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의 감낭 쌈

by 별바라기

"야야 저녁엔 감낭 찌가꼬 쌈 싸 먹재이"


할머니는 가족들을 부를 때 정확한 이름을 부르시지 않고 "야야"라고 통틀어 부르신다. 그러면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가 그 말을 알아듣고 최종적으로 그 일을 처리해야 하는 가족에게 전달하는 습관이 가족들 사이에선 손가락을 걸지도 않았음에도 지키는 약속이 되어 있었다.


"엄마 할머이가 저녁에 감낭 쌈 싸 먹재"


마당 한가운데서 동생들과 땅따먹기를 하던 나는 손은 마당을 짚고 눈은 뻗어나간 선 끝에 있는 목지를 향한 채 엄마가 있는 방향을 향해 목소리만 크게 보냈다.


"자밭에 가서 감낭 큰 걸로 두 개 따서 와"


내 말이 엄마가 계신 부엌문을 다 넘어가지도 못한 것 같은데 엄마의 대답은 마당을 가로질러 내가 점령하고자 뚫어져라 쳐다보는 선 끝에 놓여있는 목지에 와서 꽂혔고, 나는 영토 점령을 멈추고 늘 그랬듯이 장독대에 얹혀 있는 소쿠리와 무딘 큰 칼을 챙겨 엄마처럼 소쿠리를 옆구리 끼고 자밭으로 나갔다.


자밭은 우리 식구들이 부르는 앞 밭의 이름인데, 왜 그렇게 부르는진 아직까지도 모른다. 자밭에는 증조부모님과 할아버지의 봉분 묘가 있고, 그 옆에 있는 산기슭엔 대추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들이 있고, 또 한구석엔 도라지가 해마다 하얗고 보라색의 꽃을 피우는데, 도라지 꽃이 적당히 피게 되면 껌을 씹다가 입으로 분 풍선처럼 봉긋하니 통통해지는데 나는 그 도라지 꽃이 '뽕, 뾱, 푹' 소리를 내며 터지는 게 재밌어 한참 동안 머물며 꽃들을 죄다 터트려 버리는 말썽꾸러기였다.

어린날의 풍선 터트리기 놀이터

엄마가 세 고랑에 심어 놓은 양배추는 며칠 사이 엄청나게 커졌다. 우리 집의 감낭 요리법은 엄마의 멋진 채 써는 솜씨로 마요네즈와 케첩, 매실청을 섞은 소스를 뿌린 새콤한 샐러드와 찜기에 쪄서 쌈도 싸 먹고, 고춧가루 물을 풀어 물김치도 담그고, 푹쪄서 쭉쭉 찢어 양념에 버무려 무치기도 하고, 국도 끓여 먹었는데, 나는 특히나 감낭 국을 참 좋아했다.


감낭 국 레시피는 엄청 단순한데 멸치국물에 썰은 감낭을 넣고 고춧가루, 소금, 마늘, 파, 기호에 따라 청양고추를 넣으면 끝인데, 희한하게 무도 아닌 것이 시원하고 깊은 맛이 난다. 결혼을 하고 시골에서 모셔온 감낭으로 국을 끓여 주었더니 남편이 국그릇을 들여다보고 기겁을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요리 솜씨가 없어도 이건 너무 창의적인 거 아니야?"


"창의적이긴, 우리 동네선 이렇게 먹었어"


"나는 서른 살이 되도록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


"그럼 이번 기회에 먹어봐"


남편은 국그릇 한 번 쳐다보고 나 한 번 쳐다보고 선뜻 수저를 들지 못하고 있다가 한 숟가락 뜨고서야


"양배추도 이런 맛을 내는구나" 하며 놀라워했다.


엄마가 큰 걸로 따오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며 나는 밭고랑을 이래저래 옮겨 다니며 통이 실한 양배추를 찾고 있었다. 항상 양배추 밭이나 배추 밭에는 식욕이 왕성한 초록색 화가들이 사각사각 야곰야곰 거리며 구멍으로 표현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나는 눈에 보이는 애벌레들을 보는 족족 곁에 있는 호박잎이나 뽕잎에다 싸서 닭장에 있는 닭들에게 넣어주었다. 이것도 할머니한테 배운 습관인데 할머니는 길을 가다가 튀어 오르는 방아깨비를 연탄불이나 숯불에 구워 우리 입에 넣어 주셨고, 애벌레나 여치, 떨어진 매미들을 주워다 닭들에게 별미로 넣어 주셨다. 오늘도 양배추 밭에는 흰나비 떼가 펄펄 날고 있고, 나는 본인의 아가들을 지키려고 애쓰는 흰나비들을 손과 발을 다 동원해 훠이훠이 쫓으며 계속해서 큰 양배추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배추흰나비 번데기들.


