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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식 비빔밥

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20

by Jina가다

일주일 동안 물갈이로 고생을 끝내자 매콤한 한국 음식이 간절해졌다. 가까운 한식당을 찾았다. 메뉴판에는 비빔밥, 불고기, 김치찌개, 탕수육, 만두, 초밥까지 한·중·일식이 한데 섞여 있다. 남편은 예전에 맛있게 먹었다면서 돌솥비빔밥과 제육볶음을 주문했다.


이집트인 종업원이 커다란 손으로 작은 반찬 그릇들을 테이블에 올렸다. 오이무침, 오이절임, 김치, 감자볶음. 숟가락과 젓가락이 가지런히 놓인 상차림을 사진 찍으니 한국 밥상 그대로다. 부엌에선 현지인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이어진다. 스피커에서는 7080 한국 노래가 흐르는 식당.


곧이어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등장했다. 잘 익은 달걀프라이 얹은 돌솥비빔밥이 화려하다. 두부를 넣어 끓인 된장국도 반갑다. 나물을 기대하면서 흰밥을 덮고 있는 달걀을 젓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기름에 볶은 감자와 당근, 파프리카, 소고기. 내 미묘한 표정을 보더니 남편이 말했다.


“한국에서 먹던 그대로를 기대한 거야?”

“나물이 나올 줄 알았지.”

“이집트식으로 바꿔야 장사가 되지 않겠어?”


고추장을 넣어 비벼 보니 맛은 익숙했다. 비빔밥은 고추장 맛이지. 반찬까지 싹 비우고 식당을 나왔다.


토요일 아침, 다시 비빔밥이 먹고 싶다. 냉장고를 열어 장 봐둔 채소들을 꺼냈다. 한국에서부터 들고 온 귀한 고추장. 마늘과 양파를 잘게 썰어 익힌 뒤, 볶은 소고기와 고추장을 한데 넣었다. 캐러멜처럼 끈적끈적하게 검붉은 고추장 볶음에 윤기가 돈다.


야채도 준비했다. 당근, 양파, 파프리카, 오이를 채 썰어 코코넛오일에 가볍게 볶았다. 이웃이 선물해 준 유정란은 반숙으로 익혀 두었다.

아직 한국에서 도착하지 못한 예쁜 냉면기가 아쉽다. 분홍빛 볼에 흰밥을 담고, 볶은 채소를 둘러 얹었다. 중앙엔 고추장 볶음을 올리고 참기름과 깨를 흩뿌리니 이집트식 비빔밥 완성이다.


좁은 볼 안에서 젓가락으로 야채를 휘휘 비벼서 한 입 넣는 그가 말했다.


“식당보다 훨씬 맛있네.”

“이래 봬도 직접 볶아 만든 고추장 볶음이라고.”

“음, 집들이 메뉴로 어때?”

나는 웃으며 대답을 아꼈다.

'더 연습하고 그때 대답할게 여보.'


타국에서의 삶은 늘 낯설고 불편하다. 아쉽고 부족한 것은 그저 나만의 방식으로 채워간다. 간절하다면 무엇이든 이룬다고 했던가? 외국 식탁에서도 나는 여전히 한국을 찾아낸다. 오늘의 이집트식 비빔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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