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네 빨랫줄

by 별바라기

희끗희끗 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마스크 위로 보이는 잔뜩 긴장한 눈으로 입대를 했던 큰아이가 첫 휴가를 마치고 어제 복귀를 했다. 남편과 나는 휴가를 쓰고 아이와 밀착 하루를 보냈고, 20시 부대 버스 탑승장 근처까지 친히 모시고 갔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꿋꿋하게 걸아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아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다시 세 시간 남짓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어두워진 하늘은 차창에 또 부슬부슬 비를 뿌리고, 먼저 아들의 군 복무를 겪었던 이웃의 언니가 말했던 '첫 외박이나 면회는 아들을 다시 입대시키는 드러운 기분이 든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실감하며 눈물이 차 올랐지만 군대는 아들이 갔는데 내가 입대를 당한 것 마냥 울적해하면 안 될 것 같아 남편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눈물이 사그러 들 때까지 고개를 돌려 어두운 창 밖만 내다보았다.


새 날이 밝았다. 새가 우는 소리에 눈이 떠져 시계를 보니 5시 30분. 날이 흐린 탓에 밖은 아직 어두운 것 같고, 아들은 밤 새 잘 잤으려나? 답도 오지 않는 질문을 던지며 남편에게 말했다.

설마 욕조가 깨지기야 하겠어

"우리 뛰러 갈까?"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몸을 혹사하는 버릇이 있다. 이런 나를 보고 남편은 참 극과 극을 달린다며 그냥 중간 정도만 하고 살면 안 되겠냐고 걱정의 말을 건네지만 나는 들은 척도 않고 오늘도 고집을 부렸다.


공원 트랙을 몇 바퀴 돌고 오니 머릿속도 몸도 한결 개운해진 것 같았다. 한껏 상쾌해진 기분으로 귀가한 나는 아들의 빈방으로 갔는데 이 녀석은 참 초지일관이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각을 잡아 놓고 퇴실하셨다. 한동안 울리지 않았던 피아노도 아들의 휴가 덕분에 거미줄을 걷어냈는데 흰 눈 내리기 전엔 다신 울릴 일이 없을 것 같고, 각 잡힌 이불을 주섬주섬 걷어 세탁실로 가지고 가려다 방향을 틀어 화장실로 향했다.


"이불을 직접 빨려고?"


예상치 않았던 방향으로 향하는 나를 본 남편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또 그러다 병난다"


"괜찮아 이 정도야 뭘"


나는 욕조에 물을 받고 이불을 담가 씩씩하게 밟기 시작했다.




"야야 누가 있나? 또랑에 안 갈래?"


할머니 목소리에 마당으로 나가니 리어카에 커다란 고무 다라와 이불들이 쌓여 싣겨 있었다.


"할머이 왜 갑자기 이불을 빨라고?"


"오늘 삧이 좋아 금방 마를 날이여"


나는 장맛비가 내린 뒤 깨끗해진 앞 도랑에서 물놀이를 해도 좋을 것 같아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푹푹 치대래이 그라믄 때가 쑥쑥 빠질 거여"


할머니 말대로 고무 다라에 가루 세제를 풀고 몇 번 밟지도 않았는데 시커먼 물이 배어 나왔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흙탕물이 무섭게 내려갔던 도랑은 장맛비 덕분에 청소는 물론 울퉁불퉁한 바닥 정비까지 한 번에 해결되었다. 송사리를 잡을 때 방해하던 청태도 물뱀이 나올까 무섭던 물풀들도 쓸려갔고, 내가 수영을 하려고 막아둔 보도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꼭 누가 일부러 주문한 것 마냥 윗마을에서 떠내려온 돌들이 개울의 불편했던 구덩이 구덩이들을 메꿔 놓은 덕분에 평평한 바닥과 적당한 수심은 시원한 돗자리를 깔아놓은 것 같이 맨발과 종아리를 간질여 주었다.


동생과 내가 열심히 밟은 이불을 고무 다라에서 꺼낸 할머니는 이불 한 개를 똘똘똘 말으시더니 럭비공을 던 지 듯 멀찌감치 던지셨다. 그러면 동그랗게 말려 있다가 풀린 이불은 커다란 손수건처럼 미끄럼을 타듯 떠내려오고 우리의 발목에 와서 걸리면 동생과 나는 양쪽 끝을 붙들고 물에 이불 잠수를 시켰고 도랑물은 이불을 빼앗아 가려고 심술을, 그 덕분에 이불에 붙어 있던 비눗물들이 물장구를 치며 달아났다.


"야야 고만 헹궈도 된대이"


할머니 목소리에 이불을 건네면 할머니는 미리 깨끗하게 씻어 놓은 넙덕한 돌덩이 위에 이불을 차곡차곡 쌓아 두셨는데 이불에서 또르륵 또르륵 떨어지는 동그란 물방울들이 진주알 같이 반짝였고, 물기가 빠지기를 기다리던 우리는 고무 다라를 배처럼 타고 놀려고 했지만 얕아진 물은 나와 동생을 떠오르게 할 힘이 부족했다.


"다음에 보를 막아서 물이 깊어지면 그때 태워줄게. 대신 가재가 있나 찾아볼래?"


나는 동생을 데리고 도랑으로 연결된 계곡에 가재를 찾으러 갔고 기대에 찬 동생은 빈 바가지를 들고 따라왔으나 암만 돌멩이를 들춰보아도 가재는 보이지 않았다.


"비가 많이 와서 가재가 전부 깊숙한데 숨었나 봐, 다음에 다시 오자"


실망한 동생을 위로하는 그때


"야야 고만 가자. 언능 내려 온나"


우리들의 등 뒤로 할머니 목소리가 날아왔다.


