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이가 그 위에 고양이 간식이며 장난감들을 올려놓았다. 담임은 두어 걸음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몇몇은 코를 훌쩍거렸고, 몇몇은 지루한 티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채는 진지했고, 대부분은 이채처럼 진지한 얼굴이었다.
“다음 세상에선 최상위 포식자로 태어나길 빌게.”
누군가 우스갯소리처럼 말했다. 우리들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영이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울고 있었다. 징그럽다고 투덜댈 때는 언제고. 웃음이 나왔다. 사실 소영이는 마음이 아주 여린 아이다. 세상 모든 것에 관심 없는 척 하지만, 누구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다.
“자, 이제 묻어줄까?”
담임이 말했다. 이채가 먼저 흙을 한 줌 집어 구덩이에 뿌렸다. 다른 아이들도 한 줌씩 흙을 집어 구덩이에 뿌리기 시작했다. 구덩이는 금세 메워졌다. 몇몇 아이들이 이채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넸다. 막상 무덤을 본 아이들은 별로 낄낄거리지 않았다. 이채는 특별하지도 않게 웃었다.
나는 이채의 웃는 얼굴이 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왜 따돌림당하는 이채를 내 멋대로 불쌍하게 여긴 걸까.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 이채와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이채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채의 눈이 조금 커졌고, 나는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하하하.”
나도 사실은 웃고 싶었다. 늘 심각한 얼굴로 아이들을 살피는 대신, 크게 웃고 신나게 떠들고 싶었다. 이채는 이채다웠다. 자신에게 충실했다.웃고 싶었기 때문에 웃었고 잘못한 게 없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소외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을 믿지 못했고, 나도 믿지 못했다. 모든 것은 콘크리트에 박힌 녹슨 못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못을 빼면 벽에 흠이 생기니까,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서 밀려났을 땐, 내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뭔가 잘못했을 거야.’
‘내가 뭔가 실수를 했을 거야.’
잘못한 것도 실수한 것도 없었으면서도 사람들에게서 상처 받을 때마다 나에게서 이유를 찾고 있었다. 남을 믿지 못했고, 나를 남만큼도 믿지 못했다.
내가 눈물이 날 만큼 웃어대자 아이들이 나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쟤 어디 이상해진 거 아냐?”
누군가 그런 말을 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웃었다. 물먹은 도화지 위에 떨어뜨린 수채 물감 한 방울처럼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들이 키득거리며 따라 웃기 시작했고, 내게서 번진 웃음이 복도 안을 가득 물들였다.
지민과 은혜의 무리들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깔깔거렸다. 장례식이 끝난 후 이런 웃음이라니.
빛나는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빛을 가지고 태어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선택된 아이들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채는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위해 애를 쓰는 마음이, 배신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그 애를 빛나게 한 거다. 어쩌면 내 안에도 빛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빛날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쟤 왜 저런대? 큭큭."
핀잔을 주면서도 아이들은 웃었다. 웃음 가루라도 살포된 것처럼 이유도 없이 배 아프게 웃어댔다.
왜 웃는 거지?라는 질문은 왜 살아가는 거지?라는 질문만큼 의미 없는 일. 그냥 웃어지는 만큼, 살아지는 만큼 살아내는 거다. 정해진 것은 없다. 내가 만든 틀이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멋진 역전극은 아니었지만, 이채의 담담함이 내게 박힌 못 하나는 뽑아버렸다.