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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봄 Jul 06. 2022

장마가 시작됐다

마음 정리는 집안일하듯 해야 해



 7월, 길고 긴 장마가 시작됐다. 장마 기간 동안 나는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괜히 나갔다가 바람에 우산이 뒤집히고, 홀딱 젖은 채 집에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특별한 일이 없다면 최대한 집에 있으려 한다. 강제로 집에서 쉬게 되는 동안 밀린 집안일을 한다. 화장실 청소나 일주일 치 장보기, 가구 밑과 창틀 같은 세심한 청소를 한다. 바쁠 땐 신경 쓰기 힘든, 그렇다고 계속 미뤄두다간 언젠가 큰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일 말이다. 신경 쓰지 않은 집은 언젠가 냄새나고, 더럽고, 먹을 게 없어진다. 그러니 시간이 나는 대로 세심한 관리를 해보려고 한다. 이 기나 긴 장마 동안 말이다.



 타닥타닥.


 빗방울이 창문을 거세게 두드린다. 거실에 있던 난 빗소리가 들리는 창문에 가까이 다가갔다. 빗물에 덮인 창은 전혀 밖을 비추질 못하고 있다. 그저 비가 많이 오고 있음만을 보여준다. 어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비 오는 날 괜히 무리해서 밖에 나가지 말라고. 감기 걸린단다. 여기에 이런저런 이유를 더해 오늘은 집에 있어야겠다 다짐한다. 비가 그칠 때까지 밀려 있던 집안일이나 해야겠다.


 우선 청소기를 꺼낸다. 침대 밑, 가구 사이 공간, 문틈 등 평소에 신경 쓰지 못했던 곳을 꼼꼼히 청소한다. 자뭇 먼지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쌓여 있는 법이다. 바닥에 달라붙은 먼지까지 물걸레로 닦아준다. 걸레질로 자칫 집이 습해질 수 있다. 에어컨은 제습 모드로 두자.


 다음은 화장실이다. 청소 전에 세면용품을 모두 거울 뒤쪽 공간에 숨긴다. 그럼 마음 편하게 샤워기로 물을 뿌릴 수 있다. 적당히 물기가 생겼다면 욕실용 세제를 곳곳에 뿌린다. 그리고 거울, 세면대, 바닥, 변기 순으로 솔질을 한다. 배수구 열어 끼어있는 머리카락을 제거한다. 자주 점검을 안 하면 언젠가 물이 못 빠져나갈 정도로 막혀버린다. 마지막으로 물에 희석한 락스를 바닥에 살살 뿌려준다. 30분이 지나면 욕실 전체에 물을 뿌리며 정리한다.



 락스를 뿌린 사이 주방을 정리해 보자. 냉장고에 오래 있던 찬거리를 뺀다. 그리고 오늘 도착한 신선한 재료로 냉장고를 새로 채운다. 식사를 위해 먼저 밥을 짓는다. 쌀을 씻을 때는 아기 다루듯, 쌀알이 깨지지 않도록 씻는다. 진한 쌀뜨물은 냄비에 따로 담아둔다. 그렇게 쌀을 서너 번 헹구고 손바닥으로 쌀을 짚었을 때 두 번째 마디에 올 정도로 물 양을 맞춘다. 압력밥솥에 쌀을 붓고 취사를 한다. 다음에는 오늘 온 돼지고기로 김치찌개를 해보자.


 쌀뜨물에 새우젓 한 숟갈을 풀고 돼지고기를 삶는다. 그렇게 10분쯤 끓이면 돼지고기가 연하게 익으면서 기름이 나온다. 물이 졸은 만큼 물을 보충하고 푹 익은 김치를 넣는다. 다진 마늘과 설탕도 넣어준다. 그리고 오래도록 끊인다. 옆 화구에선 자주 쓰는 식기를 삶아 주자. 숟가락과 젓가락, 포크, 접시, 컵을 물에 담근다. 베이킹 소다를 한 숟갈 넣고 10분 정도 삶는다. 소독이 끝난 식기들은 물에 한번 헹구어 말려둔다. 사용했던 도마와 칼도 바로 설거지한다. 설거짓거리가 자리를 차지하면 불편할 일이 많으니 말이다.


