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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인 Oct 21. 2023

산골 마을의 겨울 먹거리 고욤

영梬,영조梬棗,양시조羊矢棗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3년11/12>

어린 시절 내가 산골 마을에서 불렀던 이름이 사투리라서 도감에서 쉽사리 찾지 못한 식물들이 여럿 있다. ‘가동나무’라고 부르던 것이 참죽나무였고, ‘배차국화’라고 부르던 것이 과꽃, ‘키다리’가 삼잎국화, ‘달구벼슬’이 맨드라미, ‘깨금나무’가 개암나무, ‘추자나무’가 호도나무 등등 금방 떠오르는 것들만 해도 여럿이다. 이 중에 ‘김나무’라고 불렀던 나무가 있었다. ‘김’에 강세를 두었기 때문에 ‘낌나무’ 비슷하게 불렀다. 겨울이 되어 잎이 다 떨어지면 구슬치기 할 때 사용하던 작은 구슬 만한 까만 열매를 겨우내 다닥다닥 매달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김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고, 나무마다 주인이 있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집은 김나무가 없었다.


아직도 떠오르는 기억 한토막은 쌀쌀한 겨울철 맑았던 어느 날, 앞 집 아주머니가 ‘김’ 한 바가지를 가져오셔서 어머니에게 전해주시는 장면이다. 바가지 안에는 작고 까만 ‘김’들이 거의 범벅이 되어 있었다. 씹으면 꽤 달콤하니 숟가락으로 퍼서 먹으면 된다고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살짝 맛보았는데 그리 맛있지는 않아서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래도 주점부리할 먹거리가 없었던 산골마을에서는 ‘김’을 따서 단지에 넣어 놓고 겨우내 먹는다고 했다. 김나무가 없던 우리집을 위해 앞집 아주머니는 특별히 마음을 써서 가져오신 것이리라. 기억해보면 우리집에도 밤나무와 감나무, 호도나무는 있었기 때문에 ‘김’ 맛을 본 후부터 김나무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던 듯하다.


겨울까지 나무에 붙어있는 고욤 모습 (2018.12.26 경주)


이 ‘김’을 서울에서는 국어사전에 나오는 대로 ‘고욤’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식물명에 관심을 기울이지 전까지는 고욤이 ‘김’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하여튼 고욤나무가 ‘김나무’라는 사실을 안 다음부터 전국 곳곳에서 고욤나무를 만날 수 있었고 만날 때마다, 범벅이 된 바가지 안의 ‘김’을 떠올렸다. 이 고욤은 <훈민정음해례>에서 한자로 해설한 20종의 우리말 식물명 중 하나로 한자명 영梬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배(梨), 감(柿), 가래(楸), 잣(海松)과 함께 5가지 과실중 하나로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우리나라에서 먹을 거리로 인식된 주요 과일인 듯하다.


고욤나무(Diospyros lotus L.)와 감나무(Diospyros kaki Thunb.)는 같은 감나무속(Diospyros)에 속하는 가까운 나무이다. 고욤나무의 현대 중국명은 군천자君遷子이다. <본초강목>에는 군천자가 산과류山果類의 하나로 수록되어 있으며, 이명으로 이조㮕棗, 영조梬棗, 우내시牛嬭柹, 정향시丁香柹, 홍람조紅藍棗 등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훈민정음해례>에서 영梬이 ‘고욤’의 한자어로 기록된 후, <훈몽자회>에서도 과실菓實 편에 “梬 고욤 빙, (중국) 속칭 양시조羊矢棗”로 설명했다. <본초강목>에서도 군천자의 이명으로 기록하지 않은 ‘양 똥과 비슷한 대추’라는 뜻의 양시조羊矢棗를 고욤의 중국 속명으로 기록한 점은 흥미롭다.


(좌) 감꽃 (2018.5.26. 안동 하회마을), (우) 감 (2022.11.12. 장성)


<동의보감>에서는 ‘고욤’에 대해, “소시小柿. 고욤. 우내시牛㚷柹라고 일컫는데 감과 비슷하지만 아주 작다. 성질은 지극히 차가우므로 많이 먹으면 안 된다.”**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영梬이나 영조梬棗를 기록하지는 않았다. <산림경제> 구황 편에서도, “소시小柿. 고욤. 쪄서 익혀 핵을 제거하고 대추도 핵을 제거한 후 같이 찧어 먹으면 양식으로 대용할 만하다.”***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조선시대에 구황식품으로 고욤을 먹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유희柳僖의 <물명고>에서는 “군천자君遷子. 접붙이지 않은 감으로 열매가 극히 작다. 고욤. 이조㮕棗, 영조梬棗, 우내시牛奶柹, 정향시丁香柹, 홍람시紅藍柹 동仝.”****으로 기록했다. 참고로 <물명고>에는 양시조羊矢棗도 실려있는데 한글 훈은 없고 “증석曾晳이 좋아한 것”이라는 설명을 달고 있다. 하지만 ‘대쵸’ 조棗 항목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유희는 양시조를 고욤으로 생각하지는 못한 듯하다.


