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17
카이로 북동부에 위치한 헬리오폴리스. 금요일 오전, 지인의 소개로 남편과 우버를 타고 현지 교회로 향했다. 목적지는 차로 약 40분 거리. 흙먼지가 날리는 좁은 골목을 지나 외곽 도로로 빠져나가자, 아파트 외벽에 걸린 이불과 옷가지들이 바람에 펄럭인다. 건물 외장은 흙빛과 같은 색.
“왜 페인트칠을 하지 않았을까? 건축 주재료가 흙인가 봐.”
“사막지형이라 먼지가 많아서 그래. 아무리 페인트를 칠해도 금방 흙먼지 색으로 변해. 오히려 이 색이 자연스러울지도 몰라.”
창밖 풍경을 따라 고가도로와 회전교차로 공사 현장이 이어졌다. 마아디, 헬리오폴리스, 모카탐을 연결하는 도로망을 조성 중이라 했다. 언덕 위 성벽과 돔, 첨탑이 눈에 들어왔다.
“우와, 멋지다! 돌아오는 길에 구경하고 갈까?”
“시타델일 거야. 지금은 더워서 무리야. 시원해지면 가자.”
중세 아유브 왕조 시절 방어 거점이었던 성채, 그리고 그 위에 솟은 모스크는 도시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잠시 후, ‘헬리오폴리스’라 적힌 표지판과 함께 도시가 확연히 달라졌다. 넓게 뻗은 6차선 도로, 고층 빌딩, 백화점, 공연장, 대형 병원과 모스크. 잘 정돈된 풍경에 서울 강남 도심이 겹쳐 보였다.
돌아오는 길, 우리를 태워준 이집트 미디어 사업가를 통해 도시의 배경을 더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원래 사막이었어요. 1905년경에 유럽식 신도시로 개발됐죠. 지금은 외국 대사관과 국제학교가 밀집한 고급 주거지예요.”
그의 딸도 이곳에서 국제학교를 졸업했다며, 도심에 공존하는 다양한 종교 커뮤니티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오전 11시 반, 교회에 도착했다. 서양 분위기 건축 양식이다. 자가용을 주차하고 교회로 들어서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
이집트는 이슬람, 콥틱, 기독교가 모두 공인된 나라. 교회 앞에도, ATM 옆에도, 대형 몰 근처에도 그리고 우리 집 주변에도 경찰이 상주한다. 하얀 제복을 입은 경찰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이곳 일상에서 안정감을 주었다.
수줍게 다가와 인사하는 이집트 아이들. 까만 눈썹과 커다란 눈망울이 맑고 곱다. 남편이 지난번에도 인사했다던 일곱 살 남자아이는 주일학교에서 받은 주황색 스틱 과자를 봉지에서 꺼내 남편 손바닥에 건넸다.
나도 그 작은 선물을 기꺼이 받았다.
“쇼크란(고마워)!”
남편과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 이들이 많았다. 나를 처음 본 사람들도 영어로 자연스럽게 손 내밀어 악수했다. 내 어설픈 아랍어에 편히 영어로 말하라며 웃어주는 여성들. 이집트에서 대학을 나온 이들은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덕분에 대화는 어떻게든 이어졌다. 오히려 내 역량이 부족했다.
얼마 전 카페에서 영어 과제를 하던 현지인 대학생들이 떠올랐다. 더 나은 직업과 삶을 위해 영어를 배우는 모습은 우리 한국과도 다르지 않다.
교회에서는 우리 부부를 위한 통역사와 통역기를 미리 준비해 주었다. 아랍어 스크린은 구글 렌즈로, 영어 설교는 이어폰을 통해 예배에 참여했다.
“오늘은 세계적인 모임입니다. 독일과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환영합니다.”
광고 시간이 되자, 우리 부부와 함께 흰 챙모자를 쓰고 왔던 금발 노부인을 소개했다.
모임이 끝나고, “안녕하세요?” 하고 한국어로 인사하는 청년이 반가웠다.
“North Korea?” 하고 묻는 사람에겐
“Never!”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South Korea를 강조하면서.
어디를 가든 ‘대한민국 대표 선수’처럼 주목받는 이방인. 행동 하나, 표정 하나도 조심스럽지만, 그마저도 즐기려 한다.
이곳 이집트에 오기 전에는 대표적인 이름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이제, 그 안에 '태양의 도시'라는 이름을 이어 온 ‘헬리오폴리스’도 내 안에 새롭게 자리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