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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Oct 23. 2021

나 제발 가만히 내버려 둬요!

엄마 집에 가면 오래 앉아있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곳 바닥 여기저기에 옷가지며 헝겊, 소지품 등 온갖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널려있어 정신 사납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엄마가 자꾸 귀찮게 하기 때문이다.

엊그제도 밖에서 식사를 하고 바람을 쐰 후 엄마를 집에 바래다주었다.

엄마는 허리가 구부정하고 거동이 불편하시기 때문에 내가 늘 엄마 손을 잡고 다닌다.

나는 집안으로 들어서서 잠깐 거실에 앉아있었다. 오래 머물 생각은 애당초 없었지만 바래만 드리고 곧바로 가기가 뭐해서 잠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거실은 제법 치워져 있었다.  

난 안방에 들어가 널려있는 물건을 주섬주섬 정리한 후 티브이를 켠 후 잠시 쉬고 있는데, 엄마가 옆에서 부스럭거리며 부산하게 뭔가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냉장고에서 사과와 오렌지 등의 과일을 꺼내오고 투명한 비닐봉지에 든 튀밥 같은 과자를 쟁반에 담아오신 것이었다. 그런 엄마의 행위에 나는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리고 아예 입을 꾹 다물고 짐짓 외면하며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좀 전에 배불리 식사하고 왔으므로 과일조차도 땡기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엄마 집에 있는 과일이며 음식물을 축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 나 안 먹어요!”라고 분명히 말하며 일부러 시선을 티브이에서 거두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왜 안 먹어야? 엄마 집에 왔으면 뭐라도 다시고 가야지.”하며 사과 1개를 깎으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를 더 깎고, 3개째 깎기 시작하시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더욱 못마땅하여 “엄마! 사과 한 조각이나 집어먹으면 되지, 왜 그렇게 많이 깎아요. 그만 좀 깎아요! 누가 먹을라고.”라고 말을 해도 엄마는 내 의견을 묵살하며 “아녀 이까짓 것 머, 많이 먹어라.”라며 연신 과일을 깎아대었다. 사실 과일 한두 개면 나와 엄마의 후식 양으로는 충분했다. 다 먹지도 못할 것인데 굳이 그렇게 많이 깎아놓을 게 뭐람. 사과 같은 과일은 특히 깎아놓으면 점차 색이 바래면서 갈색으로 누렇게 변한다. 그러면 맛도 없어 보이고 위생상도 그렇고 보관하기도 안 좋다. 그러다보면 처치 곤란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사과 두 조각을 집어먹고 손을 털었다. 더 이상 안 먹는다는 표시로 엄마를 향해 두 손을 부딪쳐 터는 제스처를 취했다. 


엄마의 극성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난 분명히 더 이상 안 먹는다는 의사표시를 강력히 표명했음에도 엄마는 ‘이것도 먹어봐라, 저것도 먹어봐라’며 계속 내게 재촉을 해댄다. 엄마가 과자를 집어주고 난 안 먹겠다고 실랑이를 하는 과정에서 찐득찐득한 과자 부스러기가 밑으로 떨어진다. 방이 지저분해진다. 그러면 나는 조금씩 짜증이 나면서 “엄마 나 안 먹는다고 했잖아요!”라고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한다. 물론 엄마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귀가 멀지는 않았다. 나의 몇 번의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요하게 권유를 하는 엄마를 보면 엄마 고집도 어지간하다. 엄마의 고집도 여간 아니지만 고집이 세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자꾸 음식물을 내게 들이밀고 나는 극구 거부하는 행위가 계속되는 상황,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신경전이 계속된다. 아 귀찮아! 자꾸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도 싫고 엄마에게 짜증을 내는 내 자신도 싫어진다. 좀 전까지 즐겁게 바람을 쐬고 왔는데 어느 순간 마음이 좋지 않아진다. 그때쯤 되면 한숨이 나오면서 나도 얼른 박차고 일어나고 싶다. 그러면 조용히 노래를 들으면서 엄마와 이야기 좀 하고 나오려는 내 계획도 차질이 생기고 감정도 엉망진창이 된다. 엄마는 내가 그렇게 싫다고 하는데도 왜 그러실까...

엄마의 지나친 자식 사랑이 사실 너무 부담스럽다. 결국 “엄마, 날 좀 제발 가만히 내버려 둬요!”라며 비명에 가까운 고성을 지르고, “계속 이럴거면 나 갑니다!”라고 협박성 경고를 한 후에야 엄마는 “아, 알았다. 알았으니 좀 더 있다 가라.”며 한발 물러나 그 질긴 공세를 멈춘다. 액션이 커야 효과가 있는 법이다.

그러다 내가 진짜 일어나서 가려고 하면 또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다. 이번에는 엄마가 냉장고에 있는 커다란 김치통을 꺼내 몇 포기를 용기에 담고, 비닐봉지에 일일이 반찬이며, 과일, 요플레 등 별별 것을 다 담느라 또 한번 부산하다. “아휴, 또 저러시네. 나 안 가져가요, 집에 김치 많이 있어요, 과일도 저번주에 한 박스 사서 차고 넘쳐요.”라고 거부 의사를 표시해도 엄마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 일만 계속하신다. 

“이건 시골에서 담은 김치라 겁나게 맛있어야! 가져가서 먹어라.”라고 말하며 봉지를 질끈 동여매서 차곡차곡 넣은 보따리를 나의 손에 기어코 쥐어주려고 한다. 난 이를 뿌리치고 손사래를 치면서 질색을 하지만 엄마는 무조건 가져가라고 우긴다. 엄마의 집요함은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다. 


내가 완강한 태도를 보이고 바락 소리를 질러도 효과가 없을 때는 그 봉지며 보따리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엄마 입장에서는 자식한테 뭐 하나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사실 그 과일이며 마실 것은 다 자식들이 엄마 드시라고 사드렸기 때문에 이 자식한테 주고 저 자식한테 나눠주다 보면 다시 사다드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리고 각종 봉지며 보따리를 주렁주렁 들고 가는 것 자체도 나로선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절절하게 호소하며 사정한다. 

“한번 안 가져간다고 말하면 주지 마세요. 두말세말 시키지 말고 제발요! 제 말을 좀 따르세요!”라고 말이다.  

또 다른 사정이 있다. 엄마가 하도 저러시니 져주고 싶기도 하지만 한번 져주면 계속 그러실 것이기에 딱 부러지게 내 입장을 천명하고자 져주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그러고 난 후 사후처리는 오롯이 엄마 몫이다. 용기에서 김치를 다시 꺼내 큰 김치통에 붓고 김치가 잔뜩 쟁여있는 김치통을 들어 다시 제자리에 넣어둬야 한다. 허리가 굽은 노인네가 그 무거운 김치통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다시 들여놨다 하니 얼마나 힘들고 번거로운 일인가. 과일이며 다른 반찬도 마찬가지 절차를 반복한다. 쓸데없는 신경전이고 시간 낭비이고, 헛된 수고로움이다. 

엄마와 나의 그런 신경전은 엄마 집에 갈 때마다 벌어지곤 한다.

서로 간의 입장 차이는 분명하다. 엄마는 엄마대로 내가 이해가 안 될 것이고 나는 나대로 엄마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엄마 집에 오래 있지 못하는 이유이다.

아휴! 못 말리는 우리 엄마. 

내가 엄마에게 “엄마, 제발 내 말 좀 들으세요!”라고 말하면 엄마도 “아들아, 제발 내 말도 좀 들어라!”라고 말하시겠지.  

우리 모자는 그렇게 운명 지어진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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