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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Apr 13. 2024

야나할머니와 꼬들빼기나물

꼬들빼기까지 편식을 하다니

저녁 식탁에 친정 엄마가 김장 때 보내주신 고들빼기 반찬을 담아내었다.


"고들빼기네 맛있겠다. 옆에 보이는 거는 오징어야?"


"응 엄마가 올해도 마른오징어를 느싰어"


"음~ 맛있네"


음식을 먹을 때 절대 맛있다고도 하지 않고 맛없다고도 하지 않는 남편에게서 나온 맛있다는 표현. 친정엄마의 솜씨는 늘 일등이다.


"우리 동네선 이거 고들빼기라고 안 하고 씬나물이라고 했는데"


"맞어, 나 결혼해서 어머니가 씬나물, 묵나물 얘기하셨을 때도 못 알아듣고 엄청 헤맸잖아. 이거 우리 동네선 고들빼기 아니고 꼬들빼기라고 불렀어"


"근데 당신은 오징어랑 뿌리만 먹더라. 앞은 안 먹고"


"나는 잎보다는 뿌리가 좋아"




쌉쌀하면서도 은근 중독성이 있는 고들빼기나물은 나의 어린 시절 겨울밥상에 빼놓을 수 없는 반찬이었다. 맘만 먹으면 산기슭, 밭고랑, 밭이며 길가까지 지천에 있는 것이 고들빼기였고 오히려 냉이보다 찾는 게 더 쉬웠기에 고들빼기를 캐서 다듬고 가지런히 묶은 뒤 장에다 내다 파셨던 할머니를 따라 지천을 쏘다녔는데, 손에 묻는 하얗고 끈끈한 액체 때문에 할머니 손처럼 까맣게 물이 들기도 했다.


"할머이 이건 왜 안 묶고 쌂아?"


"왜긴 반찬해 물라 그라지"


"꼬들빼기가 맛있어?"


"맛있다 말고. 꼬들삐 무쳐 무믄 소화도 잘 되고 골도 안 아프고 잠도 잘 오지"


"잉 이게 무슨 산삼이야"


"산삼보다도 더 좋지. 느 하래도 이거 마이 무서 오래 살았잖나"




어릴 적부터 길들여진 입맛 때문일까?

나는 여전히 고들빼기를 좋아하는데 잎 부분은 먹지 않고 뿌리만 먹는다. 그렇게 골라 먹는 나를 보며 남편은 불량어른이라고 식습관 교육부터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핀잔을 주는데 생각해 보니 어릴 적 나는 뿌리를 먹고 이가 좋지 않으셨던 할머니가 잎 부분을 드셔서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고들빼기 편식을 했던 것 같다.


봄이 오고 있는 요즘 마트를 갈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처음엔 달래가 보였고, 

그다음엔 냉이가 보였고,

돌나물이 보이더니

이번엔 쑥이랑 머위잎이 나와 있었다.

갈 때마다 새롭게 맞아주는 반가운 봄의 전령사들.

나물을 친구 삼아 평생을 사셨던 할머니 덕분에 파릇파릇 돋아난 연한 나물을 만나고 먹을 수 있는

이 봄이 나는 참 좋다.




갓 지은 뜨거운 흑미밥에 맛있는 양념으로 버무려진 알싸한 들빼기를 얹어 먹는 맛은 일터에서 떨구지 못하고 집 안까지 끌고 온 시름도 어느새 사라진다. 나는 여전히 뿌리만 집어다 먹는 편식쟁이고, 밥을 한 공기만 먹으려고 했지만 두 공기나 먹었다. ^^ 


할머니처럼,

할머니같이,

나물을 찾아 먹는 나는 흰머리가 느는 만큼 점점 더 할머니를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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