<전운옥편>에서는 “영梬 잉 정正 영. 조棗이다. 감 비슷하지만 작다. 이조㮕棗.”*****라고 하여 영梬의 발음이 ‘잉‘에서 ‘영’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수 있다. <자전석요>에서는 “영梬 영, 소시小柹. 영조梬棗, 괴옴영.”, <신자전>에서는 “梬 (잉) 正 (영) 영조梬棗, 감과 비슷하지만 작다 (似柹而小). 고욤나무.”, <한선문신옥편>에서는 “梬 괴옴(영), 소시小柹. 영조梬棗.”, <한일선신옥편>에서는 “梬 (잉) 괴염영, 감 중에 매우 열등하고 작은 것, 영조梬棗 (柹之極劣小者 梬棗)”라고 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영梬은 고욤, 괴옴, 괴염으로 우리말 발음이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한결같이 고욤을 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정태현鄭台鉉(1882~1971)은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 Diospyros Lotus L.의 조선명으로 고욤나무와 고양나무를 채록했고, 한자명으로는 소시小枾, 군천자목君遷子木, 우내시牛嬭枾, 정향시丁香枾만 적었으며 영조梬棗나 양시조는 기록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욤나무는 전국적으로 통하는 이름인데 반해 고양나무는 울릉도에서 부르는 이름이라고 했다.


(좌) 고욤나무 꽃 - 2022.6.1. 남양주 천마산, (우) 고욤나무 열매, 2018.9.26 성남 청계산
(좌) 고욤나무 수피, 2019.10.6. 순천, (우) 고욤나무 겨울눈, 2020.11.21. 남한산성)


이제 고욤이 등장하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시, ‘해인사海印寺’를 감상해보자.


古伽倻裏蔚伽藍  옛 가야에 속한 큰 가람이

千里雲山對面參  천리 구름 산 마주하며 빽빽이 들어섰네

鳥下庭莎僧入定  새는 뜰에 날아들고 스님은 선정에 들었는데

狙垂園樹梬方甘  다람쥐 깃든 절간 나무에 고욤이 익어가네

書巖棋閣何人住  서암書巖 기각棋閣에는 누가 머물렀나?

風伯桐孫偶共談  바람 소리, 거문고 소리와 어울려 담소하네

客裏計程仍不寐  나그네는 남은 길 꼽느라 잠들지 못하는데

夜深蘿月照松龕  밤 깊어 달빛은 전각을 비추네


이 시의 영梬은 원문에 ‘양시조羊矢棗’라는 주석이 붙어있고, <훈몽자회>에서 양시조가 고욤의 중국 속명이라고 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고욤나무가 틀림없을 것이다. ‘서암書巖 기각棋閣’에도 “즉, 고운 최치원이 노닌 곳 (卽 孤雲所遊之處)”이라는 주석이 붙어 있고, 또 다음의 ‘나그네가 비로전에 쓴 시가 있다 (客有題于毗盧殿)’라는 7언절구가 배경 설명으로 추가되어 있다.


欲識華嚴不思議  화엄의 불가사의한 경지를 알려고 한다면

看取毗盧金殿上  비로전 금불상 위를 알아차려 보게나!

桐孫風伯作檀那  거문고와 바람 소리가 시주를 하여

四時不絶聲供養  사계절 끊이지 않고 소리 공양을 하네.


즉, 김시습의 시 ‘해인사’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에 나그네가 쓴 시를 보고 지은 것으로 보인다. 이 시의 깊은 철학적 의미에 대해서는 감히 논할 수 없지만, 이 시를 통해 우리는 영梬이라는 글자로 조선 초기에 고욤나무를 가리킨 용례를 볼 수 있다.


또한 조선 후기 정양용의 시 ‘꿈에 둔지복屯之復 괘를 얻고 한 수 읊다. (夢得屯之復 聊題一詩)’에서 “영조梬棗가 익을 때면 바람 소리 스산하고, 제비가 돌아간 후면 날씨도 쌀쌀하지. (梬棗熟時風淅淅 鷾鴯歸後日凄凄)”에서의 영조도 고욤을 뜻할 것이다. 이제 시대를 춘추전국시대로 옮겨서 유학의 고전 <맹자>에서 고욤이 등장하는 이야기 한토막을 읽어본다.