 이렇게 한바탕 하고 나니 온몸이 땀범벅이다. 방금 막 청소한 욕실에서 샤워를 하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몸이 노곤하다. 욕실에서 나오면 피부에 닿는 공기가 보송하다 느낀다. 청소와 제습 덕을 톡톡히 본다. 밥과 김치찌개도 어느새 완성되었다. 방금 소독한 그릇에 밥과 국, 반찬을 담는다. 빗소리를 들으며 따듯한 밥을 먹는다. 마음이 안정된다. 깨끗한 욕조도, 먼지 없이 상쾌한 공기도, 소독된 식기와 그에 담긴 음식도 모두 내가 한 일이다. 힘들지만 내가 한 일의 결과가 고스란히 내게 돌아온다. 결국 집안일은 나를 돌보는 행위와 마찬가지이다.


20년 5월 어느 날


 우우우웅.


 알람 진동이 머리맡에서 울린다. 베개에 파묻혀 최대한 멀어지려 했지만 오히려 찐득함만 느낀다. 그 불쾌함에 몸을 일으켰다. 베개를 보니 눈물이 잔뜩 배어있다. 밤새 울었나 보다. 요즘따라 이런 아침이 잦다.



첫 잠에서 깨어나 뜨거운 차를 만들면
다음 잠에서 깨어날 때 슬픔이 누그러지리라



 벽에 붙여둔 문구이다. 어제는 종일 뜨거운 감정을 쏟았으니 오늘은 어제보단 나아지겠지라 스스로를 달랜다. 내게 우울한 시기는 장마와 같다. 매년마다 찾아와 언제 끝날지 모를 비를 쏟아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유를 찾아보려 했다. 이유를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다 보면 암울한 기억에 닿곤 했다. 자기 전마다 일생의 모든 암울한 기억이 시네마틱으로 펼쳐진다. 과거에서 이유를 찾는 건 결국 "내가 불행한 삶을 살았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할 뿐이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 하등 도움 안 되는 결말이다.


 심리학을 공부하며 '감정은 도구'라는 점을 배웠다. 그럼 우울의 역할은 무엇일까. 우울은 몸을 가라앉게 만든다. 의욕을 없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강제로 몸을 멈추면서까지 무의식이 바라는 건 나를 쉬게 만드는 것이다. 몸과 마음에 무리가 가해지면 무의식은 우울한 감정을 보내 멈추려 든다. 하지만 나는 그 신호를 나태함으로 치부했다. 각성제를 먹고, 인스턴트 같은 위로 글귀를 읽으며 일상을 지켰다. 오히려 무리를 한 셈이다. 무의식은 처음 보낸 우울 신호만으로 몸이 멈추지 않으니, 더 큰 우울 신호를 보낸다. 쉬지 않는 한 우울 신호는 점점 커진다. 결국 공황이 터졌고 강제로 멈췄다. 밖에 비가 오는데 무리해서 나갔다가 독감에 걸린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필요할 때마다 쉴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 자신을 몰아붙이다 번아웃이 와서야 쉬려고 하니 말이다.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능력을 키우고, 소중한 사람이 병마와 싸우고 있을 때 옆에서 간병해야 했다. 신체의 쉼(잠)은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니 어찌할 방법이 없다. 다만 정신의 쉼만은 내가 무엇을 하냐에 따라 짧더라도 질 높은 휴식이 가능했다. 내겐 크게 세 가지 방법이 통했다.


