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16
“청소를 실행하겠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해 청소를 시작해 주세요.”
“홈스테이션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아랍어와 영어가 섞여 들려오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한국어로 내게 말을 거는 존재. 30대 여성의 안정적인 저음으로 집 안 곳곳에서 나를 부른다. 둥글고 납작한 몸체에 작은 더듬이를 달고 낮은 자세로 유유히 나아가는 이 친구. 나와 마주하면서 직진해 올 때면, 가끔 나는 맞은편에서 손을 흔들어준다. 조용히 혼자 맞이하는 타국의 아침, 세상이 여전히 시간을 따라 잘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그 무엇이다.
“이집트엔 흙먼지가 많아서 집이 금세 더러워져요. 꼭 필요할 거예요.”
한국을 떠나기 한 달 전, 로봇청소기를 미리 주문해 사용해 보았다. 딸아이의 조언대로 물걸레 기능이 있는 제품을 골랐다. 공기청정기는 해외택배로 보내고, 청소기는 물통과 본체를 분리해 캐리어에 담아 출국했다.
이집트에 도착한 날부터 가장 바쁘게 움직인 존재는 나와 로보, 이 로봇청소기였다.
아침이면 눈을 뜨자마자 거실로 나가 로보의 전원 버튼을 누른다. 나는 딸아이의 도시락을 싸고, 로보는 집 안 청소를 시작한다. 각 방을 돌며 바쁘게 움직이는 녀석의 모습은 나보다 부지런하다. 중간중간 본체로 돌아와 물통을 세척하고, 다시 구석구석을 나누어 돌아다니며 마무리를 한다. 현관 턱에서 떨어져 멈추거나, 물건에 갇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면 어디선가 이렇게 말한다.
“갇혔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해 청소를 실행해 주세요.”
나는 느긋하게 걸어가 두 손으로 로보를 들어 평평한 곳에 올려두고, 전원 버튼을 두 번 눌러 다시 실행시킨다.
이제는 나도 주인으로서 요령이 생겼다. 걸리기 쉬운 모서리는 문을 닫고, 개방된 공간은 무거운 물건으로 진로를 차단해 둔다. 어제부터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청소를 마쳤다. 이 녀석, 새집에 완벽히 적응한 모양이다. 나보다 빠른 적응력이라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집 구조를 여러 차례 오가며 파악하더니, 어느새 빠뜨리는 곳 없이 구석구석 청소를 해낸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은 단 하나, 물통의 오수를 비우고 깨끗한 물을 채워주는 것뿐이다. 두세 달쯤 지나 소모품만 갈아주면 되겠다.
이틀 전, 교회에서 만난 한국인 중년 여성 두 분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맛집 케이크와 이집트 화초, 직접 만든 식혜까지 들고 왔다.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 로보가 소파 밑에서 꾸물꾸물 기어 나와 안방으로 향했다. 충전이 필요해 청소를 멈췄던 모양이다.
“어머나, 손님이 오셨다고 이 녀석도 인사하러 나왔나 봐요. 하하하.”
순식간에 대화의 주제는 물걸레를 장착한 로봇청소기로 바뀌었다. 마침 한국에 다녀올 예정이라는 50대 지인은 로봇청소기를 사 올 계획이라며 브랜드와 가격 정보를 적어갔다. 그녀들 말로는 우리 집은 마감이 좋아서 소음이나 먼지가 적은 편이지만, 자신들의 집은 매일 청소하지 않으면 먼지가 금세 쌓인다고 했다.
그녀들과의 대화 덕분에, 내가 처한 상황과 내가 가진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되었다.
매일의 시행착오를 거쳐 이 집에 잘 적응한 로보처럼, 나도 이곳에 차근차근 적응해가고 있다. 에너지가 소진될 때, 즐거움이 비워질 때면 나만의 홈스테이션으로 돌아가 충전해야지. 가족에게서, 친구에게서, 신앙에서, 그리고 내 고향으로부터.
그렇게 생각하니, 하나도 걱정될 게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