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에서 시작된 삶 14
옅은 두통이 이어지더니 배까지 뒤틀렸다. 이집트에 온 지 일주일, 누구나 겪는다던 ‘물갈이’는 내 차례가 되었다. 현지인들은 농담처럼 ‘파라오의 복수’라 부른단다. 이 땅에 들어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의식 같은 무게인가. 속이 울렁거려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동안 한기와 함께 두려움도 어깨에 앉았다. 대장 내시경으로 모든 것을 비워내듯 내가 숨겨둔 거만한 생각까지도 털어내게 한다. 낯선 물길을 피하고 싶다.
이곳의 물은 어릴 적부터 자란 사람에게는 무심한 배경이지만, 이방인에게는 시험대가 된다. 대장균, 살모넬라, 아메바, 지아르디아.... 이름만으로도 위협적인 미생물. 이 땅의 그림자처럼 일상에 스며 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에 음식을 빠르게 상하고, 냉장은 온전히 믿기 어렵다. 나는 자연스레 음식에 경계심을 품게 되었다. 낯선 맛에 대해서는 조심스레 혀를 댄다. 세수와 양치를 끝내면 늘 생수로 마무리한다. 물을 믿지 못한다는 사실은 삶을 불편하게 한다.
지인이 챙겨준 알약과 물약을 삼켰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약이 더 세다고 했지만, 아직은 내 나라에서 가져온 작은 상비약에 기대고 싶다. 소박한 알약과 손톱을 베었을 때 붙인 ‘대일밴드’ 하나에도 고향의 온기가 배어 있다. 엄마의 약손처럼 그 작은 것들이 나를 다독인다.
하루를 굶고 미역국에 밥을 말아 죽을 끓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릇을 앞에 두니, 불려진 쌀알보다 마음이 먼저 풀어진다. 낯선 곳에서 만난 한국의 맛. 몸과 마음까지 동시에 달래주는 귀한 처방전이다. 나중엔 이런 마음까지도 비워야 하나보다.
아직은 잠드는 일도 쉽지 않다. 에어컨을 끄면 더위에 뒤척이고, 켜면 추위에 시달린다.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장갑을 낀 손을 이불속에 넣은 채 잠을 청한다. 새벽 다섯 시면 들려오는 개들의 울부짖음이 또 한 번 잠을 흔든다. 삼거리에 모여 서로를 밀쳐내듯 짖어대던 녀석들은, 낮이면 길 한복판에 뻗어 누워 깊이 잔다. 새벽의 소란과 낮의 태평, 그 극적인 전환 속에서 나는 이곳의 질서를 배워간다. 자동차들이 속도를 줄여가며 개들의 길을 지켜주는 풍경. 이 도시가 보여주는 또 다른 합의의 모습이다.
어제는 얼큰한 김치찌개가 떠올라 군침이 돌았다. 딸과 함께 동네 한식당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약속을 취소했다. 매콤한 국물 한 숟갈이면 뒤집어진 장이 단번에 정리될 것 같다는 소망에 웃음이 났다. 터무니없는 생각이지만 아프게 되니 몸부터 고향이 그리운가 보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달라지겠지. 개 짖는 소리도 백색소음이 되고, 잠도 깊어지고. 약해진 장도 이곳 음식에 단단해질 것 같다. 낯선 환경은 결국 스스로 그 안에 합류하여 길을 내어야만 하겠지.
새로운 곳, 누구나 적응의 몫을 짊어진다. 딸은 낯선 직장에서, 아들들은 부모 없는 자취방에서, 남편은 주말부부의 현실에서, 나는 이방의 거리에서.
속도의 비밀은 마음가짐이란다. 마음만은 모든 상황을 흐르는 물길처럼 받아들이고 싶다. 때로, 그 물길을 거슬러 흔들고 싶을 때도 있지만 말이다. 마음만은 요동하거나 아프지 않게 나 자신을 잘 달래 본다. 낯선 물길에 다시 발을 내밀 용기를 갖추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