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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Aug 04. 2023

<동국여지승람>의 제주도 토산 노목櫨木은?

녹나무

가장 가고 싶은 국내 여행지를 물으면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제주도를 손꼽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식물 감상 취미를 가지고부터 제주도는 내가 더욱 더 좋아하는 여행지가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중부지방과는 달리 사철 푸르른 난대수림을 지닌 제주도는 2,000여종에 달하는 식물 종이 어우러져 있어서 식물 다양성의 보고로 일컬어진다. 지금이야 식물 다양성이 높은 곳이면 좋은 곳으로 각광받지만, 조선시대에는 좀 의미가 달랐던 듯하다. 자라는 식물이 다양하니 식물자원이 풍부하고, 이는 곳 왕실에 진상해야 하는 토산물이 많아진다는 의미였다. 진상을 받는 왕실이야 좋겠지만, 진상품을 준비하여 바쳐야 하는 제주도민으로서는 큰 고통이 수반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제주목濟州牧의 토공土貢중 나무 종류로 귤橘, 유자柚子, 산유자목山柚子木, 이년목二年木, 비자목榧子木, 천련자川練子, 팔각八角, 오배자五倍子, 치자梔子, 모과木瓜, 해동피海東皮, 후박厚朴, 두충杜沖, 만형자蔓荊子, 지각枳殼 등이 나온다. 이것들은 모두 왕실에서 약용, 식용, 가구용 등 쓰임새가 있어서 진상받았을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제주목 토산품에도 감柑, 귤橘, 유柚, 비자榧子, 치자梔子, 적률赤栗, 가시율加時栗, 무환자無患子, 산유자山柚子, 이년목二年木, 노목櫨木, 두충杜冲, 지각枳殼, 후박厚朴, 연실楝實, 해동피海東皮, 팔각八角 등이 있다. 제주도 식물들을 알아가면서 나는 이 조선시대 문헌에 기록된 나무들이 무엇인지 매우 궁금했다.


구실잣밤나무 (좌) 열매 (2018.12.9. 진도), (우) 잎 (2020.11.14. 제주도 서귀포)

이 중에 귤橘, 유자柚子, 비자榧子, 후박厚朴 등 상당수 진상품에 대해서는 현재의 이름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산유자山柚子는 조록나무, 천련자川練子*와 연실楝實은 멀구슬나무, 팔각八角*은 붓순나무 열매로 보인다. 김정金淨(1486~1521)의 <제주풍토록>에 “가시율加時栗과 적율赤栗 2가지는 상수리 종류이다. 쓰지 않아 죽을 만들 수 있다.”**라고 했고, 김상헌金尙憲(1570~1652)의 <남사록南槎錄>에서 “적율赤栗과 가시율加時栗 두 나무는 모두 열매가 상수리와 밤 같다.  맛이 달고 쓰지 않아서 제주 사람들이 골라 모아서 저장하여 구황품으로 준비한다.”***라고 기록했다. 이런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적률과 가시율은 구실잣밤나무나 모밀잣밤나무 종류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년목二年木과 노목櫨木에 이르러서는 이것이 어떤 나무인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이 글에서는 노목이 어떤 나무인지 검토한다.  (이년목은 가시나무 류이며, 이 글 부록에서 근거를 밝힌다.)


노목은 일부 연구자들이 검양옻나무나 무환자나무, 녹나무 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마도 이 세 종류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침뇌변증설沈腦辨證說’에서 이규경李圭景(1788~?)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제주에는 노목櫨木이 있다. 용뇌龍腦와 사향麝香 향기가 난다. [노목櫨木은 어떤 나무를노櫨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혹시 중원中原의 장목樟木(녹나무)인가? 지금 속칭 용목龍木은 혹이 많고 기이한 무늬가 있으며 냄새가 용뇌龍腦와 같다. 기구류를 만들만 하다. 이른바 노목櫨木이 이 나무를 가리키는가? 진晉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에 ‘습로목拾櫨木, 일명 무환無患. 옛날에 신무神巫가 있었는데 귀신을 만나면 이것으로 몽둥이를 만들어 죽였다.’라고 했다. 우리 제주부濟州府에 많이 있다. 속칭 목감주木甘珠 나무이다. 호남湖南, 호서湖西의 바다를 접한 읍에 간혹 있다. 그 열매 이름이 목감주木甘珠이다. 색깔이 잠자리나 도마뱀 눈처럼 묘하여 조정 신하들이 갓끈을 만드는데 쓴다. 혹시 이 나무를 가리키는가?] 뜻있는 사람이 이 나무를 취해서 장뇌처럼 승화시켜 달이면 곧 용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무환자나무 (좌) 잎, (우) 열매 (2018.11.11. 제주도 화순곶자왈)
무환자나무 (좌) 열매와 단풍 (2020.11.15 화순곶자왈), (우) 수피 (2018.11.11. 화순곶자왈)


