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의 지팡이

by 별바라기

"도레미파솔라시도, 도시라솔파미레도"


나는 밤새 처마 밑에 주렁주렁 달린 고드름을 좌르르 떨어트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야야 내 지패이 어디갔노?"


"할머이 갖다 줄게"


"이마한 것 또 갖고 갔나?"


나는 할머니의 역정 내시는 소리를 들으며 호다닥 할머니 방 앞으로 뛰어갔다.


고드름을 떨어트리는 데엔 할머니 지팡이 만한 좋은 게 없었다. 지게 작대기는 무게도 있고 키가 커서 머리 위로 들고 나면 팔이 아팠는데, 할머니 지팡이는 가볍고 튼튼해서 큰 고드름도 작은 고드름도 죄다 나의 손길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는 그 통쾌함이 나는 너무 좋았다. 엄마는 누렇다 못해 파란 콧물을 훌쩍거리며 마당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내게 고드름이 혹여나 머리에 떨어지면 다친다고 동생들 데리고 절대 마당에 나가지 말라 엄포를 놓았지만, 나는 혼자서 더 열심히 마당에 나갔다. 혹시나 쇠죽을 쑤러 나가시는 아빠나 펌프로 물을 퍼 올려야 살림하는 엄마, 화장실에 가는 식구들의 머리에 혹여나 고드름이 떨어질까 싶어 걱정도 되었고 무엇보다 나는 '도레미파솔라시도' 노래를 부르며 떨어트리는 고드름 놀이가 조용하고 긴긴 겨울방학을 보내는 산골소녀의 놀이동산이었다.


할머니가 애지중지하시며 찾고 계신 '지패이'는 아빠가 만드셨는데 명아주 줄기로 만드셨다. 명아주는 밭에 기생하는 아주 지긋지긋한 풀인데, 나는 여름 방학 때마다 고추밭이나 콩팥에서 쑥쑥 자라는 그 명아주를 뽑아야 하는 게 너무 싫었다. 키가 주변 아이들보다 월등히 커서 숨으래야 숨을 수도 없어 제일 먼저 뽑히는 아이였는데, 뿌리가 어찌나 튼튼하고 힘이 센지 잘못 뽑으면 고추콩 싹도 같이 뽑히는 대형사고가 일어나기도 하고, 때론 나와 줄다리기를 하다 엉덩방아를 찧게 되는 상황도 종종 있어서 명아주와 전쟁을 할 때면 기합도 불어넣고 나름 긴장도 하면서 힘을 주어 요령껏 뽑아야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빠가 집 앞에 있는 밭가에 있는 명아주는 뽑지 말고 두라고 하셨고, 내가 이유를 묻자 나중에 필요하다고만 하셨는데 그때는 그 용도를 짐작하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아빠는 고추밭에 가시면 그 명아주들을 제일 먼저 살펴보셨는데, 잔가지들을 손으로 쓱쓱 훑어 떼어 주셨고, 소똥 거름도 부어 주시고 농작물에 비료를 주실 때도 명아주 뿌리 옆에다 한 움큼 놓아주셨다. 고추를 따러 갈 때마다 계속해서 잔가지들을 모조리 떼어 내는 까닭을 묻는 나에게 그래야 명아주가 키가 많이 크고 굵어진다고 설명해 주셨는데, 그 덕분인지 명아주는 내 키보다 더 큰 날씬한 나무처럼 쑥쑥 자라 아빠 키만큼이나 커졌다.

찬바람이 불고 서리가 조금씩 내리면 고추밭에는 붉은 고추가 사라졌고, 다 크지 못한 파란 고추까지 따서 겨울에 먹을 나름의 식량 준비 작업까지 끝나면 아빠는 그해 농사 끝을 알리는 고추모 뽑기를 하시면서 그때 명아주도 같이 뽑으셨다.


명아주는 아빠의 손을 여러 날 거쳐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결과는 할머니의 지팡이였다. 할머니는 눈 쌓인 마당에 지팡이를 의지해서 똑 똑 똑 동그란 도장을 찍으며 작은 털신 발자국을 내고 다니셨고, 쌓인 흰 눈이 빗자루로 쓸리기 전 나는 할머니 지팡이를 연필 삼아 동생 이름과 메롱을 써서 동생을 약 올리기도 했었다.

할머니는 아빠가 만들어 드린 명아주 지팡이를 아주 아끼고 자랑스러워하셨는데


"야야 이 지패이가 을매나 효염이 있는지 니 아나?"


