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와 콩나물밥

by 별바라기

날이 꽤나 덥다.

그간 더위를 타지 않던 나는 올해 퍽 난감한 날들을 보내고 있고, 산후조리 때도 흘리지 않던 땀을 요즘 출퇴근길에 한 바가지씩 쏟고 있다. 눈에 띄게 체질이 변한 나의 모습에 놀라는 가족들을 향해 나는 갱년기로 힘이 드니 내 시중을 잘 들라는 협박으로 가족들을 부려먹고도 있다.


날이 더워지니 입맛도 떨어지는 것 같고, 하지만 늘 '맛있는 게 뭐 없을까?'란 질문을 가족들에게 던지는 나인데 내가 귀찮다고 먹지 않으면 아이도 남편도 덩달아 굶어야 하기에 나는 요즘 여러 가지 음식을 하는 것보다 원푸드를 추구하고 있고, 어제 퇴근길에 장바구니에 담은 콩나물로 콩나물 밥을 지었다.


"엄마 콩나물 한 번만 잘라주면 안 돼?"


"에? 돌도 씹어 먹을 나이에, 걍 먹어 니가 무슨 할머니야?"


"누가 돌을 씹어 먹어. 그리고 할머니만 가위 쓰란 법 있어?"


"증조할머니가 콩나물밥을 늘 가위로 잘라 드셨거든"


젊은 날의 할머니는 뱃속에서도 다 키우지 못하고 잃은 아이와 또 태어난 아이들의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시지 못한 탓에 온 산후풍으로 잇몸병을 얻으시어 이를 몽창 잃는 서러움을 겪으셔야 했다.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틀니를 의지하여 살아오셨고 나이가 들수록 오그라드는 잇몸 때문에 그 틀니도 덜그럭 거리기 일쑤, 잇몸이 붓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는 늘 연식으로 식사를 하시는 버릇이 생겼고 뭔가 씹는 것보다는 후루룩 마시거나 잘게 잘게 잘라서 드셔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산촌마을에 넉넉하지 않았던 살림에 항상 제철 채소를 활용하는 요릿 법으로 사셔야 했는데 그중에 정말 효자 채소는 무였다.

우리 집 식구들은 무를 '무꾸'라고 불렀는데 이것 또한 할머니가 쓰시던 방언이 자연스레 우리 삶에 녹아있었고 나는 지금도 무꾸라고 부르고 있다.


"할머이 바압"

"오늘은 뭐나?"

"라면"

"라민? 내는 안 문다"


"할머이 바압"

"뭐 묵나?"

"칼국수"

"국시? 오냐 가마"


"할머니 바압"

"오늘은 뭐 묵나?"

"짜파게티"

"짜장? 내는 안 문다 니들이나 무라"


"할머이 바압"

"뭐나?"

"무꾸 밥"

"오냐 거 맛나겠다."


언제부턴가 할머니는 저녁 메뉴를 먼저 들으신 다음에 식사를 하신다 안 하신다 의사 결정을 하시기 시작하셨고 잇몸병으로 여러 날 고생을 하신 뒤로는 그 호불호가 더 단호해지셨는데 간단히 조리되는 음식을 먹는 날은 드시지 않았고 베지밀이나 건빵 몇 개로 배를 채우셨다.


오늘 낮에 엄마는 눈 덮인 밭에 눈을 걷어 내고 지난 김장 때 땅속에 묻어 두었던 커다란 무꾸를 연탄집게로 찔러 끌어올렸고 수세미로 흙을 씻고 숟가락으로 벅벅 껍질을 긁어서 속사포 소리를 내며 채를 썰고 계신데

오늘 저녁 메뉴는 편식쟁이인 나도 좋아하고 할머니도 좋아하는 '무꾸 밥'이었다.


무꾸가 쌀과 함께 익어가며 달달한 냄새가 나고, 내가 무꾸 밥을 유난히도 좋아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무꾸 밥에는 정말 맛있는 누룽지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어린 시절부터 딱딱한 음식 씹는 것에 취미가 있었기에 작년 어금니를 몽창 보수를 당하는 사태가 왔는지도 모르지만 가마솥 밥에서 생기는 바사삭한 누룽지와는 다른 꾸덕꾸덕하면서도 촉촉한 매력이 있는 무꾸 밥 누룽지는 정말 최고의 간식이었다.

