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의 문풍지 바르던 날

중태기 = 버들치

by 별바라기

희한하게도 할머니방 문 창호지는 구멍이 쉽게 났다. 누가 일부러 구멍을 내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우르르 뛰어다니거나 작은집 동생들이 다녀가면 어김없이 손가락 만한 구멍이 뽕뽕 뚫려 있었다. 범인이 누구인가를 서로 취조하고 고자질하기도 했지만 범인은 절대 나타나지 않았고, 뒤늦게 구멍을 발견한 할머니는 "마한 것들, 뼈 시리게" 하시며 작게 오려두었던 문풍지에 밥알을 으깨 임시 막기도 하셨는데, 그날은 어린 우리가 봐도 구멍이 나다 못해 손바닥 만한 구멍에 마당이 훤히 내다 보였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 방은 군불을 때면 바닥 장판이 누렇게 탈 정도로 구들장 난방력은 최고였으나 흙집이었던 탓에 웃풍이 심했다. 그래서 그 웃풍 때문에 할머니는 아궁이에서 시뻘건 숯이 한시름 기운을 빼면 조심스레 그 숯들을 화로에 담아 방에 공기를 덥히셨다. 그런데 그 웃풍 센 방문에 황소도 들어올 구멍이 났으니 그간 벼르고 별렀던 문풍지를 바르시기로 맘먹으셨는지 나에게 마당에 떨어져 있는 은행잎이랑 단풍잎을 이쁜 놈으로 몇 개 주워오라 하셨다.


할머니가 아궁이에서 바로 시뻘건 숯덩어리를 화로에 옮기시더니 삼발이를 얹으시고 양은 대야를 올리셨다. 그리고 그 대야에 밀가루를 푸셨다. 나는 문풍지를 바르신다는 할머니가 요리를 시작하시는 줄 알고


"할머이 뭐 해 먹을라고?"


"뭐 해 먹긴 문 바를라고 그러지"


"근데 왜 여기다 이걸 풀어?"


"이거 풀 쑤는 기여 니 이거 타지 않게 잘 휘젓고 있으레이. 요래 요래 계속 빙빙 돌리라. 근데 니 그거 아나?

이 풀 먹으면 벙어리 된다. 저 동네 누가 이거 먹고 벙어리 됐다 자네"


할머니는 요래 요래 빙빙 돌리라는 주문과 누군가 이 풀죽을 먹고 벙어리가 됐다는 무서운 말맘 남기시곤 방으로 들어가 문풍지들을 뜯어내는 작업을 하셨다.


"요래 요래 빙빙 요래 요래 빙빙"


나는 주문을 외 듯 할머니가 준 주걱을 쥐고 조금씩 데워지는 양푼을 휘젓고 있었다. 죽처럼 부드럽고 진득해지는 것을 보니 살짝 먹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먹으면 죽는다고 했으니 맛에 대한 호기심은 내려놓고 약간 따분해지려는 바로 그때 내 앞으로 지나간 꼬리 긴 쥐 한 마리. 나는 벌떡 일어나 쥐가 들어간 구멍을 부지깽이로 찔러보았다. 그러나 아무 기척도 없길래 더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주워다 찌르기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데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야야 잘 휘젓고 있나?"


'아 풀'

나는 놀라서 화로 위에 있던 대야를 보니 보글보글 잘 끓고 있었다.


"어 할머이 잘 되고 있다 걱정마라"


나는 할머니를 안심시키며 주걱을 휘젓는 순간, 놀랍게도 그 흰 죽 위로 시커먼 덩어리가 떠오르더니 금세 탄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할머이"


나는 울음을 터트렸고 할머니가 방에서 나오셨다. 그리곤 그 광경을 보시곤 얼른 대야를 바닥에 내려놓으시고 시커멓게 떠오른 풀 덩어리들을 사이로 남아있던 흰 부분만 바가지로 걷어 내셨다. 양은 대야 바닥은 생각보다 많이 탔고 할머니는 왜 그랬냐 이유도 묻지 않으시고 울지 마라 나를 달래셨다.


시커먼 바닥을 드러낸 대야를 손으로 만져 온도를 체크한 할머니는


"니 이거 얼른 도랑에 가서 담궈 두고 온나. 니 애미 보믄 한소리 듣는다."