"지팡이가 지팡이지 뭘"


"아이다 이 맹아주 지패이를 들고 다니믄 신경통도 없어지고 중풍도 안 걸린다카이"


"아이고 할머이 이깟 짝대기가 뭔 힘이 있다고"


"야야 그런 소리 마라. 그래서 니 애비가 내한테 이래 맹그러 준거 자네"


나는 할머니의 믿음을 깨고 싶지 않아서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지팡이는 매해마다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가을까지 자란 명아주 줄기의 굵기와 할머니 지팡이의 마모 상태와 점점 작아지는 할머니의 키에 맞춰 다시금 만들어졌는데 새로이 바꿔지는 할머니 지팡이는 늘 나의 커다란 연필이 되어 마당에 그림을 그리거나 눈밭에 낙서를 할 때 요긴하게 쓰였다.(어쩜 그래서 더 일찍 망가졌을는지도)


성인이 된 후, 직장에서 단체 산행을 갔다가 어머니를 갖다 드린다며 지팡이를 사신 과장님을 통해 명아주 지팡이가 장수기원용 지팡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할머니가 왜 그 지팡이를 아끼셨는지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만드셨던 지팡이와 등산로 입구에서 판매하던 지팡이는 외관적으론 많이 차이가 있었지만, 아버지가 일 년 내내 기르시고 여러 과정을 통해 만드셔서 할머니 손에 건네 드린 지팡이가 얼마나 공들인, 노모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아들의 마음이었는지 알게 되면서 그 어린날 작대기가 무슨 효염이 있고 힘이 있겠냐며 할머니 말이 거짓말이라고 말대꾸를 했던 내가 떠올라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명아주 지팡이 제작과 함께 해마다 아버지의 겨울맞이 연중행사가 있었는데 볕 좋은 가을날 미리 뽑아두어 바싹 마른 댑싸리를 노끈으로 꽁꽁 묶으셔서 고운 빗자루 만드시는 일이었다. 또 산에서 해 온 싸리나무를 묶어 기운찬 싸리비도 만드셨는데 이 기운찬 빗자루는 눈이 쌓였을 때 힘 있게 마당을 쓸 때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그리 탈곡기에 턴 수수대를 모아서 몽당 빗자루도 만드셨는데 그 빗자루는 두부를 만드는 가마솥 앞을 먼지 나지 않게 조신하게, 깨끗하게 쓸 때나 장독대에 쌓인 눈을 털 때 아주 요긴하게 쓰였는데 어느 해 인가 나는 항아리에 쌓여 있는 눈을 힘차게 쓸었다가 장독대 뚜껑을 깨트리고 엄마한테 혼이 난 기억이 있다.


산에 깊은 눈이 쌓이기 전 아버지는 먼산까지 가셔서 싸리나무를 해 오셨는데, 그 싸리나무는 노끈을 만나 할머니가 나물을 널어 말리는 널따란 채반으로도 변신했고, 던지면 경쾌한 소리가 나는 윷가락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작업들을 끝내고 남은 마디 없이 곧게 뻗은 잔가지들을 엄마는 알뜰하게도 꼭 회초리를 만들어서 안방 장롱 위에 한가득 올려 두셨는데, 것 참 매의 주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항상 그 매의 단골손님은 나였다. 그래서 나는 아빠의 지게에 싸리나무가 한가득 담겨 내려지면 쪼르르 달려가 물었다.


"아빠 이거 모할라고? 다 불 때 버리면 안 돼?"


올해도 친정 밭에는 눈치 없는 명아주 부대가 자라고 있고, 밭가에 아버지가 일부러 기르시는 댑싸리가 자라고 있어 사진을 찍어보았다. 사진을 찍으며 어린날 새로운 빗자루가 만들어지면 요술을 부리는 마녀가 되겠다며 다리 사이에 빗자루를 끼고 먼지를 일으키며 마당을 뛰고 경운기에서 뛰어내리던 일, 나는 장독대 뚜껑 위에 쌓인 흰 눈을 그저 털어내려고 약간의 힘만 주어 쓸었을 뿐인데 장독대 뚜껑이 마치 플라잉디스크처럼 마당으로 날아가 '퍽'하는 소리를 내며 두쪽으로 갈라졌던 모습도 생각이나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지금 여러 날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나도 아버지가 할머니를 위해 지팡이를 만드셨던 것처럼 명아주 지팡이를 제작해 드려야 하나? 아니 우리 아버지는 지팡일 짚지 않고 튼튼하게 두발로 걸으시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이 와중에 다행이라 해야 하나? 등산로 입구와 온라인 쇼핑몰에 맹아주 지패이가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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