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15
부끄러움이 많은 건지, 자존심이 센 건지,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다.
집 근처 큰 카페에 들어갔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서 받았지만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필체. 몇 차례 입력하다 결국 옆자리 대학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녀가 노트북으로 보여준 번호를 세 번이나 다시 입력했지만, 오류는 반복됐다. 끝내는 포기 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시 요청했더라면 어땠을까. 대신 나는 핫스폿을 연결해 버텼다.
‘나는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구나.’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밖에서 머무는 나, 여전히 소극적인 나,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나.
카페 안쪽 8인석 테이블에 나를 포함한 세 명이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이내 또 다른 세 명이 와서 빈자리를 찾았다. 나는 분위기를 살피다 옆자리로 옮겼다. 맞은편에 앉은 이가 “고맙다”라고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작은 몸짓과 눈빛. 가끔은 짧은 의성어만으로도 문제는 해결된다. 그 이상은 어렵다. 언어가 다르다는 사실은 삶을 답답하게 만든다. 이집트에 온 지 열흘, 그 장벽에 몇 번이나 부딪혔다.
며칠 전 딸아이가 아마존에서 생활용품을 주문했을 때도 그랬다. 택배기사는 영어를 몰라 한참 집을 찾지 못했다. 아랍어와 영어로 각자 말하며 불통이 이어졌다. 생수 배달 기사와도 몇 차례 곤란을 겪었다.
“엄마, 저도 아랍어를 다시 배워야겠어요.”
“그러게, 우리 둘 다 말을 배워야 할 것 같다.”
한인교회에서 만난 70대 어르신은 이집트에 40년을 살아왔다고 했다. 나는 무심코 물었다.
“그럼 아랍어는 아주 잘하시겠네요?”
“처음엔 영어학원만 다녀서 아랍어 배울 기회를 놓쳤어요. 지금은 쉽지 않네요.”
그분은 쑥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실례가 되었을까 싶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언어를 배울 시기에 대한 깨달음이 남았다.
‘언어의 시작을 놓치면, 문턱은 더 높아지는구나.’
주변의 한국인들 중에는 영어만으로 버티는 이들이 많다. 삶이 불가능하진 않다. 영어가 통하는 이집트인과만 마주하면 된다.
그렇다고 못 살 것도 없다. 최소한의 영어만 하는 현지 기사와 아랍어를 전혀 모르는 남편도 넉 달째 차를 타면서 잘 지내고 있다. 답답하면 챗지피티를 돌려 통역을 주고받으며, 가장 단순한 소통으로도 살아간다.
이집트에 도착한 첫날, 카이로 공항에 에스코트하러 나온 현지 직원과 나눈 대화가 기억났다.
"아랍어를 왜 배우려 하세요?"
"언어는 그 나라에 대한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아랍어를 배우려 해요."
그 직원은 웃으며 간단한 아랍어 질문을 던졌고, 나는 서툰 발음으로 답했다. 그는 반가운 듯 눈을 빛냈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겸손하게 그 나라를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열린 자세로 문화와 언어를 수용하겠다는 뜻. 이 마음이 오래 지속되면 좋겠다.
오늘, 집을 나서며 관리인 할아버지에게 아랍어로 인사했다.
“마사으 키~르(좋은 오후입니다)!”
발음이 틀렸는지 대답이 없자 머쓱했지만, 뒤돌아보니 할아버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다음번에는 더 따뜻하게 이어지겠지.
언어는 결국 가장 중요한 소통의 도구다. 언어를 배우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함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동화되기도 하고, 이 나라를 알아갈 수 있겠다.
요즘 나는 마트 영수증의 물건 이름, 길가 간판, 안내 표지를 사진으로 찍어 번역기에 묻곤 한다. 그러다가 결국, 아랍어 학원에 등록했다. 일주일에 두 차례 한 시간씩.
이집트를 이해하기에 가장 중요한 무기인 언어를 챙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