즉, 이규경은 노목이 녹나무일지 모르지만 확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용목, 무환자나무, 모감주나무일 가능성을 들고 있다. <중약대사전>에 의하면 습로목은 무환자나무(Sapindus mukorossi)이다. 당시 속칭 용목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한국의나무>에 의하면 제주도에는 무환자나무는 자생하지만 모감주나무는 자생하지 않으므로, 이규경은 무환자나무와 모감주나무를 혼동하고 있는 듯하다. 아무튼 노목이 모감주나무일 가능성은 없다. 그리고 제주도 지리지 문헌에서 노목과 나란히 무환자나무가 기록되어 있으므로, 노목과 무환자나무는 서로 다른 나무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규경이 노목으로 추정한 나무 중 녹나무만 남는다.


검양옻나무 (2020.11.14. 서귀포)
산검양옻나무 (좌) 단풍 (2020.11.15. 서귀포), (우) 열매 (2023.6.11. 목포 유달산)


한편 정태현은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 검양옻나무에 대해 한자명 황노黃櫨를 기록하고, “과실果實은 채뇌용採腦用”으로 쓴다고 했다. 산검양옻나무에 대해서는 한자명이 산황로목山黃櫨木이고 용도는 기구재라고 했다. 이 기록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부 연구자들이 노목을 검양옻나무로 보고 있다. <한국의나무>에 의하면 검양옻나무는 낙엽 소교목 또는 교목으로 “전남(흑산도, 홍도) 및 제주의 낮은 지대 숲속에 매우 드물게” 자라고, 산검양옻나무는 낙엽 소교목으로 “제주, 경남, 전남의 산지(숲 가장자리)에 흔하게 자라며 충남, 충북, 경기, 황해도에 분포”한다고 했다. 나무 식별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검양옻나무와 산검양옻나무를 구분하기 어렵고, 산검양옻나무의 경우 제주, 경남, 전남의 숲 가장자리에 흔하게 자란다고 한 점으로 보아 지리지 문헌에서 이 나무를 제주도 특산물로 기록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외형상으로 옻나무와 유사한 검양옻나무에 칠漆 대신 노櫨를 쓸 개연성도 별로 없다.


이제 노목이 녹나무임을 보여주는 문헌을 좀 더 살펴보자. <목민심서> 공전工典에는 “제주의 세 고을에서 감귤과 유자나무는 매년 심고 접 붙이며, 비자나무(榧木), 노목櫨木, 조록나무(山柚子)는 가까이 사는 사람을 지정하여 지키게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노목이 귀한 나무이며 인가 가까이 있는 키 큰 나무임을 말하고 있다. 이원진李元鎭(1594~1665)의 <탐라지耽羅志> 토산조土産條에서는 노목櫨木에 대해 “나무에 뇌腦 향기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목이 “과실果實은 채뇌용採腦用”이라고 한 검양옻나무가 아니라면, 앞에서 이규경이 장뇌를 만들 수 있는 장樟이 아닐까라고 추정한 바와 같이 노목은 녹나무일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


녹나무 잎 (2018.11.10. 제주도 청수곶자왈)

