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이층 버스 넓은 유리창으로 빌딩 가득한 도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발론 공항에서 티켓을 구입하고 시티 버스로 한 시간을 달렸다. 창밖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황토색 들판을 보며 ‘이런 곳이 호주이군~’ 했다.
잠시 후, 버스는레고 블록 더미 같은 시내로 진입하더니 '서든 크로스 역'에 멈춘다. 2층에 앉아 있던 남편과 나는 계단을 타고 1층으로 이동했다. 버스 중간 짐칸에 두었던 각각의 캐리어를 챙겨 버스에서 내렸다. 시내 중심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초록색 트램 뒤꽁무니가 예뻐서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멜버른 시내 '백스 비빔'
식당 간판만 눈에 들어오는 점심시간, 서든 크로스역 맞은편 스펜서 스트리트 중간에 한식 그림과 함께 한글로 읽히는 영문자가 반갑다. 여행 중 한식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고추장 같은 곳이겠다.
혹시 아들의 외국친구들에게 비빔밥을 해줄 수 있을까 싶어서 튜브 고추장과 참기름까지 캐리어에 챙겨가기는 했다, 일정이 바쁘고 야채를 구입할 상황이 되지 않아 솜씨를 발휘할 수 없었네.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에서 아들과 세계여행 중에 고마움을 비빔밥으로 보답하는 60대 엄마의 모습이 기억나 재료를 준비했던 터다.
백종원의 ‘백스 비빔’ 매장 안에 있는 키오스크로 메뉴를 살피는데, 비빔밥 종류부터 분식류도 한국에서만큼 다양하다. 식당 안에서 음식을 먹고 주문하는 이들을 둘러보니 대부분 외국인이다. 비빔밥을 능숙하게 비벼 숟가락질하는 외국인을 보니 여러 차례 먹어 본 솜씨다. 심지어는 젓가락질도 한다. 다른 테이블에서 빨갛게 빛나는 닭강정을이래저래 사진 찍는 젊은이들.
두 개 메뉴만 골라야 하니 고민을 여러 차례 뒤집는다. 단짠 떡볶이와 잡채도 먹고 싶지만, 인기가 제일 많아 보이는 비빔밥과 닭강정을 주문했다. 백종원 셰프가 호주까지 전달한 우리의 K 푸드 덕분에 어깨가 으쓱올라간다. 외국인들이 한식을 어떻게 먹는지, 표정은 어떤지 함께 신경 쓰인다. 내가 요리한 것도 아닌데말이다.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면서 두 손을 모아 턱을 괴었다. 고개를 돌려, 조리하는 내부와 주문 처리하는 직원들을 보니 모두 외국인이다. 이들에게 한식을 교육해 제맛을 낼 수 있을까. 원래 한국에서 먹던 음식과 비교해서 맛은 어떨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돌솥비빔밥과 닭강정을 받아서 식탁 위에 놓았다.
‘멀리멀리 돌아서 만난 비빔밥과 닭강정아! 반갑다 반가워!’
'지지직' 소리나는 돌솥밥에 고추장을 넣어 비비니 입안에 군침이 절로 돈다. 숟가락 가득 담은 비빔밥 위에 빨간 무채를 올려 한입 가득 채운다.
‘음~ 이 맛이야.’
비행기, 버스 타느라 피곤에지쳐 누워있던 모든 세포가 일어난다. 달고 짜고 바싹한 닭강정을 깨물면서 웃음이 배시시 나왔다.
“행복하다 여보.”
싹 비운 그릇 옆에 동그란 숟가락과 까만 젓가락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맛있는 K푸드는 모두 좋아할 수밖에 없을 거야. 이곳 백스 비빔이 잘 되기를 축복하며 식당을 나선다.
구글맵을 확인하며 숙소로 향하는 길, 그가 외쳤다.
“오, 기아 자동차다! 저기도 있네.”
호주 안에서 한국을 발견할 때마다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멜버른에서 찾아 발견하는 대한민국의 맛있고 멋있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