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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는 아기 고양이

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19

by Jina가다

흰 바탕에 검은 무늬, 마치 달마티안 같은 모습. 길고 날씬한 네 다리를 종종거리며 자랑하듯 걷는다.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도 예쁘네.'


물건 정리가 깔끔해 자주 들르게 되는 ‘메트로’ 마트. 저녁 산책을 마치고 지하 1층 계단을 내려가다가 아기 고양이를 만났다. 작은 발로 한 계단씩 내려가는 모습이 애처롭고도 기특하다. 여섯 개의 낮은 턱을 넘는 동안 몇 번이나 멈춰 숨을 고른다. 길 잃은 고양이인가 싶어서 한참을 지켜보았다.


‘아이고, 고되겠다. 너, 조금 있다가 다시 보자.’


먼저 마트로 들어간 남편을 찾으러 입구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이사 후 처음 이곳에 들른 남편에게 내가 자주 들르는 코너들을 소개했다. 깔끔하게 소분된 과일 코너, 돼지는 없고 소·닭만 있는 정육 코너, 1킬로 단위로 포장된 쌀, 대용량 유제품, 그리고 한국만큼은 아니어도 있을 건 다 있는 생활용품 코너까지. 매장을 한 바퀴 돌고 노란 레몬즙 한 병과 도브 보디워시를 골랐다. 한국보다 저렴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계산을 마치고 나가려는데, 출구 유리문 너머로 작은 움직임. 아기 고양이였다. 밖으로 나가보니 녀석은 이번엔 반대로 계단을 오르는 중이다. 계단 옆 풀밭에는 어미 고양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엄마가 있었네. 다행이다.’


아기는 계단 몇 개를 남기고 지친 듯 멈춰 섰다. 몸을 길게 뻗어 겨우 한 칸을 오르곤 또 쉰다. 애가 탄 나는 남편을 불렀다.


“여보, 빨리 와서 얘 좀 들어 올려줘.”
“스스로 할걸. 봐봐, 하잖아.”


정말이었다. 녀석은 앞발을 뻗어 계단 턱을 붙잡더니, 뒷다리까지 힘껏 끌어올려 또 한 칸을 오른다. 옆에서 숨죽이고 지켜보던 나는 긴장이 풀리면서 배가 땅겼다. 슬쩍 고개를 들어 어미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호랑이처럼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좋은 엄마네. 자식을 씩씩하게 키우는군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국에 있는 아들들이 떠올랐다. 군 훈련에 들어간 아들, 혼자 끼니를 챙기며 학교에 다니는 다른 아들.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에 몇 번이고 챙기고 신경 썼던 아이들. 아기 고양이가 계단을 오르듯, 아들들도 각기 길을 걷는 중이다. 아이들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담담하고 씩씩하다.


먼 타국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메시지로 격려하고, 전화로 사랑을 전하는 것뿐. 그저 지켜보며 다독이는 일뿐이다. 어미 고양이처럼, 그저 굳건히 버티며 아이들을 믿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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