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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햇빛을 차단하라

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13

by Jina가다

현관을 열자마자 한증막이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긴 복도. 뜨끈한 열기에 숨 쉬기 버워진다. 몸속 모든 기운이 수분과 함께 증발하는 듯하다. 챙 모자를 눌러쓰고 새까만 선글라스를 콧등 위에 번 더 눌렀다. 손에는 아이스 터보 미니 선풍기를 꼭 쥐서.


외출 전, 손등부터 발끝까지 선크림은 꼼꼼하게 발라 두었다. 크림형과 스틱형 선크림을 한국에서 넉넉히 챙겨 왔다. 국산제품이 좋으니 꼭 준비하라는 말을 귀담아들었다.

처음에는 아무 대비 없이 밖으로 나섰다가 가마 속 토기처럼 달궈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늘에만 들어서면 시원해진다.


이집트는 국토 90% 이상이 사막이다. 인구 대부분은 좁은 띠처럼 길게 뻗은 나일강 유역과 델타에 몰려 산다. 비는 거의 내리지 않고 연중 대부분 맑다. 그래서 우산은 이사목록에서부터 빠졌다.

습도가 낮아 빨래는 금세 마른다. 여름철 낮 기온은 35에서 45도. 모래바람이 불면 피부가 갈라지고 눈까지 시릴 수 있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긴 옷과 스카프로 햇빛을 막으며 살아간단다.


“봐, 그늘에 서면 한국 여름보다 시원하지?”


남편의 말에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한국에 휴가 다녀온 이들도 똑같이 했다. 이집트보다 한국 여름이 더 힘들다고.


아이보리색 모자에 미니 선풍기를 든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시리아 디저트 가게 점원이 물었다.


“이즈 댓 굿?”
“음, 따멤(좋아).” 아랍어로 대답하자 그녀가 웃었다.


“제일 더울 때 오셨네요.

교회 장로님이 말했다.

휴대폰에 알려주는 날씨는 매일 40도. 8월이면 45도까지 올라간다니 걱정이 앞선다. 걷다가 더우면 에어컨 빵빵한 카페로 숨어 들어간다, 대부분 일상은 냉방기 풀가동한 실내에서 지낸다. 외출할 때면 한국에서 챙겨 온 도구는 필수품이 되었다.


한국 뉴스에서 ‘UV 차단 양산’ 기사를 발견했다. 미국 인플루언서 앰버 퍼거슨이 양산을 사용하며 극찬했다는 내용.
‘어, 나도 그거 있는데.’
신발장 선반에 놓아둔 양산을 꺼냈다. 이곳으로 오기 전, 미니 양산 두 개를 온라인으로 구입했다. 바깥은 아이보리, 안쪽은 검은색.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고 튼튼한 양산. 기미가 생길까 걱정되어 챙겨 왔지만, 정작 사용하는 이가 아무도 없어 펼치지 못했다. 이제 산책할 때면 꼭 들고나가야지.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들이 주는 위안은 크다. 작고 기다란 165ml 보냉 물병은 늘 가방 속에 있다. 쿨 토시, 페이스 마스크도 선반에 대기 중. 이곳에선 다소 낯설지만, 내겐 생존 방패다. 한국의 좋은 것들을 알고 소유한다는 사실을 특권처럼 여긴다.


사막의 더위를 버티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이 낯선 환경을 견디는 데서 나아가 나게 누리려 한다. '사막에서 살아남기'를 넘어, '사막에서 누리기'를 발견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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