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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예쁜 질문

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18

by Jina가다

“씬? 니하오?” (중국인?)


나일강 선착장 쪽 야외 카페로 향하던 길에 젊은 남성이 내게 물었다. 곁에 있던 여성이 그에게 핀잔을 준다. 못 들은 척, 내 갈 길을 갔다.


잔잔하고 넓은 나일강변에 정사각 4인용 테이블이 두 줄로 길게 놓여 있었다. 오후 일곱 시가 넘었지만, 태양은 여전히 지글지글. 야외 레스토랑 주문대 앞 몇몇 테이블에만 그늘막이다. 맨 앞 테이블에 앉아 시원한 콜라를 주문했다. 노트북을 펼치고 할 일을 하면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30분쯤 지났을까. 넓게 펼쳐진 나일강 위로 가까이 내려앉은 작고 둥근 태양. 그 주변은 양귀비 꽃잎처럼 새빨갛게 물들었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강가 투명 난간에 어깨를 기대었다. 일몰을 사진에 담고, 동영상도 여러 번 촬영했다.

내 쪽을 자꾸 바라보던 테이블의 여성들. 혹시 내가 그들을 촬영한다고 오해할까 싶어 시선도, 핸드폰 렌즈 각도도 조심스럽게 피했다. 다시 자리에 앉아 작업을 이어갔다.


잠시 후, 십 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둘과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조심스레 내게 다가왔다. 긴 갈색 곱슬머리를 풀어 단정하게 정리한 아이가 앞장서더니 공손하게 영어로 물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

“꾸리아, 한국에서 왔어요.”


아이의 얼굴이 금세 환해진다. 케이팝을 좋아한다며 아이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오디션을 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내게 묻는다.


“케이팝을 좋아하는군요. 그런데 미안. 사실 오디션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국 음악에 대한 관심을 표현해 보면 어떨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아이는 다시 한번 활짝 미소를 보이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떠났다.


아이의 기품 있는 태도와 공손한 어투에 가슴이 뛰었다. ‘한국 사람이세요?’보다 훨씬 멋진 표현. 아시아인처럼 보였겠지만 내게 선택권을 넘겨준 질문. 직접 국적을 표현할 수 있도록 존중해 주는 태도. 그런 질문은 이곳에 와서 처음이었다. 아이가 떠난 뒤에도 기분이 내내 좋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 관리인도 이사 온 지 2주가 지나서야 조심스럽게 국적을 물었다. '중국인이니?'고.

나도 슈퍼마켓이나 식당에서 동양인을 스치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중국인일까, 한국인일까?'. 누구나 쉽게 던질 수 있는 자기중심의 질문이다.


“옳은 방식의 질문은 대화를 하고 싶게 만든다.”


그 아이의 질문 덕분에 비행기를 타고 오는 중에 읽었던 『질문의 격』구절이 떠올랐다. 그 문장이 정확히 와닿는 순간이었다. 소녀의 질문은 내가 좀 더 이야기하고 싶게 만들었다. 묻지 않았지만 작은 조언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만약 내가 케이팝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 길게, 더 풍성하게 대화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외 다른 이들의 국적에 대한 질문은 대부분 무례했다. 그래서 그냥 짧게 대답하고 대화를 끝냈다. 좋은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는 아마도 내게 오기 전, 어떻게 질문할지를 고민했겠지. 어쩌면 옆에 있던 엄마에게 지혜를 구했을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질문하고, 제대로 답을 듣고, 제대로 내용을 해석하는 습관.”


책에서 본 또 다른 문장이 떠올랐다. 나도 그 아이의 질문을 잘 해석하고, 성실히 답했는지를 다시 생각했다. 앞으로 누군가 또 비슷한 질문을 하겠지. 내 나라 대한민국 문화에 대해 내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좋은 대화를 길게 할 수 있으려면.


현명한 눈빛, 예쁜 어휘로 말을 이어가던 긴 머리 소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이곳, 이집트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 창고에 고이 저장해야지. 이 땅이 힘들어질 때면 조용히 꺼내어 떠올릴 수 있도록.



나일강변에서 글 쓰다가 열기에 익어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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