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와 깡통 종

by 별바라기

"이 마한 노므 시(새) 시끼들이 강내이 다 파 묵네"


내일로 다가온 옥수수 출하를 앞두고 우리 식구들은 다들 긴장으로 대기 중이었다.


"야야 누가 깐스메좀 흔들래이"


"네에"


연이어 들려온 할머니의 목소리에 나는 대문에 걸쳐져 있는 깡통 종 줄을 힘껏 잡아당겼다.


'꽈작 쾅, 탱, 띵~ '


뭔가 청아하고 쌈빡한 그런 소리가 나면 좋겠지만 그냥 뭔가 복잡하고 시끄럽지만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올해 아버지는 집에서 가장 가깝고 토질이 좋은 땅에 옥수수를 심으셨다.

본디 옥수수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서 매해 집에서 가장 먼, 산을 일군 돌밭에다 심으셨는데, 올해는 수확과 수월한 출하를 고려하신 끝에 집 앞에 있는 밭에 옥수수 파종을 하셨다. 이 옥수수가 심기고 싹이 나기 까지도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는지, 어린 시절 나는 그냥 옥수수를 안 팔고 안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했었었다. 내가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한몫했겠지만 온 동네 새들과 쥐들과 전쟁을 해야 하는 건 정말 너무너무 귀찮고 화가 나는 일이었다.


"야야 새벽에 나가보니 시(새)하고 꽁(꿩)이 강내이 밭을 다 헤집어 놨대이"


일찍 일어나셔서 밭을 먼저 둘러보신 할머니가 아빠한테 건네는 말이 들려왔다.


"콩이나 강내이에 농약을 묻히서 밭가에 놔두믄 시(새) 시끼들이 묵고 죽을라나?"


"어머이 거 일 키우지 말고 가마이 있으요. 괜히 남의 집 닭 잡지 말고"


아빠의 걱정스러운 말에 할머니는 아무 말씀하지 않으셨다.


동네에선 종종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가해자는 드러나지 않고 엄한 피해자만 발생한 사건에 막연한 누군가를 탓하는 욕지거리 소리가 들리곤 했다. 어른들은 농작물에 저지레를 하는 쥐나 새를 잡기 위해 약을 친 미끼로 유혹했는데, 엉뚱하게도 목적을 빗나가 집에서 기르던 개나 고양이 닭들이 미끼를 낼름 주워 먹고 명을 달리 하는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남의 집 마당에 들어선, 담벼락을 넘어간 유혹의 끝이 좋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개나 고양이는 죽을힘을 다해 집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그 금방 끊어지지도 않는 숨 줄을 붙잡고 살려달라 애원하는 눈빛을 바라보며 숨지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때는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어른들은 약을 먹은 동물이라 만지지도 못하게 하셔서 그냥 멀찌감치서 울기만 했었다. 한 번은 몇 날 며칠을 돌아오지 않는 닭을 찾아 장대를 들고 풀숲을 뒤지고 다녔는데 언제 죽은 건지 추측도 안되게 뼈와 털만 남아 있은 적도 있었다.


아무리 농작물을 지키려는 욕심이 있어도 약이 묻은 뭔가를 놓는다는 건 이웃의 정에도 금이 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어른들은 또다시 대안법으로 쥐덫을 놓았는데 하필이면 숨바꼭질을 하던 아이들의 신발을 덥석 물어 기함을 한 사건에 우리는 담벼락에 숨는 숨바꼭질 놀이를 멈춰야 했고, 쥐 끈끈이에 붙으라 기대했던 쥐 대신 새끼 다람쥐나 아기새가 붙어서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악몽으로 남아 있는 우리 나비가 죽던 그날은 아직도 눈물이 난다.


