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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엄마는 사장님 누나는 회장님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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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나루 Oct 23. 2021

엄마와 처의 고충 사이에서

바람이 제법 불지만 하늘은 쾌청한 날,

엄마와 점심식사 겸 드라이브를 하러 가게 되어 있었다.

처에게 같이 가겠느냐고 물었다. 처는 미안한 기색으로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나도 어머니랑 같이 맛있는 거 먹고 바람도 쐬고 싶은데, 알다시피 내가 위가 좀 안 좋잖아. 그리고 어머니가 자꾸 똑같은 말을 물어보셔서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어. 오늘은 혼자 갔다 와. 어머니께 맛있는 거 사드리고 잘 놀다 와.”

나는 두말 않고 “오케이.” 했다. 처의 애로사항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처는 몸이 약한 데다 장이 좋지 않아 소화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밥을 조금씩 천천히 먹는 습관이 있다. 나와 같이 먹을 때도 템포 좀 맞춰주면 안 되냐고 눈을 흘기기도 한다. 나야 밥을 잘 먹고 소화력이 왕성하기 때문에 식사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다. 80대 중반인 엄마도 식사는 잘하신 편이다. 그래서 셋이 식사를 하게 되면 처가 제일 뒤처져 끝내는 식사를 다 못하고 수저를 중간에 놓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게 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편했을 게다. 본인도 거뜬히 잘 먹고 싶겠지만 그게 잘 안되니 답답한 노릇이었을 게다. 더군다나 엄마는 식사하는 도중에 처에게 자꾸 물어보신다. “수빈이 학교 잘 다니냐?”, “수빈이 몇 학년이냐?”, “친구랑 둘이 딱 쨈매서 하숙치냐?” 등등.

그러면 처는 손녀의 소식이 궁금해하실 엄마에게 처음에는 꼬박꼬박 상냥하게 대답을 해준다. 거기까지만 물어보시면 괜찮으련만, 엄마는 좀 전에 얘기해준 것을 까먹고 자꾸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 식사를 빨리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처 입장에서는 식사에 집중하고 싶은데 자꾸 엄마가 말을 거니 안 그래도 늦은 식사가 더 늦어지곤 한다. 어머니가 물어보시는데 대답을 안 할 수도 없고.

똑같은 질문과 대답 속에 느긋하게 식사를 하지 못하는 처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또한, 밥을 팍팍 맛있게 복스럽게 떠먹어야 하는데 깨작깨작 선나선나 먹고 있으니 그런 모습을 보는 엄마는 다소 못마땅하거나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을 게다. 그런 점들이 처를 더욱 불편하게 한 것이다.

하여 난 혼자 엄마를 모시러 갔다.

엄마를 차에 태우고 출발하는데, 엄마는 역시나 내게 “며느리를 델꼬오제 왜 혼자 왔냐?”라고 물어보셨다.

그러면서 “며느리가 같이 와서 밥도 먹고 오순도순 이야기하고 그러면 정도 붙고 좋은디 오지도 않고...싹싹한 맛이 없당께.”라고 말하며 못내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도 덧붙였다.

“밥값 많이 들어서 안 오냐? 지 밥값이 얼마나 든다고...”

나는 그 소리에 픽 웃고 말았다. 사실 그동안 몇 번 해명을 했지만 엄마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엄마의 서운함도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었다.

그래서 한 번 더 설명을 해야 했다.

“수빈이 엄마는 위가 약해서 천천히 먹어야 하는데 우리는 밥을 빨리 먹어버리니까 자기가 괜히 뻘쭘하고 불편하다는 거예요. 밥을 빨리 먹게 되면 체할 거 같고, 또 엄마가 식사때마다 똑같은 말을 자꾸 물어보시니까 밥을 제대로 못 먹는다고 하네요. 그건 그렇고 수빈이 엄마는 맨날 엄마한테 맛있고 비싼 거 사드리고 오라고 해요, 절대로 돈 때문에 안 오는 거 아니예요.”

“긍께, 며느리가 전에 보면 밥을 많이 안 먹고 깨작깨작 먹고 그러더만. 위가 약해져서 그런가 어쩐가, 그래도 같이 와서 밥을 먹고 얘기를 해야 정도 붙고 그러는데.”

엄마는 내 설명에도 불구하고 약간 마뜩찮은 표정을 지었다.

“엄마도 왜 그렇게 깨작깨작 먹느냐고 핀잔을 주잖아요.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잘 안되니까 부담되고 미안해서 그러죠.”

엄마의 고충을 이해하고 처의 고충도 물론 이해한다.

내가 그 두 고충의 간격과 그 사이에 낀 연유를 설명해주어도 엄마는 또 까먹고 현상과 결과만을 보기에 엄마의 오해는 당분간 계속 남아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래서 작전을 바꿨다. 그래서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수빈이 엄마가 있으면 우리 둘이 이러쿵저러쿵 속말을 할 수 없잖아요. 우리끼리 할 얘기가 있는데 남이 엿들으면 어떡해. 며느리는 남이예요, 남!”

엄마도 그제야 피식 웃으며 얼굴이 좀 펴진다.

“아, 그런 것도 있지.”

나는 결국 ‘며느리는 남이니 끼워주지 말자’는 다소 어쭙잖은 설득으로 엄마의 마지막 서운함을 달래줘야만 했다. 그쯤 해서 수빈이 엄마의 불출석 이유를 마무리 짓고 우리는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미안하네, 수빈이 엄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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