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먹을 때 절대 맛있다고도 하지 않고 맛없다고도 하지 않는 남편에게서 나온 맛있다는 표현. 친정엄마의 솜씨는 늘 일등이다.
"우리 동네선 이거 고들빼기라고 안 하고 씬나물이라고 했는데"
"맞어, 나 결혼해서 어머니가 씬나물, 묵나물 얘기하셨을 때도못 알아듣고 엄청 헤맸잖아. 이거 우리 동네선 고들빼기 아니고 꼬들빼기라고 불렀어"
"근데 당신은 오징어랑 뿌리만 먹더라. 앞은 안 먹고"
"나는 잎보다는 뿌리가 좋아"
쌉쌀하면서도 은근 중독성이 있는 고들빼기나물은 나의 어린 시절 겨울밥상에 빼놓을 수 없는 반찬이었다. 맘만 먹으면 산기슭, 밭고랑, 밭이며 길가까지 지천에 있는 것이 고들빼기였고 오히려 냉이보다 찾는 게 더 쉬웠기에고들빼기를 캐서 다듬고 가지런히 묶은 뒤 장에다 내다 파셨던 할머니를 따라 지천을 쏘다녔는데, 손에 묻는 하얗고 끈끈한 액체 때문에 할머니 손처럼 까맣게 물이 들기도 했다.
"할머이 이건 왜 안 묶고 쌂아?"
"왜긴 반찬해 물라 그라지"
"꼬들빼기가 맛있어?"
"맛있다 말고. 꼬들삐 무쳐 무믄 소화도 잘 되고 골도 안 아프고 잠도 잘 오지"
"잉 이게 무슨 산삼이야"
"산삼보다도 더 좋지. 느 하래비도 이거 마이 무서 오래 살았잖나"
어릴 적부터 길들여진 입맛 때문일까?
나는 여전히 고들빼기를 좋아하는데 잎 부분은 먹지 않고 뿌리만 먹는다. 그렇게 골라 먹는 나를 보며 남편은 불량어른이라고 식습관 교육부터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핀잔을 주는데 생각해 보니 어릴 적 나는 뿌리를 먹고 이가 좋지 않으셨던 할머니가 잎 부분을 드셔서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고들빼기 편식을 했던 것 같다.
봄이 오고 있는 요즘 마트를 갈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처음엔 달래가 보였고,
그다음엔 냉이가 보였고,
돌나물이 보이더니
이번엔 쑥이랑 머위잎이 나와 있었다.
갈 때마다 새롭게 맞아주는 반가운 봄의 전령사들.
나물을 친구 삼아 평생을 사셨던 할머니 덕분에 파릇파릇 돋아난 연한 나물을 만나고 먹을 수 있는
이 봄이 나는 참 좋다.
갓 지은 뜨거운 흑미밥에 맛있는 양념으로 버무려진 알싸한 꼬들빼기를 얹어 먹는 맛은일터에서 떨구지 못하고 집 안까지 끌고 온시름도 어느새 사라진다. 나는 여전히 뿌리만 집어다 먹는 편식쟁이고,밥을 한 공기만 먹으려고 했지만두 공기나 먹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