내방과 할머니 방 방향으로 마당을 가로질러 메어있는 긴 빨랫줄을 지탱하던 커다란 장대를 내렸다. 마당에서 가장 높은 키를 자랑하던 장대는 잠자리들이 서로 앉으려고 경쟁을 하던 일등석이었고, 장대를 차지한 잠자리는 편히 쉬어도 될 텐데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꼬리를 바짝 세운 불편한 자세로 왕좌를 지키고 있고 그 곁에 남아 있던 왕좌를 차지하지 못한 잠자리들은 빨랫줄에서 마치 외줄 타기를 하 듯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앉아 있었다.


장대를 내리니 빨랫줄에 앉아 있던 잠자리들이 놀라 일제히 마당 위로 날아올랐고 빨랫줄은 '훅'하고 키가 작아졌다. 할머니는 수월하게 이불을 널고 장대를 다시 세우고 이불에서 떨어지는 동그란 물방울들이 흙마당에 규칙적으로 '똑 똑 똑' 동그란 도장을 찍으며 떨어졌다. 그러다가 도장 자국이 햇살에 묻혀 잠이 들면 이불도 바람이 청한 댄스타임을 거절하지 못하고 살랑살랑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언니야 심심해 우리 모하고 노까?"


마루에서 선풍기가 회전하는 방향을 따라 뒹굴뒹굴 따라 구르던 동생이 말했다.


"우리 기차 노리 할래?"


"우리 둘 뿐인데 기차 노리를 어떻게 해?"


"다 방법이 있지 이리 와봐"


내가 동생을 데리고 간 기차 노리는 마당에 널려 있던 이불들이었다.


"손님 어디까지 가세요?"


"네 부산까지 갑니다."


"차비 주세요"


"얼마예요?"


"오백 원입니다."


빨랫줄 가장 구석에 접혀 널려 있던 이불을 열어 동생을 승차시키자 동생은 이불과 이불 사이를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


노래를 부르며 부산에 도착했고 저쪽 끝에 도착한 동생이 이번엔 차장이 되어 내게 묻는다.


"손님 어디까지 가세요?"


"네 저는 서울까지 갑니다."


"네 오백 원입니다."


나는 동생이 차비를 받으려 펼친 손바닥을 힘껏 쳐주고 기차 굴로 들어갔다.


"이 마한 것들, 이불 다 마르기도 전에 땟꾸정물 도로 묻히놓네"


"할머이 우리 땀 안 나는데"


기차 굴 속에서 왔다 갔다를 반복하던 내가 말했다.

"거짓뿌렁 하는 것 좀 보래이, 언능 나와"


"네"


동생은 부산에서 나는 서울에서 돌아왔다.


"우와 마당이 엄청 시원해"


기차 굴에서 탈출한 동생은 빨개진 얼굴로 마당이 시원하다 감탄을 하는데 머리 감은 사람 마냥 머리카락이 흠뻑 젖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이 마한 것들, 이 삼복더위에 널어논 이불속엔 왜 들어가?"


할머니는 목에 걸고 계시던 수건으로 동생의 얼굴과 이마를 쓱쓱 닦아 주셨다.




아들의 가방, 사자를 인디언이라고 나는 우겼다.

이불을 밟을 땐 몰랐는데 헹구려니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트랙을 뛰어 땀구멍을 열어 논 것도 한 몫했겠지만 뛸 때 보다 더 많은 땀이 이마로 흘러내렸고 잽싼 녀석들이 눈을 공격한 탓에 따가움을 줄여보고자 연신 세수를 해가며 이불을 밟았다. 땀이 물인지 물이 땀인지 구분도 안 되는 나의 얼굴은 어린 시절 부산에 가려고 기차 굴에 들어갔던 동생 모습 같았다.


물을 받아 이불을 헹구는데 비눗물이 끝도 없이 나온다. 도대체 이 비눗물은 언제까지 없애야 하는 것인지, 과한 의욕을 감당하지 못하는 나의 무릎 관절과 척추를 새삼 의식하며 다시는 이런 똥고집을 부리지 말아야겠다는 뼈저린 후회와 그나마 겨울 이불이 아닌 것에 감사하며 지쳐가는 나를 위로했다.

이불을 밟으며 발가락 사이를 지나다니는 간지러운 물의 느낌에 나는 어린날 손쉽게 비눗물을 데리고 가 주었던 그 맑은 도랑물과 할머니와 동생과의 추억이 떠오르고, 오늘, 지금, 내가, 써서 버리는 물이 세탁기 여사님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이라는 확실한 답까지 얻고서 간신히 이불 빨래를 끝냈다.


나는 소파에 철퍼덕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무리한다 싶더니. 이제 소파 OOO여사 되셔서 낼까지 꿈쩍도 안 하겠네".


휙 하고 고개를 돌려 남편을 노려보니


"뭔진 모르지만 무조건 반사"


라는 남편의 말. 다행이다. 진심으로 마음의 소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으로 레이저만 쏘았을 뿐.


오늘 아침 10시 30분 무렵 가족 톡방에 아들의 톡이 올라왔다. 왜 이렇게 연락이 늦었냐고 물으니 어제 복귀하자마자 밤 근무를 서고 아침에 늦은 기상과 곧 브런치를 먹을 거란 대답이 왔다.


"너는 브런치를 먹고, 나는 브런치를 쓰고"


"ㅋㅋㅋㅋ"


아들에게서 날아온 짧지만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는 웃음 대답.

아들! 잠시나마 체험했던 민간인 생활을 잊고 어여 군 생활에 다시 적응되길 바라.

그리고 니 이불 잘 빨아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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