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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Sep 15. 2023

야나할머니와 깻망아지

오늘밤 꿈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새벽부터 참매미가 죽어라고 우는 바람에 일찍 잠이 깬 나는 닭장에 모이도 넣어주고 토끼풀도 넣어 주고 마당으로 나왔다. 할머니는 이미 아침을 드셨는지 밭에 가실 때에나 신는 흙양말에 신발을 신으시며


"내 신작로 가에 있는 깨밭에 풀 매러 간데이. 이따가 열 시 되면 물 한 사발 떠서 갖고 온네이"


나에게 물 심부름을 시키시곤 아침 안개 사이로 사라지셨다.


이글거리는 칠월의 태양은 아침 안개를 감쪽같이 사라지게 했고 일찌감치 윗도랑에서 빨래를 해 온 나는 마당의 빨랫줄에 빨래를 널고 엄마가 내린 지령인 장독대 뚜껑도 열어 놓고 간 밤에 동생이 오줌 싼 이불도 널고 보니 얼추 열 시가 되어 있었다.


"할머이~ 물이랑 도마도 짤라왔어"


"오이야 밭고랑 더우니  있으래이 내 나가마"


할머니가 구부정한 펴지지 않는 무릎을 한참만에 펴시곤 엉거주춤한 자세로 천천히 밭가로 걸어 나오셨다.


"아이고야 시원타. 시상에서 물이 젤 맛있지. 어디 도매도도 먹어볼까?"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토마토를 떠서 입에 넣으시려고 하는 그 순간 할머니와 내 앞에 까만 승용차가 한 대 서더니 까만 안경을 쓴 아저씨가 유리창을 열고 말을 걸었다.


"할머니. 말씀 좀 여쭐게요. 혹시 이 밭이 참깨 밭인가요?"


"야아 이게 참깨밭이래요. 근데 그건 우째 묻는대요?"


"할머니 참깨 밭에 벌레가 있다고 하던데 그걸 지금 잡을 수 있을까요?"


"이잉? 깸망아지를 잡는다고요? 그걸 어데다 쓸라고 그런대요?"


"아, 제가 강에 낚시를 하러 가는 중인데 깨벌레가 메기랑 쏘가리 미끼로 최고라고 해서요"


"깸망아지야 찾을래믄 찾을 수야 있겠다만 차에서 내리가꼬 직접 잡아볼래요?"


"아니요 할머니. 제가 지금은 일정이 있어서 곤란하고 내일 아침 7시쯤 올 테니 좀 잡아 주시면 어떨까요? 제가 품삯으로 삼천 원 드릴게요"


"낼 아침 7시에 온다고요? 그라믄 내가 낼 이 자리에 붙들어 놓고 있을게요"


까만 승용차 아저씨는 부르릉 거리며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고 할머니는 내게 솔깃한 제안을 해오셨다.


"니도 들었제? 깸망아지를 잡아노믄 삼천 원을 준다 카이 니 지금부터 깸망아지 좀 찾아보래이"


"흐헉! 할머이 거머리도 아니고 지렁이도 아니고 하필 깻망아지를 잡으라 하믄 우뜨케"


"저기 나뭇가지로 젓가락을 맹그러 살살 잡아 땡기보래이"


물심부름을 나왔던 나는 갑자기 깻망아지 사냥꾼으로 임명되었다.




꼭꼭 숨어라 까만 뿔이 보일라


지금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지만 희한하게 어린 시절 참깨 밭엔 깻망아지가 더러 있었다. 무심코 지날 땐 모른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순간 눈이 딱 꽂힐 때가 있는데 그때부턴 깻망아지의 뾰족한 뿔과 옆구리에 있는 까만 점이, 꿈틀꿈틀 접착력 좋은 여러 개의 다리가 보이고 그 특유의 빛나는 야광색 연둣빛은 그 색 자체 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을 돋게 하는데 더러 나이가 들어 갈색으로도 변했지만 하얀 누에의 징그러움을 십 점 만점에 일점이라고 한다면 깻망아지는 십 점 만점에 십 점이었다.