(좌) 고욤, 2023.9.23 과천, (우) 대추, 2022.9.12. 서울


“증석曾晳이 양조羊棗를 좋아했었는데, 曾子께서 차마 양조羊棗를 먹지 못하셨다. 공손추公孫丑가 물었다. “회자膾炙와 양조羊棗는 어느 것이 더 맛있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회자일 것이다.” 공손추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증자는 어찌하여 회자는 잡수시면서 양조는 잡수시지 않습니까?”하니 “회자는 누구나 똑 같은 것이요, 양조는 독특한 것이니, 이름은 휘諱하고 성姓은 휘諱하지 않는다. 이는 성姓은 똑같고, 이름은 독특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맹자집주>에서는 “양조羊棗는 열매가 작고 색깔이 검으며 둥그니, 또 양시조羊矢棗라고도 이른다. 증자는 아버지가 좋아하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별세한 뒤에 먹을 때마다 반드시 어버이가 생각났으므로 차마 먹지 못하신 것이다.”*******라는 주희朱熹(1130~1200)의 주석이 붙어있다. 이 주석에 따르면 양조羊棗는 양시조羊矢棗이고, 양시조는 <훈몽자회>에서 언급했듯이 중국 속명으로 고욤을 일컫는다. 현대 타이완과 중국의 사전류도 양시조를 고욤을 뜻하는 군천자君遷子의 이명으로 다루고 있다.


이렇게 <맹자>에 실린 이야기를 보면, 고욤은 동양에서 고대부터 식용했던 듯하다. 아마도 아주 맛이 좋은 고욤이 있어서 증석이 즐겼던 듯한데, 증자는 돌아가신 아버지 증석이 즐겨 먹던 특별한 고욤을 차마 먹지 못한 것 같다. 어머니는 떡과 국수를 즐기시는데, 선친께서는 어떤 음식을 즐기셨나? 떡을 즐기셨던 듯한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더운 여름날 아버지가 마당에 발을 깔고, 온 식구가 두레밥상에 둘러 앉아 열무 새싹을 된장찌개와 함께 밥에 비비고 고추장에 고추 찍어 먹던 정경은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다.


<향토문화의사랑방 안동, 2023년 11/12월, pp.92~99>


* 조선어학회에서 일제강점기에 발간한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보면 일러두기에서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 말로써 으뜸을 삼되, 가장 널리 쓰이고 어법에 맞는 시골 말도 적당히 참작하여 취하였다”라고 했다. 아마도 이 기준으로 한글학회에서 어휘를 선택했을 <큰사전(1)>을 보면 ‘고욤’과 ‘고욤나무’는 실려 있지만 나무이름으로 ‘김’은 없다. ‘고욤’과 같은 뜻으로 ‘고염’과 ‘꾐’도 표제어로 실려 있는데, 이 ‘꾐’이 ‘김’ 혹은 ‘기임’으로 불렀던 말과 유사하기는 하다. <큰사전>에서는 고욤의 한자어로 군천자桾櫏子, 우내시牛嬭柹, 홍영조紅梬棗를 들고 있다.

** 小柿 고욤 謂之牛㚷柹 似柹而甚小 性至冷不可多食 – 東醫寶鑑

*** 小柿 고욤 蒸熟去核 大棗亦去核 同搗食之 足以代粮 - 山林經濟 救荒

**** 君遷子 柿不經接 其實極小 고욤 㮕棗 梬棗 牛奶柹 丁香柹 紅藍柹 仝 – 物名考

***** 梬 잉 正 영 棗也似柹而小㮕棗 – 全韻玉篇

****** 曾晳嗜羊棗 而曾子不忍食羊棗 公孫丑問曰 膾炙與羊棗孰美 孟子曰 膾炙哉 公孫丑曰 然則曾子何爲食膾炙而不食羊棗 曰膾炙所同也 羊棗所獨也 諱名不諱姓 姓所同也 名所獨也 – 孟子 盡心下 (성백효 역주, 현토완역 맹자집주 참고)

******* 羊棗 實小 黑而圓 又謂之羊矢棗 曾子以父嗜之 父歿之後 食必思親 故不忍食也. – 孟子集註

+표지사진 - 고욤 (2020.11.2. 남양주 천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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