1965년 간행된 제주도 기록에 “도순리道順里 일주도로에서 북으로 500m 오르면 150년령의 난대성 야생상록활엽수인 녹나무 네 그루가 무성하고 있다. 높이가 20m 둘레가 400평이나 차지하였으니 옛날에는 거목들이 이 지방일대를 덮고 있었다 한다. 주로 방비防鼻 방부용防腐用 화장품 원료로 이용된다 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고 했다. 이렇듯 제주도에서 자생하며 뚜렷하게 인식된 녹나무이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 녹나무(Cinnamomum camphora)를 뜻하는 장樟이 제주도 지리지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장뇌樟腦가 약재로 쓰인 관계로, <동의보감> 탕액편 등 우리나라 본초학 문헌이나 <물명고> 등 어휘사전들은 대개 장樟은 기록하고 있지만 우리말 이름은 적지 않고 있다. 그런데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 정태현은 Cinnamomum camphora에 대해 제주도 방언 ‘녹나무’를 조선명으로 올리고 있고 한자명은 장樟이라고 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면 조선시대 학자들은 제주도에서 녹나무라고 불리던 나무가 장樟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음차로 노나무(櫨木)라고 적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다가 에밀 타케(Emile Taquet, 1873~1952) 신부 등 1900년대 초반 제주도 식물 조사에 의해 녹나무가 밝혀지면서 비로소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에 Cinnamomum camphora가 ‘녹나무, 장樟’으로 명명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하버드대 아널드식물원에는 제주도에서 타케 신부가 1908년에 제주도에서 채집한 녹나무 표본이 보존되어 있다.******


녹나무 수피 (2018.11.11 제주도 화순곶자왈)

이제 녹나무를 떠올리면서 윤봉조尹鳳朝(1680~1761)의 <포암집圃巖集>에서 노목이 등장하는 시 한편을 감상한다. ‘도중잡영島中雜詠’ 중 한 수이다.


文榧爲爾柱       비자나무는 너희 집 기둥이 되고

櫨木爲爾門       녹나무는 너희 집 문이 되네

黃柑生爾庭       감귤은 너희 집 뜰에서 자라고

金橘垂爾園       금귤은 너희 동산을 드리우네.

爾田胡麻稠       너희 밭에 참깨는 순조롭고

爾圃蘘荷繁       너희 채마밭에 양하는 싱그럽네

防風擷爲菜       방풍을 캐어 나물을 무치고

磨麥炊作飧       보리를 갈아 익혀 저녁밥을 짓네

霜前冬栢實       서리 맞은 동백 열매와

雪裏蘿葍根       눈 속에 무 뿌리.

種種各土性       좋아하는 토질이 각각이고

節候殊寒溫       춥고 따뜻한 절후도 다르네

久住心亦慣       오래 머무르면 마음도 익숙해지나니

荒俗欲無論       거친 풍속이야 말할 것 없다네


<한국의 나무>에 따르면, 녹나무는 높이 30m까지도 자라는 상록교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남부)의 계곡부에 드물게 자란다. 종소명 camphora는 장뇌(camphor)를 함유하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장뇌는 전통적으로 방충제 및 감염성 질병의 예방약으로 사용해왔다. 녹나무는 이렇듯 중요한 약재인 장뇌의 원료가 되므로, 만약 조정에서 노목이 녹나무(樟)임을 알았다면, 장뇌가 진상품 목록에 들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제주도민들의 고통은 가중되었을 테지만, 다행히도 제주도에서 장뇌를 진상했다는 기록은 없다.


<끝>

-표지사진: 녹나무 (2022. 8. 14. 제주도 추사적거지)

*川楝子는 중국 사천성 산의 멀구슬나무 열매로 상품이라고 한다. – 신씨본초학. <중약대사전>에 의하면 川練子는 Melia toosendan Sieb.의 열매이지만 동속 식물 멀구슬나무(Melia azedarach L.)의 열매도 대용한다고 한다. 八角은 <중약대사전>에 의하면 八角茴香이라고도 하며, Illicium verum Hook. F.의 열매로 향신료로 쓰인다. 제주도에 드물게 자라는 붓순나무 열매가 팔각과 비슷한데, 독성이 강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한의학계에서는 산형과 초본 식물 회향의 열매를 八角茴香이라고 한다.