할머니가 장에서 사 오신, 온몸이 까맣고 얼굴에만 하얀 점이 있었던 고양이 나비는 소화가 되지 않은 멸치를 토하고 죽었는데, 할머니의 말씀으론 너무 많이 돌아다니는 짐승들 때문에 성가신 누군가가 멸치를 놓았을 거라고,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기 때문에 '그저 나비 명이 그 정도였구나' 하고 우리에게 잊으라고만 하셨다. 나비가 죽어가는 모든 과정과 식어가던 체온을 느꼈던 나는 냉동실에서 나온 것 같이 딱딱하게 굳어 무거워진 나비를 안 입는 옷에 싸서 뒷동산 느티나무 아래에 묻어 주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창고에서 합판 조각을 두 개 꺼내와 나무 십자가를 만들고 연필로 '나비야 잘 가'라고 적었었다. 그날 밤 꿈에서도 울면서 잤는지 아침에 일어나니 베개가 흠뻑 젖어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보다도 훨씬 더 눈물이 나고 가슴 아팠던 아홉 살 이별이었다.


새들은 봄이 되면 희한하게 씨앗 파종하는 것을 안다. 지금은 공장에서 공급되는 보드란 거름흙을 담아 포트에 씨앗을 뿌려 적당한 크기로 자란 모종을 심지만, 어릴 적엔 씨앗을 밭에 직접 파종하는 농사법이 보편적이었다. 그래서 그 씨앗이 땅속에서 촉을 틔우고 싹이 자라 땅 위로 고개를 내밀기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여러 날들을 기다리는 건 농부만이 아닌 동네 약아빠진 텃새들이었다. 똑똑한 새들은 고이고이 심어 놓은 씨앗이 밤새 이슬을 먹고 통통해지고 싹이 나려고 하는 그때 부리로, 발톱으로 땅을 헤집어 쏙쏙 골라먹었고, 또 어린싹이 올라오면 눈치 없는 닭들과 때로는 산에서 내려온 고라니가 와작와작 뜯어먹어 어른들의 부화 지수를 높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별미로 드시던 간식은 '황도 깐스메'였다. 이가 좋지 않으시고 식사를 잘하시지 못했던 할아버지는 그 통조림과 국물을 드셨는데, 그 시절 그 국물 한 숟갈도 얻어먹지 못했던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황도 통조림'이라고 생각했었다. 주무시는 할아버지 몰래 깡통 한 개를 훔쳐 나와 먹고 싶은 갈등을 여러 번 했었지만,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나의 능력으론 절대 뚜껑을 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뚜껑은 항상 아버지 몫이었는데 아버지 등 너머로 보이는 반만 잘라져 있는 황금빛 복숭아를 보면서 나는 비릿한 깡통 냄새와 눈으로만 맛을 상상했다.


집으로 사 들여지는 황도 통조림이 늘어나면서 아버지는 그 깡통을 물에 한번 '훅'하고 헹구셔서 할아버지 방문 옆 창고 가마니 안에 차곡차곡 모으셨다.


"아빠 이거 모할라고?"


"내년에 옥수수 밭에 달아맬거여"


"그럼 나도 길에서 깡통 보믄 가꼬오까?"


"너무 녹슨 거 말고 깨끗한 거 있음 주워와"


그 뒤 나는 가겟방 앞이나 학교 쓰레기장에서 황금을 캐러 다니는 사람처럼 깡통을 찾으려고 눈을 크게 뜨고 다녔고, 덕분에 우리 집 가마니는 점점 더 배가 불러왔다.


'땡땡땡땡, 땡땡땡땡'


아빠는 오늘 아침부터 못과 망치로 깡통에 구멍을 내고 계신다.


"아빠 여기다 왜 빵꾸를 내? 뭘 넣을라고?"


"여기에 구멍을 내서 줄을 달아메고 돌멩이를 넣어서 옥수수밭에 새 쫓는 종으로 쓸거여"


"그런데 힘들게 구멍은 왜 내?"


"구멍은 소리도 크게 나고 빗물 빠지라고"


아빠는 시험 삼아 줄에 꿴 깡통들에 작은 조약돌을 몇 개 담고 흔들어 보시더니 흡족한 표정을 지으셨다.


