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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경 Jun 19. 2024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

남자가 술을 사면 밥을 샀고

남자가 밥을 사면 난 커피를 샀다.

썸남과 데이트 때도 그냥 얻어먹는 법이 없었다.


친구들과도 더치페이가 기본이었고

부모님도 본인 것과 자식 것의 구분이 명확하셨다.


도시적이었고 냉소적이었지만 

손해 주는 것도 손해 입는 것도 싫었던 나는

이게 좋았다.


결혼 후 완전히 달라졌다.

이유는 확실했다.

시부모님은 시골에 사셨는데 

시골인심이란 게 이런 건가

내리사랑이란 게 이런 건가

27년간 경험하지 못했던 

따뜻함을 넘어 뜨거운 뭔가를 경험하게 되었다.


" 에이, 어머니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요 "

" 딱 하나 있지, 엄마가 주는 건 다 공짜야 다 가져가 "


" 아이고 필요 없다니까~~ 어머니 아버님 쓰시면 되지 "

" 집에 쟁여놓고 쓰면 되지 가져가라, 엄마아빠 꺼는 다 공짜다 "


" 고추장 있나? 고춧가루 있나? 참기름 있나? 쌀 안 떨어졌나? 깨 좀 줄까?

   간장 있나? 김치 다 먹었나? 참치 좀 줄까? 김 갖고 가라 "

" 아이고 어머니! 누가 보면 며느리가 시댁 와서 털어가는 줄 알겠다.

   사 먹으면 돼요~ 귀하고 좋은 거 어머니아버님 많이 드셔요"

" 갖고 가라, 너거 엄마는 니 주고 싶어서 못 산다 "


하다하다 주방세제까지 꾸역꾸역 챙겨 넣은 짐보따리를 보면서

손톱에 까만 물든 거친 어머니 손이 생각나서

거뭇한 얼굴에 굵은 주름진 아버지 눈이 생각나서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나 이거 어떻게 갚아.


더치페이만큼 깔끔한 인간관계보다

더 못줘서 아쉬운 질퍽한 관계가 낫다 싶다.


손해주기도 손해 받기도 싫은 단정한 관계보다

내가 좀 손해 보더라도 괜찮다 싶은 끈끈한 관계가 낫다 싶다.


멋있는 차가운 도시여자는 30대까지만 하는 걸로 하고

질퍽하고 끈끈한 정으로 채워져 있는 40대가 되기로 했다.


+마흔이 되면 해야 할 것


자고로 인심은 곳간에서 나는 법.

내 곳간만 가득 채울 생각하지 말고

질퍽하고 끈끈하게 퍼다 나를 수 있는 곳간을 위해

일도 마음도 다시 재정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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