이왕 할머니를 도와드리기로 한 거 나는 나뭇가지를 꺾어 엄청 긴 젓가락을 만들어 참깨밭 구석구석 누비며 깻망아지를 찾았는데 젓가락질도 서툰 내가 긴 젓가락으로 깻모종에 붙어 있는 녀석을 떼어 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으어어, 으허허"


나는 요상한 소리를 내며 깻망아지를 한 마리 한 마리 잡아 깡통에 담았고 한 마리 두 마리 엉키며 쌓이기 시작했다.


"할머이 이거 몇 마리나 잡아야 해?"


"마이 잡으믄이야 좋지. 깨 다 뜯어먹기 전에 잡아 . 니 덕에 올해 깨  마이 나겠다."


온몸에 돋는 소름을 가라앉히며 나는 참깨 밭에 살고 있던 크고 작은 깻망아지들을 일망타진했고 집에 가서 비누로 손과 팔뚝을 몇 번이나 박박 씻고 잠이 들었다.




"야나, 니 품삯 이래이"


할머니가 내게 건네신 것은 천 원짜리 한 장이었다.


"할머이 아침에 깻망아지 팔았어?"


"오이야. 니가 마이 잡아서 잘 팔았다. 이건 니 몫이고 이건 공일에 교회 가는 길에 아이스께끼 사다가 느 성하고 동상들하고 노나 무래이"


갑자기 손에 삼천 원이란 큰돈을 쥐게 된 나는 어제의 소름은 잊고 매일매일 깻망아지를 잡아서 파는 장사꾼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소한 향내를 싣고 온


엄마가 참깨 타작을 끝내셨다며 택배로 참기름을 보내주셨다.  나는 엄마가 주시는 참기름을 얻어먹을 때마다 어린 날 내가 잡았던 깻망아지가 떠올라 몸이 으허허 하고 떨리고 지난 친정행엔 혹시나 나방으로 변하기 전의 깻망아지를 볼 수 있을까? 맘을 단디 먹고 깨밭에 들어갔지만 다행인 건지 안타까운 건지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생뚱맞게 참깨밭에 들어간 나의 목적을 아신 엄마가 전해주신 결론은 이젠 깻망아지는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젠 종자 체가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고. 그리고 동네분들이 암만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사셔도 동네 군데군데 땅을 임대한 사업가들과 임자가 바뀌어 버린 땅에선 소득을 위한 센 약품들이 기계로 뿌려져 바람을 타고 밭고랑을 넘어 수로를 타고 흘러 인근의 경작지에 타격을 주기도 해서 민원도 생기고 땅은 이미 몸살을 앓고 있다 하셨다. 그리고 내가 어릴 적 흔하게 보던 곤충들도 꽃들도 어느 순간 사라졌고 대신 축사 짚단과 계분을 따라온 외국 꽃씨들과 타 지역 식물들로 동네엔 이름 모를 꽃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고도 하셨다.




낮 구분 없이 식물을 비추는 등과 돌아가는 스프링클러, 철에 맞지 않는 벌통들로 사계절이 아닌 한 계절 속에 사는 듯이 변해 버린 나의 고향은 앞으로 어떤 변화를 더 겪게 될까?


그래도 아직까지 땅을, 삶을 일구시는 부모님 덕분에 참기름과 들기름을 얻어먹을 수 있다는 감사는 해가 갈수록 구수한 향내만큼이나 짙어져 내 맘을 울컥하게 한다.

귀뚜라미 노랫소리와 함께 찾아온 가을. 곧 들깨 수확도 다가오는데 올해는 좀 더 열심히 타작을 도와야겠다는 다짐을 해보며 좀 웃기긴 하지만 소원 같은 주문을 외우며 잠을 청해본다. 오늘밤엔 할머니와 깡통안에 들어 있던 깻망아지를 들여다 보며 놀라고 웃 그 시절 그 참깨밭으로 소환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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