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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Sep 21. 2024

야나할머니와 미미

매미야 미안하데이

귀가 찢어질 듯한 매미소리와 파란 하늘.

어린 시절 마당 구석에 장승처럼 서 있는 나무 그늘 아래 펼쳐진 넓적한 들마루 위에 누워 나뭇가지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구석구석에 하얀 배를 감춘 매미가 죽어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저기도 한 마리 있고, 저기도 한 마리 있고"


들마루 위에 대자로 누워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나뭇가지를 가리키는 할머니가 나를 보고


"용하기도. 눈이 그리 밝으이 미미가 다 붙들리지"


"할머이 또 미미래. 매미라니깐 매미. 파리는 포리라고 하고 할머이 너무 웃겨"


그리곤 무섭게 벌떡 일어나는 나를 보고 할머니가 물으셨다.


" 와 번쩍 인나나?"


"매미가 너무 시꾸루와서 잡을라고"


"가도 노래하고 노느라 그라는긴데, 저 매미통에 골백 마리도 더 들어앉았네. 오늘은 고만 잡으래이"


"안돼 할머이. 누렁이도 줘야 하고 애나도 줘야 하고 그리고 오소리네도 줘야 해. 오소리 새끼들이 매미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나는 할머니 말을 듣지 않고 열심히 노래하는 매미들을 죄다 잡아 매미통에 가두었다. 그리고 집안에 있는 동물들에게 간식으로 주었고, 특히나 발톱이 사나운 오소리 삼 형제에겐 더 후하게 인심을 썼다.




"ㅇㅇ아, ㅇㅇ아"


"어 여보 잠깐만"


남편은 평소엔 똥색시라고 부르다가 긴급한 상황이 생기거나 본인 맘이 급해지면 내 이름을 부른다. 오늘도 여지없이 나란히 걷다가 딴 길로 샌 나를 보고 이름을 부르다 체념한 듯 몸을 반쯤 돌리고 먼 하늘을 보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길을 걷다 달궈진 시멘트 바닥에 누워 일광욕을 하고 있는 매미를 발견하곤 걸음을 멈춰 두 손에 담아 멀리 떨어져 있는 큰 나무까지 뛰었다. 그리고 암만 나무껍질에 붙여 주려  다리에 기운 없는 매미는 자꾸 미끄러졌, 나는 기운 좀 내 보라고, 조금 더 노래하다 가라고 사정하며 간신히 나무에 붙여 놓았다.


"ㅇㅇ아 안 오면 나 먼저 간다."


남편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기 전에 얼른 냅다 뛰어 좇아갔다.


"그런다고 매미가 살겠어?"


"혹시 모르지. 좀 더 살지도. 죽을 때 죽더라도 뜨거운 데서 죽는 거 보단 낫잖아"


"그건 당신 생각이고. 매미 생각은 모르잖아"


"그런가? 아니야 매미도 시원한 게 좋을 거야"


"그건 모르지"


"지금껏 내가 잡아 없앤 매미들에 대한 일종의 사죄 행위였어. 하루라도 더 살다 가라는 응원이기도 하고"


"그 사죄와 응원을 왜 오늘 하냐고. 너를 기다리느라 땀나는 나는 안 보이고?"


"에이 우린 운동하러 나왔으니 당연히 땀은 흘려야지. 내가 뭐 시원한 거 사줄까? 자 뭐든 말만 해"


남편의 옆에서 강아지처럼 쫄랑거리던 나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매미가 있는 나무를 돌아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미미 좀 고만 잡으래이"


"하하하 또 미미래. 근데 할머이 왜 잡지 마?"


"가가 땅구녕서 을매나 오래 있다가 기나와 껍디 벗꼬 노래하는 안데 나무에 붙기 무섭게 그래 홀랑홀랑 잡아삐믄 노래는 누가 하나?"


"에이 할머이도 매미가 을매나 많은데. 노래는 다른 매미가 하겠지"


"개도 고녜이도 쌩거 너무 마이 미기믄 탈 나. 고만 미기"


나는 할머니 말이 이해하 못했기에 할머니 눈을 피해 누렁이와 애나와 오소리 삼 형제의 입에 매미를 잽싸게 넣어 주었지만 할머니는 셨을 것이다. 누렁이 밥그릇 옆에 펄렁거리며 날리던 매미들의 투명 날개들을.




더워지는 기온과 함께 언제부턴가 들리기 시작한 참매미 소리가 마치 여름을 데려온 것 같아 반가웠다.

어린 날 나의 심장을 들끓게 했던 매미소리에 지금도 이렇게 심장 떨린다는 사실에 '나는 뼛속까지 수렵과 채집의 유전자소인이 남아 있구나'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그리고 밤 새 매미가 우는 여름밤.

시간 개념도 없이 우는 매미 때문에 밤잠을 설쳐 맘 같아선 화단의 느티나무를 거세게 흔들어 매미를 좇고 싶었지만 금세 맘을 접었다. 꿈적도 하지 않을 느티나무에다 밤새도록 너무도 환한 가로등 때문에 매미도 어쩔 수 없이 울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에 나와 함께 불면증을 겪고 있는 매미들이 가엾게 느껴졌다.


급했스숑

점점 더 가열차게 우는 매미소리를 들으며 또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어린 시절로 날아갔다. 나무 그늘 밑 들마루에 걱정 없이 철 모르고 누워 있던 나, 할머니의 들락거리던 틀니를 지키고 있던 유난히도 쪼글거렸던 입술과 인중, 할머니의 손 때로 반질반질하던 부지깽이, 아궁이에 붙어 급하게 탈피를 했던 매미, 가로등도 없고 불빛이라곤 뿌옇고 잔잔한 백열등이 전부였던 그 시절의 매미 소리는 밤엔 절대 들을 수 없었는데 이젠 밤에도 이렇게 들을 수 있으니 불면의 밤도 즐겨야 하는 거 아닌지...




곧 뜨건 바람 속에 수줍은 찬바람이 숨바꼭질하며 올 테고 매미와 바통 터치할 풀벌레와 귀뚜라미도 찾아올 테니 부지런히 매미소리를 들어 둬야겠다. 그리고 눈 밝고 잽쌌던 나의 매미채에 죽음을 당한 수많은 매미와 잠자리들 방아깨비와 메뚜기들에게 늦은 사죄의 말을 전한다.

얘들아 고맙고 미안했어. 특히나 매미야 미안해. 미안하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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