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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 Sep 07. 2021

선택받는 것의 두려움

괜찮아, 누구나 겪는 거야_오디션 탈락

"지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더 좋은 기회로 함께 작업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 말만큼 듣기 싫은 말이 있을까. '지원해주셔서 감사하면 붙여달라고!' 

마음 속 외침이 무색하게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나는 선택받지 못했다. 

즉, 심사에서 탈락한 것이다. 

오디오북 출간 관계자분과 출판사, 작가님은 5분 남짓한 녹음 파일을 듣고 ‘이 사람은 우리 책에 어울리지 않는구나’ 라는 결론을 내렸고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정말 열심히 준비한 오디션이었다. 하루 휴가까지 썼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고 문을 두드렸는데, 대답은 'no'였다. 

오디션에서는 참가하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적극적이어야 한다. 

두드리면 때로는 yes, 때로는 no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확인하기 전까지는 대답을 알 수 없다.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가도 없는 것 같다. 그 중간에서 진자의 추처럼 왔다갔다 하며 스스로 희망고문과 좌절을 반복한다. 


선택을 받아야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이 상태가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건 마치 물리의 양자역학 같다.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yes도, no도 동시에 존재하며 중첩되어 있다. 이게 참, 사람을 미치게 한다. 

반반의 확률인데 어찌될 지 알 수가 없으니까. 너무 큰 희망을 품었다가 선택받지 못하면 그만큼 큰 좌절로 돌아오고, 그렇다고 ‘어차피 안되겠지’라는 생각으로 포기하고 대충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안타깝지 않은가.

KBS 주말드라마 '오케이 광자매'에서는 가수를 꿈꾸는 지망생 주인공이 이 수많은 중첩상태를 반복하다가 결국 '선택받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오디션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는 "해봐. 해보고 안되면 그 때 포기하면 되잖아?"라는 아내의 말에 "그게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아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선택받아야 하는 사람은 용기가 필요하다. yes와 no 사이 어디쯤에서 불안한 마음을 다잡고 도전할 용기. 

마치 이성에게 하는 고백과 비슷하다. “나는 네가 좋아.” 라는 고백. 여기서 ‘너’가 사람이 아닐 뿐이다. 고백을 한 후에는 답이 no가 되어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선택을 받으면 세상 기쁘겠지만, 선택을 못 받으면 ‘내가 정말 재능이 없나’, ‘나는 왜 되는 일이 없을까’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그저 한 번의 기회에서 탈락한 것뿐인데도 지하까지 굴을 파고 들어간다. 

기회가 흔치 않을수록, 꼭 하고 싶은 것이었을수록 좌절감은 더 심하다. 


선택을 받아야 통과할 수 있다는 건 사람을 참 두렵고 쪼그라들게 만든다. 

인간은 거절당하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거절에 대한 결정권은 상대에게 있고, 나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지든지 혹은 받아들여지지 않든지 둘 중 하나다. 기다림의 과정은 초조하다. 그 과정에서 심사하는 사람은 커 보이고, 나는 작아 보인다. 

하지만 그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그들도 어느 순간에서는 선택을 받아야 하는 상황들을 마주친다.  입시, 취업, 연애뿐만 아니다. 프로젝트를 따내는 일, 자영업을 하는 일 등 어찌보면 선택받아야 하는 일들이 도처에 수없이 널려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 다른 욕구의 소용돌이 속에서 때론 선택을 하고 때론 선택을 받는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끝까지 선택받지 못할까 두려워 오디션을 포기하다가, 막판에 정신줄 부여잡고 오디션장으로 향한다. 결과는 패자부활전에서조차 탈락. 

그는 또다시 좌절의 쓴맛을 봤지만 얼마 후 그의 간절함이 방송을 타고 사람들에게 가닿는다. 결국 선택받는 상황의 두려움을 이긴 그의 용기, 선택받지 못한다 해도 받아들이겠다는 그의 겸손함과 담담함이 또다른 기회를 만들어낸 것이다.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기’,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등 나의 주체성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세상에서, 사실 인생이란 선택받아야 하는 상황을 수없이 맞닥뜨려야 한다는 걸 직시하는 건 썩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조금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고, 조금은 더 용기있게 만들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선택받아야 하는 상황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게 두려우면 우리는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더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오디션은 무섭다. 좀 울고 와야겠다. 

*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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