** 加時栗赤栗 二物。乃橡實之類。但不苦。可作粥 – 제주풍토록

*** 赤栗 加時栗 兩木皆實如橡栗 味甘不苦州人捨聚藏置以備救荒 - 남사록南槎錄

**** 濟州有櫨木 生腦麝氣 [櫨木 未知何木爲櫨 而或中原之樟木歟 今俗呼龍木者 多瘤有奇紋 而臭如龍腦 堪作器什 所稱櫨木 指此木歟 晉崔豹古今注 拾櫨木 一名無患 昔有神巫 得鬼則以此爲棒殺之 我濟州府多有之 俗呼木甘珠木 湖南 湖西沿海邑或有之 其實名木甘珠 色以蜻蜓眼爲妙 作朝士笠纓 櫨木云者 或指此木也] 意者取此木升鍊如樟腦 則似可成腦也 - 五洲衍文長箋散稿-沈腦辨證說

***** 濟州三邑柑橘柚 每年栽接 榧木櫨木山柚子 定旁近人看守 – 목민심서, 공전

****** 에밀 타케의 선물, 정홍규, p.114 참고. 1906년 초판이 간행된 <자전석요>에서 장樟을 ‘노나무 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은 1921년판 <한일선신옥편>에 ‘노나무 장, 구스노키’라고 설명한다. 녹나무를 노나무라고 한 것인데, 이 기록들이 1900년대 초반에 이미 제주도 노목櫨木이 녹나무임을 알게 되어 ‘노나무’라고 설명했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종가시나무 (2020.11.14. 서귀포)


[부록-이년목에 대해]

제주도 진상품 중 하나인 이년목은 대부분 번역에서 어떤 나무인지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2년생 나무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이년목의 용례를 조사해보면, 아주 단단한 나무로 창槍 자루나 가마를 만들 때, 편종이나 석경 등 악기를 만들 때 사용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인조 13년(1635년) <승정원일기>의 다음 기록이다.


“구굉具宏이 ‘장창長槍 1,000 자루를 장차 만들려고 하옵니다만 그 일이 쉽지 않사옵니다. 대개 자루가 없기 때문이옵니다. 마땅히 자루로 쓸 만한 나무를 구한 다음에 만들 수 있사옵니다.’라고 아뢰었다. 주상께서 ‘만드는 것이 도읍의 군병이 소지한 것과 같은가?’라고 물었다. 구굉이 ‘그것을 본떠서 만드옵니다. 이것은 이년목二年木, 가세목加世木을 사용하여 만드는데, 경기京畿의 참나무(眞木)는 무거워서 들 수가 없사옵니다.’라고 아뢰었다. (具宏曰 長槍一千柄 將爲造成 而其役未易 蓋無柄之故也 當得可柄之木 然後可造也 上曰 其制如都邑軍兵所持者乎 具宏曰 依倣爲之 此以二年木加世木爲之 京畿眞木 重不可擧也 - 승정원일기 인조 13년 9월 18일 을축 1635년).”


이년목을 창자루로 쓴다고 하면서 이들을 참나무와 비교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인데, 이는 이 둘이 유사한 나무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리고, 이규경李圭景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차축으로 고저苦櫧를 쓴다. 민간에서 가사나무(哥斯木)라고 부르며, 탐라에서서 나는 이년목二年木이다. 이 나무는 굳세고 매끄럽다. (軸用苦櫧(俗名哥斯木 産於耽羅 卽二年木也) 此木 堅剛而潤滑 – 오주연문장전산고).”라고 했다.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이년목을 제주도에 자생하는 가시나무 류로 추정할 수 있다.


붉가시나무 수형 (2018.12.8. 미황사)


이순신의 난중일기 중 1595년 11월 27일자에 “김응겸金應謙이 이년목二年木을 베어 올 일로 목수 5명을 데리고 갔다”라고 기록했는데, 이는 가시나무를 군수용으로 썼다는 생생한 사실을 보여준다. 상록성 참나무류인 붉가시나무, 종가시나무, 참가시나무 등은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 자라며, 그 목재의 재질이 단단하고 강인하다. 제주도에서는 전통적으로 목질이 단단한 느티나무나 가시나무를 사용하여 주요 농기구인 남방애를 만들었다고 한다. (濟州島木物調査硏究 - 櫃와 남방애를 中心으로, 文基善, 梁昌普,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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