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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가다 Oct 15. 2021

나만의 부산 산책길

가을 산책 갑니다.

무더운 아침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살갗이 서늘한 가을 아침이 시작되었다. 10월이 되면서 매일 아침 7시가 되기 전 20분간의 짧은 동네 반 바퀴 산책길을 나선다. 세수도 하지 않은 마스크 가린 얼굴로 어슬렁거리는 느린 발걸음을 뗀다. 아들이 기상하려면 아직 30분은 남았다. 아파트 경비실을 지나 현관을 나서면 지난밤 흔들려 떨어진 갈색 나뭇잎들이 바닥을 뒹군다. 바닥만 보고 걸으면 완연한 가을이다.


 

공원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 걷는다. 20분 코스의 산책로를 천천히 걷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치게 된다. 아마 유심히 살펴본다면 매일같이 같은 시간에 만나는 사람들일 것 같다. 비치된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는 이들 그리고 두 팔을 흔들며 열심히 걷는 이들의 부지런함과 열정이 반갑고 즐겁다.



 

부산에 내려온 후 나만의 산책길들을 만들었다. 때로 기분에 따라 짧고도 긴 바다와 산의 산책길을 선택해서 걷는다. 가깝고도 먼 현관문을 나서 몸을 움직일 힘과 결단력만 있다면 어디든 가능한 작은 여행이 된다. 선크림을 골고루 펴 바르고 가벼운 운동화를 신는다.


 

이른 아침에 즐겨 찾는 산책길은 송정해수욕장이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우산을 들고, 맑은 날에는 모자를 쓰고서 가볍게 걷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해변 무료 주차장에 주차하고 걷기를 시작한다. 유난히 에메랄드빛으로 잔잔한 송정해수욕장은 날씨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침 8시가 되면 모래사장에 앉아 매일같이 명상을 하는 어떤 이의 뒷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파도가 치는 날에는 서퍼들의 공연 같은 움직임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함께 신이 나는 장면이다. 물결 위미끄러지며 스키를 타는 것 같은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서핑을 새로 배우는 이들이 모래밭에서 허우적대며 연습하는 동작에 웃음이 난다.


 

20분 정도 걷다 보면 송정 해수욕장 왼편 끝에 위치한 죽도공원에 다다른다. 한여름에도 냉기가 도는 신기한 섬 죽도는 몇 바퀴씩 돌아도 신기할 정도로 아담하고 예쁘다. 바다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정자에 앉아 쏟아지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송정해수욕장과 멀리 청사포의 돌다리 전망대를 구경한다. 둘레에 심긴 작은 대나무들 때문에 죽도라 이름 지어진 이 작은 섬은 근처 주민들의 체육공원이기도 하다. 흔들 그네 같은 운동기구에 발은 올리고 앞뒤로 굴러본다. 흔들거리면서 보이는 송정해수욕장의 전체 조망이 멋지기만 하다. 바로 옆 송정항으로 만선이 되어 바다에서 돌아오는 어선의 모습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송정 죽도 산책길...

 

 

사람이 그리울 때면 해운대 해수욕장을 찾는다. 1년 내내 외지인들로 가득한 해운대는 미포에서 동백섬까지 30분이 넘는 길을 걷는 동안 볼거리들이 가득하다. 유람선이 정착한 선착장, 파도가 부딪쳐 부서지는 부두, 고운 모래사장, 사람 모양을 하고 있는 수중방파제 등표가 보인다. 100층이 넘는 바벨탑 같은 엘씨티 건물들 그리고 호텔과 맛집들로 즐비한 도시의 모습들이 반갑기도 하다.


조선호텔을 돌아 바위와 데크 산책길을 걸으면 해운대 바다를 조망하면서 산길을 걷는 기분이 들게 한다. 인어공주 모양을 한 황옥공주 상을 지나친 후 오솔길을 따라 동백섬의 낮은 정상에 오르면 최치원 선생의 동상이 높게 서있다. 해운대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준 이가 최치원 선생이다. 최 씨 후손들은 제사와 행사를 통해 옛 조상을 기억한다. 근처 주민들은 번잡한 해운대 해수욕장보다는 아침과 저녁으로 동백섬 산책길을 찾는다. 숲길처럼 그늘진 이곳은 아담하고도 아름답다.


