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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Nov 11. 2023

야나할머니와 어둠 2

어둠을 밀어내는 빛

나에게 빛이 주어지고 오롯이 나의 전용 방이 생긴 것은 더 이상 집에서 누에를 키우지 않기로 결정을 한 결과물이었다.

부모님은 누에가 살던 방을 손보고 도배장판을 하시곤 커다란 그림자를 선물해 주던 백열등 대신 노란빛을 내주는 형광등으로 바꿔주셨는데 희한하게 형광등에선 윙~ 하는 특유의 소리가 났다. 나는 내 방이 생긴 것은 맘에 들었지만 방구석구석에 아직까지 스며 있는 뽕잎 냄새와 방 벽지 뒤에 미라가 되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누에의 까만 두 눈이 떠올라 이불을 꽁꽁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말똥말똥해지는 눈과 점점 더 밝아지는 귀 때문에 동네 어디쯤 누구네 개가 짖는지, 신작로에 몆 대의 자동차가 지나가는지 알아맞추다 잠이 들었고 얌전히 일어나는 동생들 대비  나는 밤 새 유격훈련을 끝내고 윗목에서 우두득 거리는 관절을 펴며 일어났다.   




"이 마한 것!  여태 집에 불도 안쏘놓고 절간 같이 해놓고 뭐 하나?"


안방 마루서 선잠이 들었던 나는 할머니 특유의 역정내시는 소리에 화들짝 잠이 깼다.


"할머이 다니오싰어? 내가 너무 조부루와서 쪼끔만 자고 일어난다는 기"


"이잉, 해가지고 날이 어두워지므는 집을 밝힐 궁리를 해야지 그리 게으르게 살믄 낭중에 니 애미 애비 숭먹이기 딱이여. 그리고 해지믄 내 방에 불 쏘노라고 밑번이고 지껄였는데 귀담아 안 듣고 사람 부화를 지르나?"


수돗가, 대문간, 바깥마당, 쇠죽 간, 부엌, 안방, 마루, 할머니방  그리고 내방까지  내가 깜빡 잠든 사이 동서남북 온 집안에 찾아온  어둠 마왕을 좇느라 부리나케 한 바퀴 돌고 온 나에게 할머니의 꾸지람이 아닌 마치 저주 같은 대사들이 날아왔다.


 "언제는 할머이 없을 때 방에 맘대로 드가지도  말래 놓고 또 불 안키 다고 그래 화를 내믄 뭐 어쩌라는기여"


나는 밝아진 마당 한가운데 서서 할머이 방을 바라보며 혼자 구시렁거렸다.




할머니가 어두워진 집에 들어서셨다가 나에게 저주 같은 역정을 내셨던 그때, 밤마다 내가 유격훈련을 하던 그 무렵 모기떼가 유난히도 동네를 휘젓고 다녔고 여전히 들로 산으로 도랑으로 쏘다니기에 바빴던 나의 팔다리는 모기와 벌레, 찔레풀에게 뜯겨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못난이 핫도그 같았었다.

그런데 한 날은 우리 동네 역사 이래 첨으로 방구차가 들어왔고 동네 입구에 사는 나는 텔레비전에서 봤던 방구차를 실물로 보니 가슴이 엄청 두근거렸다. 그런데 더 두근거린 것은 방구차가 뿜는 하얀 연기 냄새였는데 경운기 시동 걸 때 나는 냄새와 비슷하니 냄새가 좋았기에 나는 방구차가 매일매일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애들 말로는 이 냄새 좋아하면 회충이 있는거라고)


그런데 방구차가 온 이유가 따로 있었다. 우리 집에서 젤 가까운 도랑 건너에 살던 천 씨 아저씨네  막내아들이 갑자기 죽은 이었는데 나는 그 전날 천 씨 집안 할머니가 막내 조카를 이불에 싸서 버스에서 내리던 모습을 분명히 봤었기에 죽었다는 을 믿지 않았다. 그랬다면 죽은 시체를 안고 왔다는 것인데, 으휴 생각하기도 끔찍했다. 그리고 한 동안 어른들은 이상하리 만큼 그 죽음에 대해 쉬쉬 하시다가 결국 방구차의 등장으로 이유가 모기 때문이라는 말이 돌았고 그날부터 지겹게도 들었던 전깃불 끄라는 잔소리가 전깃불 키라는 잔소리로 바뀌어 동서남북 집을 환하게 지키는 부적같이 되었.




그 사건 때문이었을까? 한 동안 온 동네 아이들은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들어갔고 해 질 무렵이 되면 할머니도 엄마도 우리를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밝은 색 옷을 입게 하셨는데 그 이유는 천 씨네 오빠가 해 질 녘에 검은색 옷을 입고 논가에 나가 풀 씨를 낚싯대로 개구리 잡는 놀이를 하다가 모기에게 물렸는데 옷 색이 어두워 함께 놀던 형도 모기가 붙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고 하필 그 모기가 일본 뇌염모기였는데 그놈은 해질 때 만 피를 빨고 밝은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초저녁부터 집을 밝히고 싶으셨던 두려움의 이유를 알게 된 것은 내가 중학생이 되고 첫여름방학을 보내던 어느 날  모기장에 바짝 붙어 잔 탓에 밤 새 팔뚝을 모기에게 집중 공격 당해 물파스를 바르다였다.


