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도 들었제? 깸망아지를 잡아노믄 삼천 원을 준다카이 니 지금부터 깸망아지 좀 찾아보래이"
"흐헉! 할머이 거머리도 아니고 지렁이도 아니고 하필 깻망아지를 잡으라 하믄 우뜨케"
"저기 나뭇가지로 젓가락을 맹그러 살살 잡아 땡기보래이"
물심부름을 나왔던 나는 갑자기 깻망아지 사냥꾼으로 임명되었다.
꼭꼭 숨어라 까만 뿔이 보일라
지금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지만 희한하게 어린 시절 참깨 밭엔 깻망아지가 더러 있었다. 무심코 지날 땐 모른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순간 눈이 딱 꽂힐 때가 있는데 그때부턴 깻망아지의 뾰족한 뿔과 옆구리에 있는 까만 점이, 꿈틀꿈틀 접착력 좋은 여러 개의 다리가 보이고 그 특유의 빛나는 야광색 연둣빛은 그 색 자체 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을 돋게 하는데 더러 나이가 들어 갈색으로도 변했지만 하얀 누에의 징그러움을 십 점 만점에 일점이라고 한다면 깻망아지는 십 점 만점에 십 점이었다.
이왕 할머니를 도와드리기로 한 거 나는 나뭇가지를 꺾어 엄청 긴 젓가락을 만들어 참깨밭 구석구석 누비며 깻망아지를 찾았는데 젓가락질도 서툰 내가 긴 젓가락으로 깻모종에 붙어 있는 녀석을 떼어 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으어어, 으허허"
나는 요상한 소리를 내며 깻망아지를 한 마리 한 마리 잡아 깡통에 담았고 한 마리 두 마리 엉키며 쌓이기 시작했다.
"할머이 이거 몇 마리나 잡아야 해?"
"마이 잡으믄이야 좋지. 깨 다 뜯어먹기 전에 잡아 노믄.니 덕에 올해 깨 마이 나겠다."
온몸에 돋는 소름을 가라앉히며 나는 참깨 밭에 살고 있던 크고 작은 깻망아지들을 일망타진했고 집에 가서 비누로 손과 팔뚝을 몇 번이나 박박 씻고 잠이 들었다.
"야나, 니 품삯 이래이"
할머니가 내게 건네신 것은 천 원짜리 한 장이었다.
"할머이 아침에 깻망아지 팔았어?"
"오이야. 니가 마이 잡아서 잘 팔았다. 이건 니 몫이고 이건 공일에 교회 가는 길에 아이스께끼 사다가 느 성하고 동상들하고 노나 무래이"
갑자기 손에 삼천 원이란 큰돈을 쥐게 된 나는 어제의 소름은 잊고 매일매일 깻망아지를 잡아서 파는 장사꾼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소한 향내를 싣고 온
엄마가 참깨 타작을 끝내셨다며 택배로 참기름을 보내주셨다. 나는 엄마가 주시는 참기름을 얻어먹을 때마다 어린 날 내가 잡았던 깻망아지가 떠올라몸이 으허허 하고떨리고지난친정행엔 혹시나 나방으로 변하기 전의 깻망아지를 볼 수 있을까? 맘을 단디 먹고 깨밭에 들어갔지만가 다행인 건지 안타까운 건지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생뚱맞게 참깨밭에 들어간 나의 목적을 아신 엄마가 전해주신 결론은이젠 깻망아지는 살지 않는다는것이었다. 이젠 종자 자체가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고. 그리고 동네분들이암만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사셔도 동네 군데군데 땅을 임대한 사업가들과 임자가 바뀌어 버린 땅에선 소득을 위한 센 약품들이 기계로 뿌려져 바람을 타고 밭고랑을 넘어 수로를 타고흘러 인근의 경작지에 타격을 주기도 해서 민원도 생기고 땅은 이미 몸살을 앓고 있다 하셨다. 그리고 내가 어릴 적 흔하게 보던 곤충들도 꽃들도 어느순간 사라졌고대신 축사짚단과 계분을 따라온 외국 꽃씨들과 타 지역 식물들로 동네엔 이름 모를 꽃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고도 하셨다.
밤낮 구분 없이 식물을 비추는 전등과 돌아가는 스프링클러, 철에 맞지 않는 벌통들로사계절이 아닌 한 계절 속에 사는 듯이 변해 버린 나의 고향은 앞으로 어떤 변화를 더 겪게 될까?
그래도 아직까지 땅을, 삶을 일구시는 부모님 덕분에 참기름과 들기름을 얻어먹을 수 있다는 감사는 해가 갈수록 구수한 향내만큼이나 짙어져 내 맘을 울컥하게 한다.
귀뚜라미 노랫소리와 함께 찾아온 가을. 곧 들깨 수확도 다가오는데 올해는 좀 더 열심히 타작을 도와야겠다는 다짐을 해보며 좀 웃기긴 하지만 소원 같은 주문을 외우며 잠을 청해본다. 오늘밤엔 할머니와 깡통안에 들어 있던 깻망아지를 들여다 보며 놀라고 웃던그 시절 그 참깨밭으로 소환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