 첫 번째는 일기 쓰기이다. 모든 이유는 과거에 있고, 그 결과의 책임은 현재의 내가 진다. 하지만 내가 무얼 해왔는지는 하루만 지나도 기억나질 않는다. 당신은 어제 점심에 무얼 먹었는지 바로 기억할 수 있나. 보통은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곰곰이 되짚다 보면 기억할 수 있다. 오늘 먹은 점심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아침은, 그 전날 저녁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을 역재생하다 보면 충분히 떠올릴 수 있다. 우린 모두 평소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곰곰이 생각하면 그 어떤 기억도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 당장에 떠오르는 생각대로 살고 있다. 현재 왜 이런 생각이 휩싸이는지 모른 채 말이다. 이유 모를 부정적인 생각은 미지의 두려움을 더한다. 하지만 그 이유는 과거의 어딘가에 분명히 있다. 일기를 씀으로써 과거를 되짚고, 발목 잡힐 일들을 미리 청소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스스로가 알아주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정확한 언어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감정의 결은 무한하다. 슬픔만 해도 그렇다. 당신이 느꼈던 슬픔은 아끼는 신발이 진흙 때문에 엉망이 되었을 때 느끼는 슬픔인가, 종종 밥을 챙겨주었던 길고양이가 어느 날 차에 깔려 죽은 걸 봤을 때 느끼는 슬픔인가, 화재 현장에서 장롱에 숨어있던 아이를 구하지 못했을 때 소방관이 느끼는 슬픔인가. 모든 슬픔이 다르고 내가 가진 슬픔보다 더 커 보이는 것도 있다. 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 크기가 아니라 공감이 될 만큼 정확하고 세심한 표현이다. 우리네 언어가 위대한 점은 바로 이 무한에 가까운 감정을 거의 정확하게 대변할 수 있는 것이다.


 내 감정이 정확히 기쁨, 슬픔, 우울, 짜증, 무기력, 당혹, 외로움, 산뜻, 무미건조 중 어느 쪽인지, 세심한 상황 묘사 혹은 대변할 만한 비유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일상생활에도 적용시켜 본다. 상사의 잘못으로 야근하는데, 다른 팀원들은 만만한 내게 책임을 돌리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아 짜증 나” 보다 “한 배에 타고 있던 동료들이 위급 상황이 되니 나만 섬에 버리고 떠난 기분이야”로 표현하듯 말이다. 정확한 표현은 타인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본인이 스스로의 감정을 정확히 아는 건 근본적이고, 온전한 치유를 건네는 길에 서있게 해 준다.



 마지막은 노래, 문학, 영화 등 좋은 문화 콘텐츠를 찾아보는 것이다. 일기 쓰기, 감정 표현 모두 내면을 끄집어내는 과정이다. 하지만 분명 내 것이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 답답함을 표출하고 싶은데 표현할 줄 모르니 더 답답해진다. 그럴 때 좋은 문화 콘텐츠가 큰 도움이 된다. 여기서 좋은 문화 콘텐츠란 마치 내 마음을 정확히 대변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을 말한다. 내 경우 소설은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노래는 '저스디스, 살만해', 영화는 '지브리 시리즈'가 그렇다. 쉬는 날 마음 편하게 감상하는 것이다. 그러다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대사나 가사가 있으면 손뼉 치며 적어두면 된다. 나의 생각을 100%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인 만큼 남들이 고심하여 만든 좋은 표현이 있다면 빌려오는  것이다. 유튜브, 넷플릭스, 왓챠처럼 수많은 문화콘텐츠에 둘러싸인 현시대, 이만큼 좋은 표현들을 수집하기 좋은 때가 없다. 내면을 충만하게 채울 재료를 찾아보자.





 우울한 날에는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 편이다. 괜히 만났다가 어설픈 위로에 상처만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홀로 시간을 보낸다. 일기를 쓰며 생각을 청소하고, 친한 친구와 통화하며 막힌 감정을 분출한다. 바빠서 읽지 못한 책이나 영화를 보며 내적 만족을 채운다. 쌓였던 불만을 하나씩 해치운다. 사실 매일 할수록 좋지만 일상에 치이다 보면 밀릴 때가 많다. 그러니 우울 때문에 내면에 반강제적으로 갇히는 시기 동안 해치우는 것이다. 이번 장마는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냥저냥 흘러갈 시간이 아니길 바란다.


 이번 장마가 끝나면 함께 밖을 나서자.


#photo by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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