언뜻 봐도 번데기가 10개는 넘어 보였다. 양배추 줄기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번데기를 보고선 나는 개울에서 다슬기를 잡 듯 한 개 한 개 떼어 움푹한 양배춧잎에 조심스레 담았다. 그리고 실한 양배추 두 개를 소쿠리에 담고 고추도 따서 집으로 돌아왔다.

7.3. 친정에서 공수된 양배추와 노각

"아이고야 기운도 좋구나. 감낭 농사가 잘 됐대이"


할머니는 내가 들고 간 소쿠리를 받아 드시며 양배추 크기를 보고 놀라 말씀하셨다. 이제 양배추는 할머니가 씹어 드시기 좋을 만큼 찜기에 푹 쪄질 것이고 엄마는 내가 따온 고추들과 농사지은 마늘을 썰어 된장과 고추장을 적당히 넣고 들기름과 매실액을 넣어서 버물버물 버무려 주실 것이고, 아빠는 우리 밥숟가락에 풋고추만 골라 한 개씩 올려놔 주시는데 풋고추와 청양고추를 눈으로 구분하지 못했던 나와 동생은 용기 있게 한 개 냉큼 주워 먹었다가 청양 고추를 먹고 물배를 채울 때도 있었다.


편식 대장! 일식 일찬을 몸소 실천하던 나는 무르게 쪄진 양배추엔 눈길도 주지 않고 쌈장에다 밥을 썩썩 비벼 먹고 후다닥 내방으로 갔다. 나를 기다리는 것은 낮에 감낭을 따올 때 엄마 눈을 피해 얼른 방에다 넣어 두었던 감낭 잎에 싸 두었던 열개가 넘는 번데기들.

동생과 나는 방바닥에 엎드려 손으로 턱을 괴고 번데기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언니야 얘네는 지금 자고 있을까?"


동생의 말에 번데기 한 마리가 꿈틀 했다.


"언니야 언니도 봤지? 얘가 움직인 거?"


"얘네가 우리 얘기를 알아듣나 봐?"


"어어어 언니야 그 옆에 있던 애도 움직였어"


어둡고 조용하던 방에 우리가 들어와 떠들어서 그런 것인지, 켜 둔 형광등 불빛 때문인지 번데기들이 짠 듯이 툭툭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니야 갈색 번데기는 안 움직이고 파란애들이 움직여"


"파란 애들이 귀가 더 밝아서 우리 얘길 듣나 봐"


"아 너무 신기해. 내일 아침에 나비가 방에 날아다녔으면 좋겠어"


동생은 금세 잠이 들었고 나는 좀 더 움직이는 번데기를 보려고 턱을 괴고 엎드려 있었다.


문밖에서 들리는 할머니가 마당 쓰시는 소리, 짹짹거리는 참새들, 옆집, 앞집에, 우리 집 닭들이 경쟁하듯 울어재끼는 소리에 몸과 눈은 더 자고 싶은데 귀가 깨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나의 눈에 들어온 처참한 광경!


"야, 클났어. 니 빨리 일어나 봐"


나는 자고 있는 동생을 급하게 깨웠다.


"언니야 왜?"


동생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야 우리가 번데기 다 깔아뭉갰나 봐?"


번데기를 깔아뭉갠 건 '우리'가 아니라 '나'였다. 잠버릇이 험하고 동생보다도 무거운 나의 등판은 양배춧잎에 담겨 있던 번데기들을 칼국수 미는 홍두깨처럼 밀어 버렸고, 나비가 되려고 고치 안에서 행복한 꿈을 꾸며 잠을 자던 아이들은 불쌍하게도 유명을 달리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하나? 그나마 양배춧잎에서 튕겨져 나간 몇 개의 번데기들은 방 윗목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고 나는 엄마한테 들킬세라 얼른 윗도리를 갈아입고 남은 번데기들을 화단 숲에 놓아주었다.



어제 아침 친정에서 공수해 온 양배추를 잘라 찜기에 넣고 푹 쪘다. 시간이 없어서 쌈장은 만들지 못했지만 도시락 반찬으로 싸가 밥심 멤버들과 맛있게 나눠 먹었다. 친정엄마의 다져진 놀라운 감낭 농사 기술과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어서인지 양배추 쌈이 달디달다. 그 시절 산해진미 가득한 밥상은 아니었지만 올망졸망 둘러앉아 함께였던 밥상에서 할머니도 이 단맛을 느끼셨겠지?

할머니가 삑삑 소리를 내며 밥을 긁으시던 밥그릇 소리와 매운 입을 진정시키느라 연신 물을 들이키던 나와 동생의 모습이 떠오르고 나의 왕성한 호기심 때문에 멋진 날개를 펼치지 못한 번데기들에게 이제야 미안하단 말을 전한다.


"얘들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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