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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가다 Jul 02. 2024

커피가 맛있다는 호주 멜버른

둘이서 호주 여행

멜버른에 가면 꼭 커피를 맛보라고 한다. 아들이 맛있는 카페를 알려주어서 꼼꼼히 메모하고 저장했다. 듁스, 룬, 메이커, 브라더바바, 페트리샤, 마켓레인. 수첩에 다시 옮겨 적으며 일정과 함께 대략 위치를 살폈다.


십 년 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는 커피에 대해 무관심했다. 아이들과 젤라토만 종류별로 맛보았다. 야외 테라스에서 멋지게 다리를 꼬고 앉아 에스프레소 귀여운 잔을 두 손가락으로 잡아 목구멍에 쏟아붓는 영화 같은 장면을 해보지 못한 게 시간이 흐를수록 아쉬웠다. 커피를 모르기도 했고, 세 아이와 함께한 배낭여행이어서 나 자신을 챙길 수 없었다. 그저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미술관, 박물관을 보여주려 어르고 달래며 유럽을 여행했다.


남편과 둘이 커피의 도시 멜버른으로 떠나면서는 1일 1 카페를 챙겨보자고 혼자 생각하며 웃었다. 이번 여행은 여태 수고한 나와 그를 위하자.




호주 속 작은 유럽, 작은 런던이라 불리는 멜버른. 멜버른 시내 중심에는 고품질 다양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가 즐비하다. 멜버른은 호주에서 커피 문화가 가장 발달한 도시로 다양한 원두를 사용한다. 카페들은 아늑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하면서 예쁘고 다양한 디저트로도 유명하다. 바리스타의 테크닉과 열정이 높아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기에 커피 애호가 사이에서 인기가 높단다. 여행 중 단체 관광을 이끌던 가이드는 유명 카페 이름들을 읊어주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골목을 다니다가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인생 커피를 만나기도 한답니다.”


내게도 인생 커피를 만나는 행운이 올까나.


한국인 바리스타가 멜버른 카페에서 환영받는 이유는 재빠른 손재주와 수준 높은 기술 때문이라고 한다. 멜버른을 소개하는 여행 유튜버 중에 커피와 카페만을 따로 소개하는 영상들이 제법 많아 갈 곳을 찾으며 눈으로 먼저 시음했다. 




이른 아침 일곱 시, 대형 시장인 퀸 빅토리아 마켓에 들러 태즈메이니아 산 굴 한 팩과 애플망고 두 개를 샀다. 맨얼굴에 양털 뽀송이 모자로 눌러 가리고 빨간 립스틱을 발랐다. 아침 기온이 낮다는 예보에 돌돌 말아 가져간 겨울 점퍼를 걸쳤다. 바로 시장 근처에 있다는 마켓레인 커피를 구글로 검색했다. 여성용 모자 가게와 요리책을 파는 서점 옆으로 도로변에 위치한 작은 카페였다.


파란 유니폼을 입은 바리스타 둘이 이른 아침부터 반가운 얼굴로 손님을 맞았다. 고객과 친근하게 긴 이야기를 나누는 바리스타들 모습에 눈길이 갔다. 단골이나 친한 친구가 놀러 온 것처럼 매대에 서서 스몰토크를 주고받는다. 모닝커피에 담소를 즐긴다는 호주인의 모습이 이런 것이었나 보다.


플랫 화이트와 피콜로 한 잔씩 그리고 크루아상을 16달러에 주문했다. 벽에 걸린 에코백이 유명해서 유튜버들이 추천했지만 파란색 가방은 구경만 했다. 매장 밖 테이블 위에 건네받은 커피를 놓았다. 스팀 우유로 그린 하트가 제법 선명하다. 밝은 갈색 커피 위에 앉은 하얀 그림. 한국과 비슷하네. 경주에 있는 우리 동네 커피가 생각났다. 메뉴판에 플랫 화이트와 피콜로 이름이 그대로 쓰인 세련된 여자 바리스타의 카페. 어쩌면 내 인생 커피는 아직도 우리 동네 맛집 플랫 화이트인지도 모르겠다.




토마스 기차로 유명한 퍼핑빌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멜버른 외곽인 피츠로이 스트리트에 들렀다. 한국 관광객 사이에서도 룬 카페가 유명했다. 벽에 스프레이로 뿌린 그라피티로 가득한 골목을 지나 어두운 회색빛 벽돌로 지어진 큰 창고에 도착했다. 유리문 앞에 크루아상이 함께 그려진 'LUNE' 영문자가 보였다.


커피와 크루아상이 맛있다는 그곳에는 이미 관광객들이 자리마다 둘셋씩 앉아 그 유명하다는  커피를 누리고 있었다. 매장 가운데 크고 네모난 대형 테이블 안쪽으로 하얀 유니폼을 입은 제빵사들 움직임도 하나의 볼거리였다. 크루아상만을 종류별로 판매하는 곳이다. 주문을 잘 못 표현했는지 똑같은 크루아상 두 개를 접시에 담아주었다. 주문 과정이 한국처럼 간단하지 않아 그냥 주는 대로 쟁반에 라테와 초콜릿을 건네받았다.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반박하거나 수정하는 것을 귀찮아하는구나.’

남편에게는 비밀에 부치고 혼자서만 나를 다시 들여다봤다.


바삭하게 껍질이 부서지는 크루아상을 깨물어 씹으며 둥근 컵 안에서 동동 떠다니는 하얀 하트 두 개를 입안에 홀짝홀짝 담았다. 넓고 넉넉한 이 분위기는 부산 살 때 여행 가듯 찾아가던 영도 카페를 기억나게 했다. 영도 대형 카페 대표는 멜버른 이곳을 다녀간 것 아니었을까. 정말 비슷한 분위기야.




골목에서 만난 인생 커피는 아니었지만, 단체 관광버스를 기다리던 아침에 눈 뜨게 하는 커피가 있었다. 아침 아홉 시 이십 분, 단체 약속 장소는 센트럴 스트리트 앞 작은 카페였다. 티브이에서 멋지게 보았던 빅토리아 주립도서관을 지나 그 카페 앞에 섰다.


커피를 잘 모르는 남편이지만 길거리에 머신을 꺼내놓고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에게서 따뜻한 라테를 주문해서 두 손으로 조심조심 들고 왔다. 하트가 흔들려 두 팔을 벌리고 아침부터 '만세'하는 모양이다. 버스가 오기까지 잠시 둥근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는데, 음~ 맛있었다. 내가 주문한 것 아니라 더 맛있는 건지 커피를 정말로 맛있게 뽑아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멜버른 도시는 역시 커피가 맛있구나'라고 생각한 날이었다.



멜버른에 가면 모든 커피가 맛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맛난 커피로 만들지 않았을까.


오늘이라는 하루에 그 기대감을 다시 끌어와 본다. 맛있는 하루하루를 살도록.




아참, 멜버른에서는 이른 아침 문을 열고 오후 두 시 반이면 문을 닫아버리는 카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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