나는 엄마한테 한소리 듣는 것보단 할머니 심부름이 훨씬 쉬운 것 같아서 앞 도랑에 대야를 담가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할머니는 그 사이 내가 주워왔던 은행잎과 단풍잎을 넣어 문풍지를 발라 놓으셨고 팽팽하니 말라야 하니 그 전에는 절대 손대지 말라고, 동생들 잘 지키라고 나에게 신신당부하셨다.


동네 친구들과 회관 마당에서 땅따먹기를 했던 나는 더러워진 손을 씻으러 앞 도랑으로 향했다. 그런데 멀리서 봐도 내가 담궈 놓은 대야 속에 뭔가 바글바글한 게 보이는데, 원체도 호기심 마왕이었던 나는 멀리서도 보이는 그 꼬물거림에 도랑으로 내려가는 것도 귀찮아 다리에서 펄쩍 뛰어내렸다. 거기엔 정말 온 동네 물고기가 운동회라도 하 듯 몰려와 바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얼른 대야를 들어 올렸지만 물의 무게와 헤엄치는 물고기 떼들의 난리법석에 반 정도 물도 쏟고 고기도 쏟고, 하지만 대야에는 아직도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들 수 있는 만큼의 물을 쏟아 버리고 대야를 들고 집으로 갔다.


"할머이 이거 봐라"


내가 낑낑거리며 대야를 들고 오는 것을 보신 할머니가 마중을 나오셨다.


"아고야 이거 중태기 아이나? 바글바글하네. 니 이거 우째 잡았나?"


"할머이가 아까 이거 도랑에 담궈노라 했자네. 갔두만 야들이 있대"


"마한 것 큰일 했네. 배 따개 갖고 찌지 무믄 맛나겠다."


"이걸 먹는다고? 할머이 이거 먹으믄 죽는 거 아녀?"


"마한년 죽긴 왜 죽어."


"이 풀 먹으믄 죽는댔자네. 야들이 이거 먹을라고 드간건대"


나는 먹으면 죽는다고 우기고 할머니는 먹어도 안 죽는다고 대답하고. 그러는 사이 중태기들은 어느새 할머니가 뿌린 소금에 바득바득 씻겨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 집 밥상엔 중태기 매운탕이 올라왔다. 평소에 물고기 요리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엄마의 매운탕 솜씨는 최고였지만, 평소 편식도 심하고 더군다나 내가 태운 풀로 미끼 삼아 잡은 중태기를 나는 절대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본 아버지는 물고기 내장을 제거해서 먹어도 안 죽는다고 나를 설득했지만 나는 물고기 눈알이 나를 본다, 뼈가 씹혀서 싫다, 맵다 온갖 이유를 대며 결코 먹지 않았다.


할머니 방에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한 마디씩 한다.


"어디서 끄신내(그을음 냄새) 안 나요?"


"어서 탄내가 나는데 어딘지 모르겠네"


"할머이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


나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뭐가 그렇냐며 시치미를 떼었다.


1996년 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6남매를 낳아 키우고 시집 장가보내며 사셨던 우리 집은 주황색 벽돌집으로 변했다. 탄내 나던 문이 달려 있던 할머니 방도, 셈베이 과자와 눈깔사탕을 숨겨 두던 할머니 자개장롱도 그리고 할머니의 신경통을 위로하던 구들장도 포클레인 바가지의 강한 힘에 먼지가 되었고, 몽땅 덤프트럭에 싣겨져 내가 모르는 어딘가로 실려갔다.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도 왜 그 풀죽을 먹으면 죽는다고 했는지 뾰족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한 가지 짐작해보는 것은, 그 밀가루도 귀했던 시절, 배고픈 누군가의 배를 채우기보다는 겨우내 따뜻한 방을 지켜야 했던 문풍지를 바르기 위해 그 풀 죽을 지켜야만 했던 누군가의 가슴 아픈 거짓말이 아녔을까?


주부인 나도 가끔 열무김치를 담글 때 찹쌀풀이나 밀가루 풀을 쒀서 넣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이 풀죽 무믄 죽는데이" 그 말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나는 그저 김치를 담그려 했을 뿐인데 괜스레 독을 만드는 마녀가 된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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