송송 참깨를 한가득 품은 들기름 담긴 양념장 냄새가 부엌문 밖으로 새어 나와 윙윙 바람을 타고 할머니 방까지 도착했고, 우리는 백김치 한 사발이 올려진 밥상에 둘러앉아 맛있게 비벼진 무꾸 밥을 먹었다.


저녁을 먹은 우리는 쇠죽을 끓인 따뜻한 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할머니 옆에 쪼르르 누워 있었다.


"지금부터 이방에서 방구 금지여. 무꾸 밥을 먹었으니 방구가 막 샐 거여"


"나는 안 껴"


"나도 안 껴".


"나도"


"거짓부렁 하지 마래이"


"에이 할머이나 끼지 마, 할머이가 방구 쟁이잖아"


"니가 방구 쟁이지 내가 무슨"


"할머이 도둑 방구 잘 뀌잖아. 난 저번에 자다가 피식하는 소리 들었어"


"맞아 할머이 도둑 방구 나도 들었어"


"이 마한 것들이 나를 방구 쟁이로 모네"


웃으며 노는 순간 다섯 살 막내가 '꺼억'하고 트림을 해서 우리는 또 웃었다.


잭과 콩나무의 콩은 아니네 ^^

어린날 우리 집에도 외갓집에도 공통된 소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콩나물시루에 물 주는 소리였다. 잠결에 눈을 떠보면 어른들이 주무시다 말고 콩나무 시루에 물을 붓고 계셨고 나는 그 쪼르륵거리다가 똑, 똑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또 잠이 들었다.


그렇게 길러진 콩나물 덕에 무꾸 밥 다음으로 많이 해 먹던 밥은 콩나물 밥이었는데 콩나물은 겨울마다 안방에서 길러졌고, 참 좋은 식재료였지만 나에겐 겨울방학을 맘껏 즐길 수 없게 발목을 잡는 골칫거리기도 했다.



콩나물은 꼭 시간을 맞춰 꼬박꼬박 물을 줘야 했고 또 빛이 들어가지 않게 보자기를 잘 씌워놔야 하는 규칙이 있어서 나는 동네서 가장 먼 친구네 집에서 놀다가도 시계를 보고 헐레벌떡 뛰어와 물을 주고 다시 나가 놀아야만 했다. 언젠가 친구네 집에서 민화투를 치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나는 그 규칙을 어겼고, 엄마가 물은 물음에 물을 줬다고 바득바득 우겼던 그날 이후로 콩나물에게 솟아난 수염 때문에 나의 거짓말은 들통이 났다.


수염 난 콩나물 ^^;

엄마가 왜 콩나물에 시간 맞춰 물을 주라고 하셨는지 내가 직접 콩나물을 키워보고서야 알았다. 할아버지도 아닌데 가늘고 긴 수염이 어찌나 많이 나는지, 나는 콩나물을 기르고 싶었을 뿐인데 콩나무를 재배하게 되어 더 억새지기 전에 요리를 하려고 뽑았다가 콘크리트 바닥이라도 뚫고 자라날 것 같은 콩나물의 잔뿌리들을 다듬으면서 인내심의 한계를 체험했고 앞으로는 그냥 마트에서 사다 먹자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도 촉을 틔우고 자라나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키우는 재미는 꽤나 쏠쏠했다.


여러 가지 반찬을 하려다 삼복더위 속에 요리가 부담스러워 콩나물 밥을 했는데 콩나물을 잘라달라는 작은 아이의 투정에 이가 좋지 않으셔서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 드시던 할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저녁 메뉴가 맘에 들지 않았던 아이는 콩나물이 길다며 양념장에 청양고추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며 이리저리 트집을 잡았지만 한 그릇 깨끗하게 비웠고, 거창하진 않으나 온 가족 열심히 비비고 먹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좋았다. 아마 할머니들도 엄마도 이런 마음으로 그 긴 겨울밤 매일 잠을 깨우는 귀찮음을 이기고 콩나물을 기르고 음식을 하시지 않았을까? 만약 그 시절에

내가 주부였다면 콩나무 재배가로 우승을 하지 않았을까? 풉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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