 2019.10.6 보성
이런 내용만으로는 달나라 ‘계桂’가 육계나무인지 목서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달의 정령인 항아姮娥를 연상하면 꽃 향기가 좋은 목서일 듯 하지만 오강吳剛이 도끼질 한 큰 나무를 연상하면 육계나무일 것 같다. 애초에 설화에 나오는 나무를 현대 분류학의 특정 나무로 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부질없는 일일 듯하다. 하지만 시인들은 대부분 달나라 계수나무를 꽃향기가 좋은 계화桂花, 즉 목서로 보고 시를 읊었다. 그러므로 고전의 계桂를 번역할 때는 문맥을 보아 약용이 강조된 곳에서는 육계나무로, 꽃 향기가 강조한 곳에서는 목서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고전에서 과거에 급제한 것을 ‘계화桂花를 꺽었다’, 혹은 ‘계화桂花가 피었다’라고 표현하는데 이 계화도 목서일 것이다. 임창순의 <당시정해>에 실려있는 왕건王建의 시 한 수를 읽어본다.
8월 보름날 달을 바라보며 (十五夜望月)
中庭地白樹棲鴉 마당에는 땅이 환하게 밝고 나무에는 까마귀 잠들었는데,
冷露無聲濕桂花 찬 이슬 소리 없이 목서 꽃을 적신다.
今夜月明人盡望 오늘밤 달이 밝아 사람들 모두 쳐다보는데,
不知秋思在誰家 누가 가을을 가장 슬퍼하는지 아는 이는 없을 것이다.
목서, 2019.10.6 선암사 - 아쉽게도 목서 꽃은 몇 송이 겨우 남기고 모두 지고 있었다. 아직 잔향히 은은하다.
우리나라에는 식재한 목서가 남쪽 지방의 사찰 등에 드물게 자라고 있다. 목서의 변종으로 황색 꽃이 피는 나무를 금목서라고 하고, 목서와 구골나무 사이의 교잡종으로 흰 꽃이 피는 것을 은목서라고 하는데 모두 남쪽 지방에서 볼 수 있다. 나는 2019년 10월 초순에 순천 선암사를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계화桂花, 즉 목서 꽃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아울러 은목서와 금목서도 감상했다. 은목서 꽃은 만발하여 한창 시절인데, 꽃자루가 긴 목서와 금목서 꽃은 이미 시들고 있었다. 다행히 몇 송이가 아직 지지 않고 있어서 기특하고 고마웠다. 향기를 감상한 일행들은 모두 목서 향기가 은목서보다 좋다고 했다. 달나라에는 토끼가 지금도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고 있겠지만, 이 목서 꽃 향기를 맡으면서는 토끼보다는 달나라로 도망간 선녀 항아姮娥를 떠올리는 게 어울리는 것 같다.
(2018. 7. 9 처음 쓰고, 2021.5월에 수정하다. 권경인, 임창순 당시정해 참조,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1년 9/10월호, pp.74~80.) 9/10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