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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 Sep 21. 2021

이름이 '향기'인 이유

공주병은 아니에요

한 지인 분이 예명을 듣고 이런 말을 했다. “좀 오글거리는 것 같아요.” 

“아.. 오글거려요?” 

“그러니까 뭐랄까... 느낌이 좀.. 공주병 같아요!”

나도 약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다. 향기. 참 예쁜 말인데 스스로를 그렇게 지칭하는 예명으로는 좀 담백하지 못하다고나 할까.     

다른 지인분은 ‘향기’라는 예명으로 녹음할 콘텐츠에 대해 고민하던 내게 이렇게 말했다. 

“고민되면 향기라고 하지 말고 냄새라고 하지 그래요.” 

그 말이 너무 웃겨서 끅끅대며 웃었다.      


예명을 ‘향기’로 지은 이유는, ‘목소리로 말의 향기를 전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그 소망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초등학생 때 일기장에 ‘나는 어른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향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써놨었다.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겠지만 아마 좋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었나보다. 

그 후 그 생각을 잊고 지냈는데, 낭독 유튜브 채널명을 고민하던 중 친한 친구가 ‘낭독의 향기’라는 이름을 추천해줬다. 실제로 그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낭독으로 향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채널명을 그렇게 지었다. 그것이 예명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고보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향기’라는 말에는 현재보다는 미래에 대한 소망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도 ‘어른이 되면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미래에 대한 소망이었고, 지금도 현재보다는 미래에 대한 소망이 들어있다.  

‘지금 이 순간 향기를 전하고 있다’ 라는 현재 진행형의 뜻은 담고 있지 않다. 내 입으로 ‘향기를 전하고 있다’고 말하기 민망해서일수도, 향기를 전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어서일수도 있다. 

‘지금 나는 보통의 냄새를 발산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언제쯤 향기를 내뿜을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일 수 있을까’라는 의심과 좌절이 있기도 하다.      


오디오북 댓글에서 ‘목소리에서 진짜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어떤 댓글 중 가장 마음을 건드렸다. 어쩌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미래 언제 올지 모르는 뜬구름 잡는 순간이 아니라 지금 현재, 여기, 너의 목소리를 듣고 향기를 느꼈다는 말이니까. 

소리는 청각이고 향기는 후각이지만 우리의 오감은 다 연결되어있으므로.         


사람은 여러 욕망과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다. 나도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도 가끔 악취를 내뿜는다. 스스로의 악취에 놀랄 때도 있다. ‘내가 이렇게 못되고 빡센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하지만 악취보다는 평범한 냄새, 평범한 냄새보다는 향기를 조금 더 많이 내뿜는 사람이고 싶다.      

살구꽃

내가 내고 싶은 향기는 살구꽃 향기다. 살구꽃은 언뜻 보면 매화와 비슷해 잘 구분이 되지 않지만 매화보다 은은하고 소박한 향기를 낸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며, 열매인 살구는 시면서 달달한 오묘한 맛을 낸다. 살구색은 노란색과 주황색이 섞여 밝고 은은하다.       


살구꽃처럼 왠지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해지는 향기, 봄이 되면 바람과 함께 불어오는 시큼하면서 달콤한 살구색을 띠는 향기를 닮고 싶다. 내레이션을 들으면 그런 은은한 향기가 잔상처럼 남는 북나레이터이길 바란다. 확실히 좀 오글거리긴 한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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