 

마음이 답답한 날에는 넓은 바다가 보고 싶어 영도 흰여울길로 향한다. 낮이면 젊은이들로 가득한 핫 플레스이지만 이른 아침에는 파도소리와 조용히 걷는 고양이들의 가는 울음소리만 들리는 곳이다. 절벽 위에 동네가 이루어져 조밀하게 붙어있는 작은 집들은 부산 어촌마을의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도의 흰여울길 주민들은 관광객들에게 자신의 터를 내주고 숨죽이며 조용한 삶을 산다. 그래서 골목을 걷거나 사진을 찍을 때면 좀 더 조심하게 된다. 흰여울길에서는 어느 곳으로 렌즈를 향해도 멋진 사진이 나온다. 영화와 광고에 등장한 특별한 장소들도 찾아볼 수 있다. 부산의 대형 선박들이 나란히 멈춰서 영도 앞바다를 가득 메운 묘박지는 장관이다. 밤새 배들의 정거장에서 잘 쉬었다가 오늘은 새로 항해를 떠날 예정이겠지. 부산에서만 볼 수 있을 법한 장면이다. 끝없이 펼쳐진 영도의 깊고 넓은 바다를 따라 걷고 나면 어느새 답답함도 파도와 함께 흩어지고 사라진다.


 

아름다운 밤바다가 보고 싶은 날에는 저녁 식사 후 광안리로 운전대를 향한다. 벚꽃길로 유명한 삼익아파트 쪽에서 걷기를 시작하면 동네 주민들이 한데 걷고 운동하는 산책로를 통과한다. 밤중에도 빛나는 광안대교를 구경하며 산책길을 걸을 수 있다. 해안도로 중간중간에 조형미술품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누릴 수 있다. 해변에는 순천 갈대밭에서 가져온 갈대 파라솔들이 해변의 멋짐을 추가해 준다. 시원한 밤바다를 걸으며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면 머릿속까지도 상쾌해진다. 바닷물로 단단해진 물가 해변의 모래길을 맨발로 걸어본다. 멀리 보이는 화려한 광안대교는 색색으로 바뀌면서 까맣게 어두운 밤을 멋지게 수놓는다. 늦은 밤이 되면 광안 대교 아래로 지나는 유람선들이 불꽃놀이를 펼친다. 코로나가 끝나면 10월의 가을밤 거대한 불꽃축제가 재개장되기를 바라본다.


광안리 야간 산책길...


 

친구들과 함께 가벼운 산책을 나설 때면 오륜대 마을의 황톳길로 향한다. 산중 저수지 근처에 위치한 땅뫼산은 산을 두른 저수지와 함께 주황색 황톳길을 조성해 놓았다. 신발과 양말을 벗어 두 손에 들고서 차가운 땅을 밟는다. 맨발로 흙길을 걷는 이곳에서는 마음도 한 겹 벗겨주는 것처럼 대화도 한층 편해진다. 중간에 키 큰 삼나무 숲 속 곳곳에 나무의자와 평상이 펼쳐져 있다. 평상 위에 다리를 펴고 앉아 친구들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다. 가을의 파란 하늘과 잔잔히 흐르는 푸른 강물은 마음을 잔잔케 한다. 끝없는 수다 후에는 황톳길 끝에 위치한 산채비빔밥 집으로 향한다. 우물가처럼 예쁘게 만들어 놓은 세면장에서 발을 씻고서 양말과 신발을 신는다. 세상 모든 염려를 씻어 내린 듯 발도 시원하고 마음마저도 개운하다. 우리의 허기진 배는 쓱쓱 비빈 건강 비빔밥으로 채워본다.



 

멋진 노을 사진이 찍고 싶을 때 걷는 다대포 해수욕장의 산책길, 건강을 위해 숲 탐험을 가는 기분으로 걷는 문텐로드, 미포에서 시작해서 청사포까지 걷는 아름다운 해안 산책길, 바다와 산길을 골고루 누리는 트래킹의 이기대길 등 수많은 산책길이 가득한 부산이다.


 

운동화를 신고서 걷기만 해도 얻는 좋은 생각들과 즐거움들은 우리 동네 한 바퀴로도 가끔은 충분하다. 내일 아침에도 현관을 열고 나갈 수 있는 열정이 계속 솟아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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