옥수수가 동생 키 만하게 크고, 내 키만큼 크자 아빠는 옥수수 밭 구석구석에 아빠 키보다 훨씬 큰 지줏대를 꽤 많이 세우셨다. 그리고 돌멩이를 담은 깡통들을 세 개씩 짝을 지어 성탄절 종처럼 달아 매셨고, 첫 줄에 있는 줄을 힘껏 잡아당기면 깡통들과 깡통들이 부딪히는 소리, 깡통 속에 있는 돌멩이들이 나뒹구는 소리들이 울려 퍼졌고, 밭까지 가는 수고로움을 줄이고자 긴 줄을 대문까지 이어놓은 덕분에 대문에서 줄을 잡아당기면 밭에서 깡통들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점점 알알이 실해진 옥수수를 정신없이 파 먹던 새떼들과 쥐들이 놀라서 후다닥 전선 위로 뽕나무로 날아올랐고, 가끔씩 '툭'하고 튀어나오는 쥐들 때문에 우리도 덩달아 놀라 소리를 질렀었다.


나는 학교에 가면서 깡통 줄을 한 번, 학교에 다녀오면서 한 번, 친구네 집에 가다가 한 번, 그렇게 옥수수 밭을 지날 때나 일부러 가서 수시로 깡통 소리를 냈는데, 너무 자주 울리는 깡통 소리 때문에 새들이 금방 적응이 된 것일까? 삼십 마리 날아오를 녀석들이 열 마리 날아오르고, 열 마리 날아오를 것이 세 마리 날아오르고, 정말 진정한 새가슴인 새들만 나의 기대에 응해주었고 새들이 날아오르지 않자 나의 열의와 사기는 시들해졌다.

"새가 밥을 먹는 시간이 있어 그때 쫓아야지"


여름방학 내내 깡통만 흔들어대는 내게 아빠가 말씀하셨다.


어느 날 깡통을 흔들러 갔던 그때 옥수수 밭 앞에 차가 한대 서더니 아저씨 한분이 내리셔서 성큼성큼 걸어가 옥수수 한통을 '뚝'하고 꺾으시곤 껍질을 벗겨 알갱이를 살펴보고 계셨다.


"아저씨는 누군데 남의 밭에 옥수수를 막 꺾어요?"


나는 아저씨에게 따지듯 물었다.


"나? 나는 이 밭에 옥수수를 산 사람이지"


옥수수가 꽃이 피고 지고 파리와 벌들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리면 신기하게 노란색과 분홍색 머리카락으로 염색한 옥수수 통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옥수수는 점점 살이 통통하게 쪘고 머리카락도 갈색으로 변해갔다. 그러면 암행어사처럼 옥수수 장사꾼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맘에 드는 밭을 골라 농부와 밭떼기 흥정이 성사되면 옥수수 주인은 바뀌고 새 옥수수 주인은 본인의 입맛에 맞게 구성된 전문적인 일꾼들로 꾸려진 팀을 데리고 동트기 전부터 옥수수 꺾는 작업을 시작하는데 대형 검과 같이 날카로운 옥수수 잎 때문에 일꾼들은 미라처럼 꽁꽁 싸매고 작업을 해야 다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사이 우리 옥수수는 저 아저씨의 소유가 되었나 보다. 그리고 우리는 출하를 앞둔 옥수수를 마지막 날까지 잘 돌봐야 한다는 책임을 가지고 오늘도 온갖 소리를 내는 깡통 종을 열심히 흔들어 대며 옥수수를 훔쳐가려는 악의 무리들과 대치하고 있었지만, 아예 작정하고 매달려 알을 빼먹는 쥐와 새를 잡으려고 몇 번이나 몽둥이를 휘둘러 보아도 괴도 루팡 같은 악의 무리들은 옥수수에 흠집만 내놓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새벽부터 들이닥친 열명이 넘는 옥수수 처리 전담반 요원들은 하얀 가마니에 담은 옥수수들을 트럭에 한가득 싣고서 사라졌다. 아버지는 일꾼들이 헤집고 간 밭의 옥수숫대를 차곡차곡 베어 눕히셨다. 아버지가 옥수숫대를 눕히실 때마다 새를 쫓아주던 깡통들이 마치 성황당 금줄 친 것 마냥 드러났고, 나는 엄마가 리어카에 실어주는 옥수숫대를 마당으로 끌고 가면 할머니는 옥수숫대에 남겨진 옥수수들을 마저 찾아내셨고, 동생들은 할머니 옆에서 옥수수 껍질을 벗겨 수염은 수염대로 옥수수는 옥수수대로 소쿠리에 담겼다. 그날 저녁 온 가족 가마솥에 쪄낸 옥수수를 먹으며 여름밤의 더위를 식혔지만 초저녁 잠이 많은 나는 그날도 맛도 못 본 체 일찌감치 잠이 들었었다.


