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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Oct 23. 2021

눈자위가 시뻘겋다

치매검사 차 광주 큰딸네 집에 간 엄마가 내려오신다기에 버스정류장으로 마중을 나갔다.

원래는 내일 내려오시기로 되어 있는데 하루 앞당겨 내려오신 거였다.

엄마를 차에 태워 엄마 집으로 모시고 갔는데, 엄마 얼굴을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양쪽 눈 가장자리가 둥근 테 모양으로 아주 시뻘건 것이다. 마치 두들겨 맞아 피멍이 든 것처럼.

이게 어인 변고인고? 

엄마에게 “눈이 왜 이래요?” 라고 물으니 엄마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실 뿐 그 연유에 대해 말하지 않으셨다. 그런데도 오히려 얼굴색이 밝다. 어찌된 영문인지 누나한테 바로 전화를 하였다.

누나는 자타 공인 천사 표 효녀이다.

그런 누나가 말했다. “아이고 말도 마라,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조르고 울고불며 난리를 하시더라.”

상황이 능히 짐작이 갔다.

누나는 학교 선생님인데, 엄마가 뻔질나게 전화하여 얼른 집에 가고 싶다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하소연을 했을 것이다.

딸네집이 편하고 누나 또한 엄마를 극진으로 모시기에 아무 불편함이 없었을 터인데도 엄마는 근무 중인 누나에게 수시로 전화하여 떼를 썼을 것이다. 

누나도 어지간히 질린 모양이다.

“엄마 내가 모시고 살려고도 생각해봤는데 같이 못살 성 싶더라,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칭얼대고 조르는데...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아마도 엄청 우셨나보다.”

‘헐! 얼마나 우셨기에 저리 눈이 시뻘겋도록 우셨을꼬, 못살아!’

누나는 출근하고 아무도 없으니 적적하고 갑갑하기도 했을 것이다. 엄마가 서럽게 엉엉 우는 모습을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엄마 눈은 뻘겋게 충혈 되곤 했었다.  

나는 지긋이 엄마를 쳐다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아이고, 내 집이 좋지! 딸네집이 딱히 불편한 건 없어도 내 집이 최고지, 암.”라고 말씀하시는데 피멍 든 얼굴에 웃음꽃이 피며 화색이 돌았다.   


나는 그런 엄마가 어이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남의 집에 가면 어쩔 줄 몰라 서성대거나 수시로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게 치매 노인의 증상이라고 한다.

단기기억장애가 있는 엄마는 최근 일은 깜박깜박하지만 오래전의 일은 엊그제 일처럼 기억을 잘 한다. 그런 기억력이 마치 귀소본능을 닮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는 낯선 곳보다 낯익은 곳, 깨끗하고 근사한 집보다 내 체취가 남아있는 살가운 보금자리가 그리워 자꾸 당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건 아닐까? 죽음조차도 내 집에서 맞아들여야 편히 눈을 감을 것이다.

요양시설에서 생애를 마치는 노인들의 운명이 살짝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엄마가 가고픈 그 집에는 반겨주는 이 아무도 없지만, 늘 그 자리, 어지럽혀지고 지저분하더라도 고향처럼 따뜻한 곳, 안심이 되는 곳, 안온한 안식처.

아마도 엄마가 생각하는 집은 기실 우리들의 집일 것이다.

우리들의 엄마 집, 나도 그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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