"어제가 천 씨네 막두이 끌어 묻은 날이지 아매"


"그게 이때쯤이었나?"


"야야 니 내가 뭐 알구치 주래이? 그 막두이 죽기 전에 가가 내한테 왔다 갔잖나"


"엥? 언제? 왜? 할머이 그 오빠랑 친했어?"


"내 여지껏 아무한테도 암마또 못했는데 글씨 가가 그때 요상키도 내 꿈에 나타난기라"


"에이 할머이가 진짜 꿈꾼 건 아니고?"


"그러니 요상타 하는 기지"


"그래가꼬 꿈에서 뭐라 했는데?"


"나가 방에 들어서이 깜깜한데 가가 저짝 농짝문 구석에 쪼그리고 눈을 껌뻑이고 앉아있는기라. 그래 내가 니 여까지 뭔 일이냐고 이래 오라고 손짓을 하이 내 옆에 와 앉길래 전굿불을 킸지.  근데 아 얼굴이 을매나 하얗고 파리한지 물에서 막 껀지논거 같드라고. 그래서 꽈자 주래? 하고 보이 대답도 않고 방을 나가두만  을매 안 있다 그래 됐잖나"


"그럼 뭐여? 할머니가 예지몽을 꾼 거여? 아님 이뻐해 줘서 고마웠다고 인사라도 하러 왔나?"


"저짝 저 농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기 꼭 니 삼춘 클 때 같은기 아직도 눈에 아른기리. 죽은 아만 불쌍치. 으이그 모개이 뜯기지 않게 모기향 자래니 팔뚝을 매린도없이 해놨네"


"아 갑자기 생각난 건데 할머이. 천 씨네 오빠 죽었을 때 할머이 방에 불 안 켜놨다고 나 후달군적 있었지? 왜 해도 지기 전에 방에 불 켜노라하고. 그럼 그때 꿈 때매 무서워서 그랬던 거여?"


"후달구긴 누가. 다 이자삐고 생각 안 나"



       

해마다 여름이 되면 나에게선 어디 불국사나 화엄사에서나 날 것 같은 냄새가 났는데 그것은 뺑뺑 미로같이 생긴 초록색 모기향이었다. 어른들의 불안함을 위로할 수 있다면 내 기꺼이 냄새를  풍겨도 괜찮다 했었지만 중학교 첫여름방학의 한 날 자고 일어났는데 온 방바닥에 시커먼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고 머리카락의 구불렁 거림과 길이로 봐선 누가 봐도 내 머리카락이었다. 텔레비전에서나 책에서 보던 머리가 쑥쑥 빠져버리는 불치병 소녀가 되었다는 절망감에 나는 울기 시작했고 아침밥을 짓다 말고 나의 울음소리에 달려온 엄마는 떨어진 머리카락과 내 머리를 구석구석 살펴보시곤 등짝 스매싱을 날리고 화를 내시곤 나가셨다.

씨게 등짝을 맞은 나는 눈물이 더 났지만 아픈만큼 당황했던 것은 나의 머리카락을 댕강 댕강 끊어 놓은 것은 어젯밤 어둠 속에서 유격 훈련을 한 나를 쓰다듬어 준 모깃불이었고 이 소란을 참관하신 할머니는 머리에 불 안 붙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혀를 차셨다.




정전으로 만난 캠핑 등

이제는 잔류전기가 흐르지도 않고, 전깃불도 자동으로 켰다 껐다에 벼락 맞아 집에 불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정전이 언제 해제될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나.

어쩌다 겪는 정전에 꺼진 컴퓨터를 보며 내가 전기의 노예일까? 컴퓨터의 노예일까?고민을 해봤다. 


어린 자식들을 산에 묻으셔야 했던 할머니의 삶.

그리고 꿈에 먼저 다녀 간 이웃집 아이와의 이별.

일본자가 붙은 작지만 강력한 모기 한 마리가 주는 공포와 자식 내외와 어린 손주들에 한 걱정.

그렇게 자연이 주는 어둠과 마음을 삼킨 어둠을 희미한 백열등 하나에 위로 받고 사신 할머니 삶이 가여워 눈물이 난다.


아파트 정전이 가져다 준 이런저런 생각과

아파트 정전이 만들어 준 앞동 주민과의 휴대폰 손전등 에피소드까지, 오늘도 내 삶의 한 페이지는 할머니와의 천연색 기억들과 현재의 알록달록한 색들로 채워지고 있음에 감사한 오늘이다.


이 와중에 든 엉뚱한 생각.

아 그때 우리 할머이한테 LED등이 있었더라면...

(피식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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