6월의 전쟁 같은 비가 내리는 퇴근길.

장대비 소리도 뚫고 들리는 포장마차의 압력 밥솥 추 돌아가는 소리에 이끌리어 옥수수를 샀다. 햇 옥수수라 맛있다 권하시는 사장님의 시식 후기까지 들으니 얼른 호호 불며 뜯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이 코로나 시국에 비를 맞으며 옥수수를 뜯는 건 모양새가 퍽 좋지 않을 것 같아 가방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리고 마트에 갔다가 황도보다는 백도가 식감이 나을 거 같아 장바구니에 담아보았다.


창밖으로 퍼붓는 장맛비 줄기를 보며 가족들과 옥수수를 앞니로도 뜯어먹고 손으로도 따 먹고, 누가 더 길게 따나 남편과 떼어진 옥수수알 개수를 세며 경쟁하 듯 아이에게 주다 보니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짙게 떠오르고, 생각해보니 깡통 종으로 새와 쥐들에서 지켰던 우리 집 옥수수는 참 요긴한 작물이었다. 통으로 쪄서 먹거나 구워도 먹고, 겨울날 쌀을 대신한 밥도 되어 주었고, 볶아서 물도 끓여 먹고, 또 옥수수 뻥튀기 재료가 되기 위해 알갱이들과 통을 분리하고 나면 그 통은 기다란 싸리나무에 꽂혀서 할아버지의 등을 긁는 효자손도 되었었다. 그리고 바싹 말린 옥수수 통은 번개탄을 대신한, 꺼진 연탄불을 붙이는 데엔 최고인 불쏘시개도 되어 주었고, 제 소임을 다한 옥수숫대는 작두에 싹둑싹둑 잘려 엄마소의 껌까지 되었으니 옥수수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정말 팔방미인이었다.


"엄마 요즘 옥수수 잘 먹네?"


손으로 떼어준 옥수수를 받아먹으며 작은 아이가 묻는다.


"늙어서 그래"


남편이 작은 아이 말을 거들자 젓가락 한가닥을 옥수수 심지꽂아 먹던 나는 옥수수를 소총처럼 잡고 남편을 향해 조준을 했다.


"어 가족끼리 막 총 쏘고 그러는 거 아니야. 특히 옥수수 먹을 때는"


그러게나 말이다.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았던 손녀딸은 요즘 할머니를 추억하는 음식으로 더 맛있게 옥수수를 먹고 있다. 그 시절 호호 불어가며 굳은살 가득한 손으로 옥수수 알을 따 주시던, 더 길게 길게를 요구하는 손주들의 요구에 바쁘게 옥수수 기차를 만들어 주시던 할머니 웃음소리와 모습이 떠오르고 장맛비 때문일까? 오늘 더 할머니가 그립다...


아 맛다. 그리고 옥수수를 수확한 밭에는 콩이 심겼고 깡통 종은 콩밭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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