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주립도서관은 1854년 빅토리아주 멜버른에 개관한 호주 최초의 공립 도서관이다. 광범위 주제의 200만 권 서적과 사진 그리고 신문 등 35만여 점의 방대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도서관 내에 다양한 전시회도 개최한다.
멜버른 시내 숙소에 체크인하면서 직원 옆에 빼곡히 쌓인 시내 관광 지도를 들어 올렸다. 두꺼운 책이 아니라, 낱장으로 뜯어갈 수 있게 시내만 자세히 확대한 지도다. 관광지와 트램을 살피는데 옆소파에 앉아 있던 남성이 말을 건넨다. 혀가 꼬인 어투에 흰 눈동자를 채운 빨간 핏줄이 훤히 보인다. 숨을 안으로 참으며 못 들은 척 남편 옆으로 착 붙었다. 금발 젊은이는 어려 보이는 흑발 젊은 직원에게 괜히 시비다.
“마약 했나 보다.”
“이렇게 대낮에?”
“호주는 가능하지.”
3박 4일간 시내에 숙소를 두고 멜버른 유명한 곳들을 다니려 한다. 핸드폰과 수첩만 들어갈 작은 가방을 어깨에 비스듬히 걸쳤다. 지도 안내대로 트램을 타고 주립도서관으로 향한다.
35번 트램이 쉬는 날이라 30번에 올라탔다.
스완스톤 역(Swanstone St)에 다다르니 그리스 신전처럼 둥근기둥일곱 개가 정면이 되어 웅장한 입구다.
햇빛에 반짝이는 연초록 잔디밭에는 책을 들고 눕거나 엎드린 사람들. 그리고 그사이를 겁도 없이 뒤뚱거리며 걷는 하얀 비둘기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멜버른을 여행하며 두 차례 단체 버스를 탔는데, 언제든 약속 장소는 이곳 주립 도서관 옆이었다. 머무는 동안 몇 번이고 시내에 위치한 이 도서관을 지나쳐야 했다. 멜버른 사람들은 이곳 도서관 앞에서 약속을 자주 하겠다. '도서관 앞에서 만나' 이렇게. 도서관은 안과 밖이 비둘기 방앗간처럼 다양한 사람들로 모든 공간에 가득했다. 이른 아침 단체 관광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도 도서관 앞 벤치에 앉은 사람이 여럿 있었다.
1층에 들어서자 천년 역사 된 유대인의 히브리 문자 필사본을 전시 중이다. 도서관 직원 목걸이를 한 중년 부인은 배낭이 무거울 테니 안내소에 맡기라고 웃으며 권한다. 도서관 입구에는 편하고도 멋지게 차려입은 관광객이 끊임없이 입장한다. 멋진 사진을 건지고 싶은 젊은 커플들은 사랑스러운 포즈로 고개를 모으고 곳곳에 멈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먼저 올랐다. 책상과 책장을 뺀 모든 것이 하얗다. 팔각형 유리 돔 천장은 실내 체육관같이 거대하다. 콜로세움처럼 벽이 뚫린 6층 전망대 곳곳에 사람들은 서서 3층 체스 컬렉션으로 넓게 배치된 열람실을 내려다본다. 팔각형으로 모아 놓은 책상을 중심으로 여덟 개 책상 열이 그곳에서 길게 뻗어나가도록 둥근 공간을 배치했다.
층마다 난간에서 사진 찍는 관광객과 상관없이 뻥 뚫린 3층 도서관에는 책상마다 앉은 이들이 다양한 자세로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엎드려 잠을 자거나 쉬는 이들도 보인다. 현지에 살고 있는 이들이 편히 와서 공부하고 쉬어갈 수 있겠다.
서울 시청역에 위치한 서울도서관이 떠올랐다. 서울시 옛 청사 외관을 그대로 보존한 채 그 안에 도서관을 담은 모습. 근처에 시청, 청계천과 경복궁 그리고 광화문 광장 등 볼거리가 가득한 것도 멜버른 전통 건물들 가까이에 위치한 빅토리아 도서관과 닮았다. 어디를 가든 비슷한 조각만 있어도 내 나라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고 보니 수원 스타필드 별마당 도서관도 생각난다.
노랑 빨강 원피스를 입고서 5층에서 포즈를 취하는 전문 모델들을 발견했다. 사진사는 6층에서 아래를 향한다.
"여보, 저렇게 찍어줘. 도서관 다 담아서 자알~.
나 5층으로 내려간다."
계단을 타고 내려온 그의 사진에는 마구마구 순간을 쓸어 담았는지 짧은 다리와 이상한 표정마저 가득이다. 그냥 셀프카메라로 돌려 내 얼굴을 담는다.
그는 내가 아닌 건물만 멋지게 사진 찍었다. 건축을 전공한 그의 눈동자는 멜버른을 관광하는 내내 건물 구경으로바쁘다.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 맞은편에 입체적인 초록색 특이한 지붕을 얹은 RMIT 공과대학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느라 신호등을 기다려 건널목을 건너기도 했다. 건물이 아닌 마누라를 좀 이쁘게 담으면 좋으련만. 둘이 셀카 화면에 얼굴을 함께 잘 담는 데 까지 연습한 그를 보며 그냥 내가 참는다.
RMIT공과대학
5층 복도에 걸린 미술품과 4층 전시물을 둘러보며 천천히 가볍게 발을 옮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름을 달고 있는 단발머리 익숙한 스테인드글라스 인물을 만나니 반가워 인사한다.
3층 입구에서부터 한가운데 팔각형 책상까지 걸어 나갔다. 비어있는 넓은 책상에 잠시 앉아, 엎드려도 보고 꼿꼿이 허리도 세워보았다.
이렇게 멋진 도서관 가까운 곳에 산다면 책을 더 많이 자주 읽게 될까, 아마 그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